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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성·이념 차별 헤치며 진짜 전통으로 발전

중앙선데이 2017.12.03 01:54 560호 21면 지면보기
[비주얼 경제사] 낭만적 허구를 바탕으로 시작된 근대올림픽
그림1 장 드루아, 1924년 파리 올림픽 포스터.

그림1 장 드루아, 1924년 파리 올림픽 포스터.

그림1이 보여주는 첫째 특징은 올림픽 경기의 엠블럼인 오륜 마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 5대륙을 상징하는 오륜마크는 1912년에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도안했다. 1914년에는 올림픽 깃발로 제작됐고, 1920년 올림픽부터 공식 사용됐다. 그러나 1928년 이전에는 포스터에 오륜마크가 등장하지 않는다. 초창기 포스터는 어느 국가가 올림픽 경기를 개최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개최국의 위상을 과시하는 데에 주된 목적을 뒀다. 그림1의 배경을 이루는 커다란 삼색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둘째 특징은 포스터의 모델이 백인 남성 일색이라는 점이다. 1896년 첫 근대 올림픽의 참가국들은 거의 모두 서구국가였으며 여성이 참가하는 종목은 전혀 없었다. 20세기에 들어서 인종이 다양해지고 여성의 참가가 조금씩 인정됐지만, 1924년에도 백인 선수가 대부분이었고 여성 선수는 남성 선수의 5% 규모였다. 그러므로 포스터가 백인 남성만으로 채워진 것은 그다지 이상할 게 없었다. 마지막으로, 포스터에 등장하는 청년들이 오른팔을 높이 뻗어 올리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대 로마로부터 유래한 경례 방법으로 올림픽 경례라는 명칭을 얻게 된 인사법이다. 올림픽경기가 유럽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강조하는 듯하다. 이 경례 방법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된다. 나치의 경례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처음엔 개최국 위상 과시에 초점
백인 남성 위주의 행사로 치러져
과도한 비용 등 위험요소 많지만
세계인의 교류 행사로 자리매김

 
쿠베르탱, 평화 위해 고대 올림픽 되살려
그림2 오귀스트 마티스, 1924년 몽블랑 동계올림픽 포스터.

그림2 오귀스트 마티스, 1924년 몽블랑 동계올림픽 포스터.

초창기 포스터는 당시 올림픽 경기의 풍경이 오늘날과 사뭇 달랐음을 말해준다. 국경을 초월해 선수들이 우의를 다지는 글로벌한 행사라는 측면보다는 올림픽 개최국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었으며, 서구 중심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양상이 두드러졌다. 국적·인종·성별을 초월해 평등과 평화를 지향하는 오늘날의 올림픽 정신은 초창기에는 제한적으로만 존재했다.
 
동계올림픽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림2를 보자.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개최된 첫 동계올림픽을 홍보하는 포스터다. 봅슬레이 선수들이 경주를 막 마치고서 속도를 줄이고 있다. 그 위로 날아가는 붉은색 독수리가 시선을 압도한다. 독수리가 움켜쥐고 있는 것은 올리브 화환, 그리고 화환을 묶고 있는 삼색기다. 우승한 봅슬레이 선수들의 머리에 곧 이 화환이 얹어질 것이다. 이 멋들어진 포스터에도 개최국 프랑스의 위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넘쳐난다.
 
쿠베르탱은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근대올림픽을 창시하게 된 것일까? 프랑스 귀족 출신인 쿠베르탱은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무참히 패한 역사를 지켜보며 자랐다. 그는 교육에 관심이 깊었는데, 특히 영국 상류층 학교의 체육교육을 보면서 단체운동이 인간을 도덕적·사회적으로 성숙시킬 것이라 확신했다. 패전한 조국을 강건하게 재건하는 데에도 유익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곧 쿠베르탱은 경쟁적 민족주의에서 국제 평화주의로 마음을 돌렸다. 당시 한창 전개되고 있었던 그리스 유적 발굴과 역사 재조명 움직임이 그를 사로잡았다. 특히 기원전 8세기에 시작돼 기원후 4세기까지 이어진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은 지극히 숭고한 역사로 보였다. 4년 주기로 올림픽이 열리면 전쟁 중이던 도시국가들이 일제히 휴전했다. 또한 아마추어 선수들이 다른 목적이 아니라 오직 명예만을 위해 투혼을 불사르며 정정당당히 기량을 겨뤘다. 승리가 아니라 참가 자체가 의미 있다는 관념도 등장했다. 쿠베르탱이 볼 때 고대올림픽은 근대인들이 되살려야 할 가장 순수하고 영광스런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고대올림픽의 경기 광경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당시 도기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림3은 기원전 5세기에 제작된 도기의 표면에 그려진 판크라티온이라는 경기 장면이다. 이 경기에서 선수들은 온몸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공격해 기권을 받아내거나 죽게 하면 승리한다. 그림에서 공격을 당하고 있는 오른쪽 선수가 손가락으로 상대 선수의 눈을 찌르려고 한다. 그러자 뒤에서 심판이 막대기를 들고 반칙을 제지하려 한다. 2500년 전 경기 장면이 참으로 생동감 넘치게 표현돼 있다.
 
오늘날 여러 역사가는 쿠베르탱이 상상한 고대올림픽이 실제와 매우 달랐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도 쿠베르탱이 높이 평가한 아마추어리즘은 기원전 5세기까지만 해당하고 이후 프로페셔널리즘이 이를 대체했다. 당시 많은 선수가 참가가 아니라 승리와 포상에 집착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올림픽이 실제로 평화를 유발했다고 믿을 근거도 희박하다. 아마도 쿠베르탱은 고대 올림픽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해석했던 모양이다. 혹은 그가 의도적으로 고대올림픽을 숭고한 이미지로 부풀렸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추진하는 근대올림픽 운동에 동력으로 삼기 위해서 말이다.
 
 
상업화, 프로 선수 참가 등 올림픽 정신 위협
그림3 고대 그리스도기에 그려진 판크 라티온 경기 장면, 기원전 490~480년.

그림3 고대 그리스도기에 그려진 판크 라티온 경기 장면, 기원전 490~480년.

사실 19세기 후반은 서구에서 수많은 허구 전통이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국민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근거가 취약한 신화와 전통을 마치 공식 역사였던 것처럼 꾸민 것이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화려한 즉위 50년 기념의식, 스코틀랜드의 씨족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다양한 무늬의 킬트(남성용 치마), 프랑스의 바스티유 함락 기념행사, 미국의 성조기 찬양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 사례들과 달리 근대올림픽 운동은 국제주의를 표방했다. 그렇지만 현재의 필요성에 따라 과거를 재창조했다는 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따라서 근대올림픽도 ‘만들어진 전통’의 목록에 포함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근대올림픽은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민족주의적 경쟁심을 극복하는 게 초미의 과제였고, 성차별과 인종차별이라는 완강한 인습의 장벽을 무너뜨려야 했다. 양차 세계대전 때에는 올림픽 경기가 열리지 못하는 오욕을 맞봤고, 20세기 중반의 냉전 시대에는 이념적 갈등이 보이콧으로 이어지는 수난을 겪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난관 속에서도 올림픽은 점차 수많은 국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대표적인 국제행사로 인정을 받게 됐다.
 
1970년대부터는 더욱 강력한 위험요소가 올림픽 정신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바로 경제적 압박이다. 대규모 행사를 치르려면 금전적 고려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올림픽 개최도시 중에서 경기장과 인프라 건설에 과도하게 재정지출을 한 후유증을 앓는 사례가 늘어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방송중계권료 수입으로 관심을 돌렸다. 초국적 기업들은 천문학적 금액의 스폰서십을 제공하고 대신에 광고권을 획득했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프로 선수의 참가를 허용하는 종목이 늘어났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돈의 위력이 올림픽을 상업화의 방향으로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이 문제를 극복할 길을 찾지 못하면 올림픽 정신은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근대올림픽 운동은 어느덧 130년의 역사를 이루어왔다. 민족·성·인종·이념과 상업화라는 위험요소들을 하나하나 어렵사리 헤쳐가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제 올림픽은 부족하나마 세계 시민이 동참하는 대표적 국제교류로 평가받는다. 비록 허구적 전통에서 출발했지만, 올림픽은 어느새 그 자체로 인류의 소중한 전통으로 자리를 잡았다. 문화의 세계화를 가속화하고 세계 시민들 간의 상호 이해를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곧 평창 올림픽 경기가 열린다. 메달 개수, 국가 순위, 개최국의 위신과 같은 요소들을 접어두고 세계인의 스포츠 향연을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면 좋겠다.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 뛰고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선수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을 기리며 말이다.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bks21@skku.edu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세계화의 풍경들』『비주얼 경제사』『세계경제사 들어서기』 등 다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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