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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가상각 대신 프리미엄 … 맛들이면 계속 찾죠”

중앙선데이 2017.12.03 02:00 560호 8면 지면보기
전시에 참여한 수집가들. 왼쪽부터 더지크 김정인 대표(보석), 빈트갤러리 박혜원 대표(가구), 아티쵸크 이리아 디렉터(포스터), 미니멀아날로그 조제희 대표(오디오), 큐아이엔시 최은영 대표(오브제)

전시에 참여한 수집가들. 왼쪽부터 더지크 김정인 대표(보석), 빈트갤러리 박혜원 대표(가구), 아티쵸크 이리아 디렉터(포스터), 미니멀아날로그 조제희 대표(오디오), 큐아이엔시 최은영 대표(오브제)

빈트갤러리

빈트갤러리

“중고품 취급받는 거 열 받지 않으세요?”

‘빈티지의 모든 것’ 전시 연 오래된 물건 수집가들

 
이 말 한 마디면 충분했다. 일면식도 없는 빈티지 수집가 8명이 의기투합해 서울 성수동 빈트갤러리에서 ‘올 댓 빈티지(11월 25일~12월 23일)’ 전시를 열기까지엔. 선동자로 나선 빈티지 가구 수집가이자 빈트 갤러리 박혜원(55) 대표는 “영어권의 경우 중고품(used)과 빈티지(vintage)를 분명히 구별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빈티지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중고품으로 취급하는 게 안타까웠다”며 “제대로 된 빈티지 문화를 알리고 싶어 전시회를 열게 됐다”고 전했다.
 
그리하여 가구ㆍ보석ㆍ시계ㆍ그릇ㆍ포스터ㆍ오브제ㆍ악어백ㆍ오디오 등 여덟 분야의 오래된 것에 중독된 사람들이 각자의 수집품을 들고서 한자리에 모였다. 수집 공력만 기본 10년이 넘는다. 노하우를 터득하기까지 수업료도 꽤 냈을 터다.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시계(노스타임)ㆍ악어백(이수향씨)ㆍ그릇(데미타스) 분야의 수집가 외 지난달 24일 마주한 다섯 명의 입에서 자꾸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전시장 한 귀퉁이에서는 “맞아요, 맞아”라는 추임새가 연신 터지는, 공감 가득한 ‘빈티지 부흥회’가 열렸다. “빈티지는 옳다!”는 이유가 넘쳐나는 자리였다.

 
빈티지란 무엇일까. 원래 빈티지는 라틴어로 와인(wine)을 뜻하는 ‘vinum’에서 파생했다. 즉 빈티지는 특정한 해에, 특정한 장소에서 생산된 최고의 와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날 빈티지는 와인을 넘어 오래된 제품을 뜻하는 의미로 확산됐다. 케임브리지 영어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빈티지는 ‘뛰어난 품질과 지속적인 가치가 있거나 특정 유형의 물건으로 과거 가장 우수하고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라는 기준이 좀 모호한데, 박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통상 제작한 지 30년 넘은 아이템을 빈티지라고 하고, 100년 넘은 것을 앤티크라고 합니다. 1900년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많은 것을 파괴한 뒤 삶의 질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도 폭발했어요. 디자인 모멘텀도 모던함으로 확 바뀌게 됩니다. 좋은 빈티지 제품에는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예술품과 제품 사이, 빈티지의 매력
판매도 겸하는 이번 전시에는 가구ㆍ보석ㆍ시계ㆍ그릇ㆍ포스터ㆍ오브제ㆍ악어백ㆍ오디오 빈티지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아티쵸크 이리아 디렉터

판매도 겸하는 이번 전시에는 가구ㆍ보석ㆍ시계ㆍ그릇ㆍ포스터ㆍ오브제ㆍ악어백ㆍ오디오 빈티지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아티쵸크 이리아 디렉터

큐아이엔시 최은영 대표

큐아이엔시 최은영 대표

빈트 갤러리 벽면에는 빈티지 포스터가 여럿 붙어 있었다. 한남동 아티쵸크 갤러리의 김아린(39) 대표가 수집한 것들이다. 1900년대 전시회나 제품 홍보를 위해 만든 포스터들이다. 컬러 프린트로 인쇄하는 요즘과 달리 빈티지 포스터들은 석판화로 찍어낸 것이 많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포스터는 1969년 제작된 것이었다. 대형 포스터인데, 하늘색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발목까지 오는 검정 재킷을 휘날리며 서 있다. 남자의 복장만 보면 ‘맘마미아 ’같은 뮤지컬 포스터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체는 이탈리아 실크 회사 ‘포데라 벰버그(Fodera Bemberg)’의 제품 홍보용 포스터. 휘날리는 재킷의 골드 빛 안감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었다. 프랑스 출신 패션일러스트레이터 르네 그뤼오(1909~1997)의 실크스크린 작품이다. 김 대표를 대신해 인터뷰 자리에 참석한 아티쵸크 갤러리의 이리아 디렉터는 “미국이나 유럽의 포스터 페어에서 사 오거나 개인 컬렉터에게 직접 사기도 한다”며 “이야기가 있고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 빈티지 포스터의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마구 찍어내는 공산품과 달리, 하나 밖에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큐아이엔시 최은영 대표·전방위 빈티지 수집가)은 빈티지의 가치를 매기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미니멀아날로그 조제희 대표

미니멀아날로그 조제희 대표

다른 하나는 만듦새다. 좋은 소재로 디테일 있게 만들어진 제품이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고 살아남았을 터다. 디자인 스튜디오 크라픽을 운영하는 조제희(43) 대표는 1950~70년대 브라운사의 오디오 제품을 수집ㆍ판매하는 ‘미니멀 아날로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회사 브랜딩 디자인을 하다 보니 디자인 쪽으로 의미 있는 아이콘을 찾아서 그 가치를 알리자는 취지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가 수집하는 오디오는 작고한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의 디자인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걸로 유명한 제품이다. 당시 브라운사의 디자인팀에 있었던 산업 디자이너 디터 람스가 만들었다. 반세기 전에 제작된 오디오인데 최근 출시됐다 해도 믿을 만큼 디자인에 군더더기가 없다. 앰프·릴·스피커를 조합해 2단부터 4단까지 구성할 수 있는 디터 람스의 마스터피스 오디오(1962)의 경우 벽걸이용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더지크 김정인 대표

더지크 김정인 대표

청담동에서 빈티지 주어리숍 더지크를 운영하는 김정인(47) 대표도 “50~60년대 미국은 풍요의 시대로, 모든 여성이 영화배우처럼 화려한 가짜 보석을 하고 다니는 게 붐이었다”며 “도금 제품의 경우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색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당시 얼마나 견고하게 제작됐는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흥미로운 지점은 젊은 세대들이 빈티지 제품에 더 열광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지친 현대인들이 아날로그 감성을 갈망하고 있는 걸까. 조제희 대표는 한 신혼부부의 일례를 들려줬다.
 
“아파트 입주를 앞둔 한 신혼부부가 매장에 찾아와서는 일반적인 가구는 하나도 안 고른 상태라며 빈티지 오디오부터 찾고 있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오디오 디자인에 맞춰서 소파나 전자제품을 선택하겠다는 거예요. 냉장고 같은 대중적인 제품보다, 자기 정체성을 투영할 수 있는 제품부터 먼저 선택하려는 경향을 느꼈습니다.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거죠.” 
 
컬렉터의 딜레마, 사고팔고 또 산다
중고장터에서 보물찾기하듯 발굴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시중에서 파는 빈티지 제품 가격, 이게 만만치 않다. 개인 수집가로 시작해 만 점이 넘는 빈티지 아이템을 모았고, 아예 빈티지 수집 관련 회사까지 차린 최은영 대표는 “모든 제품은 산 순간부터 값이 내려가는 감가상각이 이뤄지는데, 빈티지의 경우 유일하게 프리미엄이 붙는 아이템”이라고 전했다. 최 대표처럼 취미로 시작해 판매까지 나서는 수집가가 많은 이유다.
 
빈트갤러리 박혜원 대표

빈트갤러리 박혜원 대표

영국의 팝아트 화가인 데이비드 호크니가 디자인한 뮌헨 올림픽 포스터(1971년)의 경우 최근 대규모 회고전 이후 가격이 수 배가량 뛰기도 했다. 박혜원 대표는 일본계 미국 가구 디자이너인 조지 나카시마(1905~1990)가 만든 캐비넷을 예로 들었다. 개인 수집가이던 시절 이 캐비넷을 3개 갖고 있었는데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2개를 2000만~3000만원에 팔았다. 남은 하나는 도저히 팔 수 없어 남겨놨는데, 현재 가격이 1억원이 넘는단다. 박 대표는 “더는 만들지 않는데 수요는 많으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빈티지 수집가들은 돈 좀 벌 수 있는 걸까. 이구동성 나오는 답이 “아니오”다.
 
“아이템이 팔리면 눈앞에서 어른거려서 또 같은 제품을 사요. 가격이야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 오르는 거니 당연히 더 비싸게 사는 거죠. 계속 안 사고 견딜 수 없으니 중독이에요. 물론 못 팔고 창고에 잠겨 있는 아이템도 숱하죠. 잘 수집하기까지 수업료도 엄청납니다. 아직도 시행착오가 많으니까요. 여기 들이는 노력으로 다른 것 하면 박사될 거에요.” (최 대표) “맞아요, 맞아!”(일동)
 
시간을 뛰어넘은 빈티지에 푹 빠져 있는 이들에게 ‘졸업’이란 없어 보였다. 그야말로 ‘타임리스 클래식(Timeless Classic)’한 세계였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빈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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