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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프게 쓰는 푼돈 돈도 뭉쳐야 산다

중앙선데이 2017.12.03 01:00 560호 28면 지면보기
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돈에는 이름이 없다. 금액이 같다면 모든 돈의 객관적 가치는 완벽히 일치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에 주관적 의미를 부여하고 같은 금액에 다른 가치를 느낀다. 다음을 보자.
 
A. 복권 당첨금 10만원
B. 땀 흘려 번 9만원
 
A의 객관적 가치는 B보다 높다. 하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A의 주관적 가치는 B보다 낮다. 복권에 당첨되면 우리의 뇌는 ‘공짜’라는 이름을 붙인다. 공짜 돈으로 분류되는 순간, 우리의 뇌가 느끼는 주관적 가치는 하락한다. 따라서 A는 B보다 쉽게 지출될 가능성이 크다.
 
돈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우리의 뇌는 돈의 액수에 따라, ‘푼돈’과 ‘목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다른 태도를 보인다. 가령 같은 1만원이라도 사람들은 3만원이 든 지갑보다 100만원이 든 지갑에서 꺼낼 때 더욱 신중해진다. 우리의 뇌 속에서 ‘목돈은 아끼고, 푼돈은 쓴다’는 공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음을 보자.
 
A. 100만원을 한꺼번에 받는 복권
B. 5만원을 20개월 동안 받는 복권
 
A와 B의 총액은 같다. 하지만 목돈(A)을 받으면 저축할 확률이 높다. 반면 푼돈(B)을 받으면 지갑에 넣어두었다가 곧바로 생활비로 지출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뇌는 목돈은 장기예산으로, 푼돈은 단기예산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100과 5×20은 객관적으로 대등하지만, 우리의 뇌 속에서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이다. 이로 인해 동일한 금액이라도 우리의 뇌가 어떤 예산으로 인식하는지에 따라 지출 여부를 고민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평소 눈여겨보았던 10만원짜리 구두가 있는 상황에서 마침 보너스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보너스로 10만원을 받았다면 곧바로 구두를 살 확률이 높다. 반면 100만원을 받았다면 보너스 금액은 늘어나도 구두를 살 확률은 오히려 낮아진다.
 
푼돈 효과로 인해 배상금으로 받은 금액이 적을수록 사람들은 돈을 더 헤프게 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스라엘 경제학자 마이클 랜즈버거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 국민이 서독 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을 어떻게 소비했는지에 대해 조사했다. 사람들이 받은 배상금은 연봉의 7%부터 70%까지 다양했다. 조사 결과,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배상금의 23%만 소비하고 나머지는 저축했다. 하지만 배상금을 적게 받은 사람들은 수령액의 200%까지 소비했다. 받은 배상금(100%)에 자신의 돈(100%)까지 더해 받은 돈의 두 배(200%)를 지출한 것이다. 사람들은 푼돈이라고 느끼면 수중에 지니고 있던 돈을 합해서라도 빨리 써버리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돈을 빨리 모으려면 소액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푼돈은 사용 목적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더 쉽게 지출된다. 따라서 수중에 들어온 돈은 금액과 관계없이 곧바로 주택, 교육, 여행같이 목적이 있는 통장에 넣어야 한다. 소액이라도 지출 목적이 뚜렷한 통장에 들어가면 푼돈이라는 느낌을 쉽게 지울 수 있다.
 
푼돈 효과는 국가 정책에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세금을 돌려줄 때, 소비를 활성화하려면 세금을 소액으로 나누어 현금으로 줘야 효과적이다. 반대로 저축을 장려하려면 세금을 모아 목돈으로 지급하되 통장에 입금해 주어야 한다. 돈이야말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부대표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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