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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으로 만날 ‘독고 탁’… 추억의 만화 부활하나

중앙선데이 2017.12.03 01:24 560호 26면 지면보기
[CRITICISM] 웹툰 앞선 한국, 과거의 걸작엔 소홀
지난해 타계한 이상무 화백이 젊은 시절 한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해 ‘독고 탁’을 그리는 모습. 오른쪽 컬러 이미지는 그가 그렸던 추억의 캐릭터를 활용해 최근 새롭게 개발 중인 이모티콘.

지난해 타계한 이상무 화백이 젊은 시절 한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해 ‘독고 탁’을 그리는 모습. 오른쪽 컬러 이미지는 그가 그렸던 추억의 캐릭터를 활용해 최근 새롭게 개발 중인 이모티콘.

며칠 전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새롭게 20권으로 편집해 2000질 한정판으로 출간한 이두호 작가의 『임꺽정』 복간판이다. 포장을 풀어보니 더 뿌듯하다. 박스 측면에 ‘0954/2000’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내 책이 954번째 전질이다. 『임꺽정』은 1991년 3월 6일부터 스포츠 신문에 연재를 시작해 1996년 5월 2일까지 꼬박 5년 2개월이 걸린 작품이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작가는 일주일에 여섯 번 새벽 4시에 일어나 8시간씩 만화를 그렸다. 그 결과 소설·영화·드라마에 나온 임꺽정과  다른 ‘이두호의 임꺽정’이 되었다.

세대를 이은 콘텐트 소비 풍경
한 국가의 문화 수준 드러내

1930년대 캐릭터 슈퍼맨·배트맨
80년간 시리즈로 살아남았는데
한국의 걸작은 경매 사이트에만

디지털 만화 시장 뿌리인 작품들
‘과거’서 벗어나 현재에 살게해야

 
지난 10월 새롭게 20권으로 편집해 2000질 한정판으로 출간된 이두호의 『임꺽정』.

지난 10월 새롭게 20권으로 편집해 2000질 한정판으로 출간된 이두호의 『임꺽정』.

『임꺽정』은 연재가 끝나던 1996년 프레스빌에서 무려 500쪽 분량이 삭제된 초판본이 전체 21권으로 출간되었고, 이후 2002년 자음과 모음에서 완전판 32권으로 출간됐다. 2013년 프랑스 앙굴렘 만화페스티벌 한국만화특별전의 한 파트로 이두호, 김동화 작가의 전시가 열렸다. 2011년 빠께(Paquet)에서 11권으로 출간된 프랑스판 『임꺽정(Le Bandit généreux)』에 들어간 인물 중심의 단정한 표지 일러스트와 책을 함께 전시했다. 2013년 당시 한국에서는 『임꺽정』을 제대로 구해보기 힘들었다. 이런 만화를 외국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지난 10월 23일 바다출판사는 카카오 메이커스에 이두호의 『임꺽정』을 새롭게 편집해 2000질 한정판으로 출간하는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소식을 듣고 메이커스에 접속해 보니 주문 기간이 지나버렸다. 2000질만 판매하고 끝나는 프로젝트여서 못 구할 줄 알았는데, 주문자 숫자를 보니 164명에 불과했다. 12월 2일 현재 구매 링크는 살아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이두호’, ‘임꺽정’이라는 검색어를 구글에 넣는 순간 ‘다운’이 자동완성되었다. 서글프게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정식으로 유통되는 콘텐트를 불법으로 소비한다. 이런 상황이니 예전 만화의 재출간은 쉽게 진행하기 힘들다. 만화는 제대로 원고가 보관된 경우도 별로 없다. 이럴 경우 복원작업까지 해야 하니 오래전 만화는 늘 어른들의 추억 속에만 있을 뿐이다.
 
 
일본 전자책 시장 이끌어가는 만화
일본의 경우 종이잡지와 책 시장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고 그 빈자리를 전자책이 빠르게 채우고 있다. (주)임프레스에서 매년 발간하는 ‘전자책 비즈니스 조사보고서’ 2017년판에 따르면 2016년 결산 기준 전자책 시장 규모는 2278억엔에 달한다. 이중 만화 시장규모가 1617억엔이고, 나머지 문예·실용서의 시장 규모가 359억엔이다. 2011년 651억엔 규모의 전자책 시장은 2016년 2278억엔으로 급성장했으며 이후 매년 안정적 성장을 하리라 예측되고 있다. 전자책·전자잡지 시장의 성장은 전자책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전자책에서 만화가 80%를 점유하고 있다.
 
일본 전자책 시장을 끌어가는 힘은 만화다. 웹툰 중심인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코미코(comico)로 대표되는 웹툰 서비스와 함께 픽코마(piccoma)나 간마(GANMA) 같은 전자책을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가 활성화되었다. 픽코마나 간마와 같은 전자책 플랫폼은 물론 고단샤, 쇼가쿠칸, 슈에이샤 등 주요 출판사에서도 별도 서비스를 통해 자사가 보유한 전자책을 판매하고 있다.
 
여러 전자책 플랫폼에서는 신작을 연재하기도 하지만 구간도 인기리에 판매된다. 특히 장기간 연재되어 권수가 축적된 작품의 경우 여러 권을 무료로 공개하거나 특정 요일에 무료로 공개하기도 한다. 쇼가쿠칸의 만화 앱 ‘망가원(マンガワン)’의 경우 지난 4월 1000회 앱 다운로드를 기념으로 테즈카 오사무의  『불새』『철완아톰』『블랙잭』『도로로』『붓다』 등 9개 작품을 매주 무료로 연재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전자책 시장은 기존 만화 독자가 아닌 새로운 독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된 걸작들은 본 사람보다 보지 않은 사람이 많다. 일본의 전자책 플랫폼들은 풍부하게 축적된 자국의 만화 콘텐트를 디지털로 변환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작품의 완성도가 검증된 작품의 상당 분량을 무료로 서비스한 뒤 유료 구매로 유도한다. 이런 부분 유료 모델은 한국의 카카오페이지에서 효과적으로 검증된 모델이며, 특히 새로운 독자층으로 구매를 확대하는 데 효과적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혁신적 방법으로 접목시킨 사례도 있다. 지난 9월 12일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www.kickstarter.com)에  ‘전권을 한 권에-북두의 권’ 프로젝트가 런칭되었다. 부론손 원작, 하라 데쓰오가 만화를 그린 『북두의 권』은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소년점프’에 단행본 27권 분량으로 연재된 1980년대 소년만화의 대표작품이다. ‘전권을 한 권에-북두의 권’ 프로젝트는 제목 그대로 27권의 만화를 한 권의 전자책에 담는 프로젝트다. 여기까지는 특별하지 않다. 이 프로젝트가 화제가 된 것은 리더기가 완전히 책처럼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두툼한 단행본 사이즈로 디자인되어 양면으로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디스플레이를 제외하고는 종이로 제본돼 있어 물리적으로도 책을 보는 것 같다. 펀딩 목표 금액은 300만엔이었지만 최종적으로 2293만6350엔을 모아 목표 금액을 훌쩍 뛰어넘었다. 오직 『북두의 권』만 볼 수 있는 전자책이지만,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전자책의 한계를 뛰어넘어 책장에도 꽂을 수 있는 ‘책다운 전자책’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세대를 넘어 좋은 콘텐트를 함께 소비하는 풍경은 한 국가의 문화수준을 상징한다. 만화 문화가 발전한 국가들은 여러 세대가 함께 보는 만화들이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만화인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은 전 권이 서점에서 판매 중이다. 당연히 캐릭터 사업도 활발하고, 그러니 만화를 활용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제작도 진행된다. 미국에서 ‘슈퍼맨’이 처음 등장한 건 1938년, ‘배트맨’은 1939년이다. 8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리즈는 계속된다. 1969년 처음 연재를 시작한 『도라에몽』은 2020 도쿄 올림픽 홍보영상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다. 일본은 만화 캐릭터가 국가상징이 되었는데 우리는 경매 사이트에서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을 뿐이다. 어렵사리 출간한 만화들도 찾는 이들이 없다. 새로운 독자들과 만화역사의 걸작들이 만날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변화의 가능성이 보인다. 지난 11월 3일 만화의 날 기념식에 『비둘기 합창』의 캐릭터인 독고 숙, 준, 봉구, 영, 탁이까지 다섯 남매와 누렁이가 무대에 나와 이상무(1946~2016) 선생을 추모하는 작은 공연을 보여줘 많은 감동을 주었다. 이상무 선생은 1970~80년대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만화가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독고 탁이라는 친근한 주인공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상무 선생은 꾸준히 가족의 가치와 스포츠를 통한 성장을 담은 만화를 발표했다. 1970~8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낸 많은 이들은 『우정의 마운드』(1976), 『비둘기합창』(1978), 『울지 않는 소년』(1978), 『아홉 개의 빨간 모자』(1981), 『다시 찾은 마운드』(1982), 『달려라 꼴찌』(1983) 같은 만화를 결코 잊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2017년 12월 현재 서점에서 살 수 있는 만화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지원으로 복간된 『달려라 꼴찌』가 유일하다.
 
이상무 작가(본명 박노철)의 딸 박슬기씨는 ‘독고탁 컴퍼니’를 만들어 다른 방향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먼저 독고 탁 등 주요 캐릭터의 이모티콘을 개발하여 서비스할 예정이다. 카카오톡이나 라인 등 주요 메신저 서비스에서 제공되는 이모티콘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캐릭터 비즈니스다. 2011년 카카오 이모티콘 스토어를 오픈한 이후 6년간 무려 1700만 명이 이모티콘을 구매했다. 여러 세대가 함께 사용하는 메신저 서비스의 특성상 추억의 만화 캐릭터를 새롭게 리바이벌하기에 가장 적합한 전략이다. 이모티콘 서비스를 시작으로 독고탁 컴퍼니에서는 이상무 선생의 주요 타이틀을 전자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신일숙 작품 전자책 서비스 추진도 고무적
다른 사례도 있다. 카카오페이지에 신작 『카야』를 연재하는 신일숙 작가의 모든 작품은 2018년부터 거북이북스에서 종합적으로 관리한다. 새로운 디자인과 편집으로 전자책, 연재 형식의 화별 서비스 등 다양한 계획을 하고 있다. 전자책은 종이책과 비교해 비용 절감이나 효율성 면에서 뛰어나다. 특히 디지털 독서가 일반화된 새로운 세대에게는 더욱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아직 일본처럼 전자책 시장이 확대되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국은 일본보다 한발 앞서 웹툰으로 디지털 만화 시장을 열었다. ‘코미코’나 ‘픽코마’와 같은 한국산 웹툰앱은 일본에서 디지털 만화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만화 전통에 뿌리를 내린 만화 문화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한국 디지털 만화 시장은 뿌리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만화 역사에서 대중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걸작들은 모두 ‘과거’에만 머물러있지 일본처럼 현재를 살지 못하고 있다. 독고탁 컴퍼니의 작은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진다면, 신일숙 작가의 작품이 전자책을 통해 새로운 독자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다가간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한국 만화 역사에 축적된 여러 걸작이 전자책에 최적화된 디자인과 편집, 서비스와 만난다면 이 작품들은 추억이 아니라 디지털에서 독자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 만화평론가
1995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만화평론으로 데뷔 후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만화 이론·역사·스토리텔링 등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만화를 위한 책』『누가 캔디를 모함했나』『박인하의 즐거운 만화가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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