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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제품 사이, 젊어진 브랜드

중앙선데이 2017.12.03 02:00 560호 14면 지면보기
루이 비통은 올해 제프 쿤스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다빈치, 고흐 등의 명화를 프린트한 ‘마스터즈’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혹평과 찬사가 동시에 쏟아졌다.

루이 비통은 올해 제프 쿤스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다빈치, 고흐 등의 명화를 프린트한 ‘마스터즈’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혹평과 찬사가 동시에 쏟아졌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풍선 토끼와 강아지로 유명한 제프 쿤스는 포스트모던 키치(kitsch)를 대표하는 네오팝 아티스트다. 그는 일찍이 ‘도용’에 눈을 떴고 젊은 시절 옛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한 후 자신의 서명을 써 넣어 팔았다.

김상훈의 컬처와 비즈니스
<17> 아트 콜라보레이션

 
지난 4월 루이 비통과의 ‘아트 콜라보레이션(art collaboration)’인 ‘마스터즈’ 시리즈를 보자. ‘모나리자’, ‘호랑이 사냥’이 가방에 그대로 프린트되어 있고 그 위에 다빈치, 루벤스 등의 작가 이름이 떡 하니 붙어 있다. 게다가 루이 비통 이니셜(LV)과 대칭되는 지점에는 자신의 이니셜(JK)을 새겨넣었다. 자신을 상징하는 토끼 참(charm)도 잊지 않았다. “아트샵 상품 같다” “싼티 난다”는 혹평이 쏟아졌지만, “그게 바로 포인트!”라는 현대미술 전문가들의 평가를 듣고 나서 마스터즈 백을 보면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제품 발표회는 당연히(?) 루브르 박물관에서 했다.
 
루이 비통은 아트 콜라보레이션 효과를 가장 톡톡히 본 브랜드라 할 수 있다. 1997년 루이 비통에 영입된 마크 제이콥스는 스티븐 스프라우스·리처드 프린스·쿠사마 야요이 등의 작가와 부지런히 콜라보레이션을 추진했고, 그 결과 브랜드 이미지는 젊어지고 매출은 4배로 늘어났다. 일본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와 협업한 ‘멀티컬러 모노그램’은 4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설’이 되었다.
 
브랜드·아티스트·소비자의 윈·윈·윈 거래
60~7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 해체주의에 뿌리를 두고, 80~90년대의 퓨전과 하이브리드 트렌드를 먹고 자란 아트 콜라보레이션은 확실한 마케팅 효과 덕분에 이제 식상할 정도로 많아졌다.
 
‘아트 콜라보’가 노리는 일차적인 효과는 진부한 이미지의 탈피다. 아트와의 접목은 언제나 새롭고 젊은 이미지를 즉각적으로 창출하여 브랜드 재활성화(brand revitalization)를 가져온다. 루이 비통이 노린 것이 바로 그것이다. 펜디는 최근 빅뱅 멤버 태양과의 콜라보 제품인 ‘펜디 포 영배’ 백팩을 출시했는데, 심지어 ‘영(young)’이라는 태그까지 달았다(태양의 본명이 영배다).
 
반면 중저가 브랜드 H&M과 유니클로가 아트 콜라보를 하는 이유는 젊은 느낌과 함께 ‘고급스러운(luxurious)’ 이미지를 입혀 경쟁 브랜드와의 차별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현대미술, 그 중에서도 팝아트를 제품에 입히면 시대 정신을 이해하는 쿨하고 개념 있는 브랜드가 된다.
 
한편 콜라보에 참여한 아티스트는 순식간에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득할 수 있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경우 루이 비통 콜라보에 참여한 이후 10년 동안 그림 가격이 3배 이상 올랐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예술가의 아우라(aura)가 입혀진 콜라보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예술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소유한다는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다. 아티스트와 브랜드, 그리고 소비자까지 그야말로 윈-윈-윈 거래인 셈이다.
 
대표 분야는 패션이다. 65년 입생로랑이 몬드리안 드레스를 내놓은 이후 디올·구치·발렌티노 등 거의 모든 패션 브랜드가 아크 콜라보 열풍에 합류했고, 지금도 매년 연례행사처럼 발표되고 있다. 참고로 곤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프라다의 2013년 데미안 허스트 콜라보 ‘프라다 오아시스’는 올해 루이 비통 콜라보만큼의 충격과 논란을 가져왔다.  
 
아모레퍼시픽 설화수는 2015년 ‘코리안아트 콜라보레이션’의 일환으로 이이남 작가와 협업을 통해 미안피니셔 제품의 미디어 아트 영상을 제작해 광고에 활용했다.

아모레퍼시픽 설화수는 2015년 ‘코리안아트 콜라보레이션’의 일환으로 이이남 작가와 협업을 통해 미안피니셔 제품의 미디어 아트 영상을 제작해 광고에 활용했다.

랑콤·조말론·겔랑 같은 뷰티 상품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더페이스샵은 키스 해링, 스킨푸드는 스페인 작가 에바 알머슨과 협업한 패키지를 선보였고,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는 2015년을 ‘코리안 아트 콜라보레이션의 해’로 지정하고 이이남·이종석 작가와 함께 미디어 아트 영상을 제작한 바 있다.
 
희소성과 신선함 유지가 관건
좀 특이한 제품군도 마찬가지다. 벡스(Beck’s) 맥주는 길버트앤조지·트레이시 에민 등과 협업한 아트 라벨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코카콜라의 경우 여러 작가가 디자인한 병을 소개했는데, 장 폴 고티에 버전과 칼 라거펠트의 다이어트 코크 디자인이 큰 인기를 끌었다.
 
2011년에는 국내 맥주의 콜라보 대결이 있었다. 카스는 패션 디자이너 스티브j&요나p, 하이트 맥주는 이동기·최윤정·여동현 작가가 맥주병을 디자인했다. 피카소·샤갈·칸딘스키 등 저명 화가가 그린 와인 라벨로 유명한 샤토 무통로칠드는 2013년 이우환 작가의 라벨을 발표해 국내에서 화제가 됐다. 에비앙에서도 크리스천 라크르와·겐조·이세이 미야케 콜라보 제품이 나왔다. 스와치 시계는 백남준·오노 요코·키스 해링 등과 협업을 했고, 운동화 브랜드 컨버스는 리히텐슈타인·앤디 워홀과 콜라보 작업을 했다.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는 2014년 프랑스 작가 말리카 파브르와 아트 콜라보를 통해 다양한 기획상품을 제작하고 이를 활용해 일부 매장의 인테리어도 꾸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는 2014년 프랑스 작가 말리카 파브르와 아트 콜라보를 통해 다양한 기획상품을 제작하고 이를 활용해 일부 매장의 인테리어도 꾸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패션 상품과 달리 음료수 병의 콜라보는 소비자들의 ‘소장 욕구’를 크게 자극하여, 출시되자마자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필자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실물을 제대로 보지 못한 이유다(동화제약 활명수도 홍경택·이동기 등의 작가와 매년 콜라보 제품을 발표하고 있으니 내년을 노려보시길!).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도 프랑스 작가 말리카 파브르와 디자인 협업을 했는데 “종이컵이 예뻐서 못 버리겠다”며 미니 화분으로 재활용한다는 사연이 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콜라보 제품이 ‘일상의 예술품’이 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다.
 
몇 마디 첨언한다면 첫째, 아트 콜라보의 성공 여부는 브랜드와 아티스트 각자의 정체성을 제대로 살리면서 어떻게 조화를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 네가 하니 나도 한다는 식은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콜라보를 하지 않는다”는 자라코리아 이봉진 대표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둘째, 희소성의 유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콜라보가 시한을 두거나 한정판으로 나온다. 셋째, 진부함을 벗어나려는 시도인 아트 콜라보 자체가 진부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이제 웬만한 콜라보는 인스타그램에 사진 한 장 올라오지 않고 이슈조차 되지 못한다. 루이 비통의 제프 쿤스 콜라보가 새삼 영리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김상훈 :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미술경영협동과정 겸무교수. 아트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등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마케팅 트렌드와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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