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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칼 든 독서가의 특급 레시피

중앙선데이 2017.12.03 02:00 560호 32면 지면보기
어릴 적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을 읽으며, 마녀 할멈이 살고 있는 과자 집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본 적 있다. 벽은 직사각형 모양의 웨하스로 쌓고, 지붕은 초컬릿을 씌운 막대 과자를 나란히 이어 붙이면 예쁘지 않을까. 그리고 색색깔의 별사탕으로 벽과 천장을 장식해야지. 영어로는 이 집이 ‘숲 속의 진저브레드 하우스(A Gingerbread house in the forest)’라는 건 알지 못했다. 

『문학을 홀린 음식들』
저자: 카라 니콜레티
역자: 정은지
출판사: 뮤진트리
가격: 1만5000원

 
미국 보스톤의 정육점집 손녀로 자란 저자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아이들을 괴롭히는 동화 속 어른들의 만행과, 배가 고플지언정 남의 집을 멋대로 뜯어먹는 아이들의 무례함에 경악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지독한 악행을 바로잡기 위해 동화 속 진저브레드 하우스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생강을 넣은 반죽을 틀에 넣어 집 모양의 빵을 만들고, 거기에 블러드오렌지 시럽을 끼얹어 오싹한 이미지를 완성했다. 그리고, 먹어 치웠다.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요리를 자신만의 레시피로 만들어본다? 저자의 이력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녀 시절엔 학교를 마치면 외할아버지의 푸줏간으로 가 소시지를 먹으며 책을 읽었다. 2004년 뉴욕대에 입학해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요리사로 아르바이트를 했고, 현재도 글을 쓰며 브루클린의 정육점 ‘미트 후크’에서 푸주한으로 일하고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음식과 문학을 둘 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 말고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친구들의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을 때면 음식 솜씨가 다들 너무 훌륭한 것이, 대화가 새로운 책에서 새로운 무쇠 프라이팬으로 너무나 매끄럽게 전환되는 것이, 나는 놀랍고도 즐거웠다.” 
 
그래서 친구들과 ‘문학 속 저녁식사’ 모임을 시작했고, 그 레시피를 모아 ‘냠냠북스(Yummy Books)’라는 블로그를 만들었다. 블로그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50개의 요리를 모은 것이 이 책이다. 책이 ‘독서 일기+음식 이야기+레시피’라는 독특한 구성을 갖게된 이유다. 언니와 함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읽던 순간을 추억하고, 삐삐가 노래를 부르며 팬케이크를 굽던 장면을 떠올리며, 아마 이런 맛이겠지 상상을 보태 버터밀크 팬케이크를 만들어보는 식이다. 
 
문학 속 음식을 통해 작품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방식은 독창적이고 흥미롭다. 예를 들어 『빨간 머리 앤』에는 산딸기 주스, 바닐라 소스를 곁들인 자두 푸딩 등 많은 음식이 나오지만, 저자는 초콜릿 캐러멜을 선택한다. 머릴러와 매슈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앤이 절망에 빠져 “그토록 좋아하는 초콜릿 캐러멜도 삼킬 수 없는 상태”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마음에 박혔기 때문이다. 버림받은 열 한 살 소녀의 깊은 슬픔을 떠올리며, 저자는 진갈색 설탕과 걸쭉한 생크림을 저어 호박빛 캐러멜을 완성한다. 
 
그 외 『레 미제라블』에서 출옥한 장 발장을 위로했던 소박한 호밀 흑빵, 『모비딕』의 이슈메일이 출항을 앞두고 먹는 클램 차우더 수프, 제인 오스틴의 『엠마』에 등장하는 완벽한 반숙 계란까지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 깊이와 개성을 더해준 음식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스쳐 지나갔던 그 작품 속 음식 장면을 다시 펼쳐보게 된다. 더 나아가 좋은 사람들과 책 속 레시피를 따라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문학을 이야기한다면 더 할 나위 없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상상 만으로도 즐거워진다.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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