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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뤼바인과 막걸리

중앙선데이 2017.12.03 01:00 560호 30면 지면보기
일상 프리즘
벌써 12월이 됐다. 엊그제 가을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데 주위의 나무들은 화려한 단풍을 벗고 겨울 준비에 들어갔다. 이렇게 찬 바람이 불고 눈 소식이 들리면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떠오른다. 독일에서 시작한 크리스마스 마켓은 도시의 광장에서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한 달간 열린다. 독일에만 3400여 곳의 크고 작은 시장이 생긴다. 철저히 여름 휴가를 챙기고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등 축제를 즐기는 유럽의 문화가 부럽다. 오죽하면 유럽에선 상반기엔 휴가를 위해, 하반기엔 크리스마스 축제를 위해 돈을 모은다는 말이 있을까.
 
오래전 독일에 출장을 갔다가 지인과 함께 크리스마스 마켓을 들린 적이 있다. 대부분 시장은 시청·대성당 광장 등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있고 교통이 편리한 곳에 열린다. 광장 중심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고 주변엔 각종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이곳에선 트리 장식용 유리구슬은 기본이고, 호두까기 인형과 산타클로스·천사 모양의 목각 인형도 판다. 지역 특산품이나 간단한 음식을 파는 가게도 있다.  
 
그 중에서도 독일어로 ‘따뜻한 와인’이란 뜻의 글뤼바인이 눈에 띄었다. 비싸지 않은 와인에 계피·오렌지 등을 넣고 끓인 것이다. 독일의 겨울은 유난히 춥다. 큰 도시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최소 2~3시간 소요해야 ‘수박 겉 핥기’ 정도 구경할 수 있다. 혹독한 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게 바로 글뤼바인이다. 따뜻하게 데워진 향긋한 와인을 마시면 얼었던 몸이 조금씩 풀린다. 흥미로운 것은 일회용 컵 대신 머그잔에 글뤼바인을 따라준다는 점이다. 물론 머그잔 값을 받지만 다 마신 뒤 잔을 반납하면 돈은 돌려준다. 독일 사람들은 그만큼 일회용 컵 사용을 자제하며 자연환경 보호에 신경을 쓰는 듯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낮보다 밤이 볼 만하다. 화려하게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는 물론 하나 둘 가게 조명에 불이 들어오면 그림처럼 아름답다.
 
며칠 전 시골 전통시장에 다녀왔다. 역시나 세찬 바람에 구경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색 맞춰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가게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곧 점심시간이 되어 일행과 장터에서 가장 유명한 국밥집에 들렀다. 막걸리를 주문한 뒤 앉아 있으니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떠올랐다. 문득 그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사는거고, 우리는 우리식으로 살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것이 좋고 나쁘다기보다는 얼마나 내 마음에 와닿느냐가 더 중요하다. 어렸을 때 맛있는 음식이 조금 크니 별로였고, 중장년 때 맛있던 것이 노년에는 맛이 없을 수 있다. 모르고 우기면 이상한 얘기가 되겠지만 다양하게 경험을 해본 뒤 스스로 판단하는 게 맞다.  
 
오늘은 장터 국밥에 막걸리가 최고다. 크리스마스 마켓과 우리 시골 장터가 같을 순 없다. 그러나 그쪽 상인이나 우리 상인이나 사는 환경과 취급하는 상품이 다를뿐 같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저 많이 팔고 수익이 좋기를 기대하는 입장일 거고 연말이나 내년에는 더욱 더 장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안규문
전 밀레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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