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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개혁은 정권과 절연 선언부터

중앙선데이 2017.12.03 01:00 560호 2면 지면보기
사설
국가정보원이 간판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꿔 달고 기존의 직무에서 대공수사 기능을 떼어 내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내놓은 이후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직 국정원장 대부분은 “남북 대치 상황에서 간첩은 누가 잡느냐”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에 극력 반대한다. 대공수사의 특성상 정보 수집과 수사가 분리돼선 곤란하며 오히려 국정원을 해체해 수사와 정보 수집을 국정원이 아닌 다른 기관에서 맡게 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문제 제기도 정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대공수사의 신속성, 정보·보안 유지의 필요성 등의 관점에서 보면 국정원 자체 개혁안은 향후 대공수사의 공백 현상을 불러올 소지가 분명히 있어 보인다. 게다가 대공수사 기능을 어디에 이관할지 구체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정원이 개정안을 덜렁 내놓은 것은 성급했다는 비판도 받을 만하다.
 
이러한 국정원 자체 개혁안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의 적폐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도려내야 한다. 국내 정치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법 규정이 버젓이 있는데도 국정원은 그간 정권의 시녀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2012년 국정원 댓글사건에서 나타났듯 국정원은 민간인을 동원해 정권에 비판적인 여론을 잠재우거나 친정부적인 여론을 조작하는 데 가담했다. 박근혜 정부의 남재준·이병기 전 원장의 잇따른 구속 사례에서 보듯 국정원이 정보 수집 등의 활동에 써야 할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하는 등 국고 손실을 초래한 혐의도 받고 있다. 정보기관 요원이 정부 비판 인터넷 글에 댓글을 달고, 고위 간부가 007가방에 현찰을 담아 청와대 인사에게 전달한 것이 우리 정보기관이 그간 국민에게 보여 준 참담하고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간첩은 누가 잡느냐”는 논리로 정보기관으로서 기본을 상실한 국정원을 그냥 둘 수는 없다.
 
국정원 개혁은 앞으로 더 이상 정치적 목적으로 정보기관을 활용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에서 출발하는 게 순서다. 국내 정치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법이 있어도 국정원은 정권의 구미에 맞춰 ‘입안의 혀’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나. 국정원이 이렇게 된 것은 직원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을 원장으로 앉혀 수족처럼 부린 역대 대통령 아닌가. 그렇다면 국가 안보가 정권 유지보다 중요하며, 정권이 바뀌어도 정보기관의 독립적 헌법기관으로서 위상을 지켜 주겠다는 최고정책결정자의 약속과 실천이 먼저 나와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국정원 개혁의 길이 열린다.
 
그다음엔 국정원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정보기관이 국내에서 벌이는 대내 정보활동이 비밀리에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정보활동 역시 견제받아야 한다. 영국의 정보기관인 MI5 역시 내각·의회·사법기관이라는 세 가지 경로로 감시와 감독을 받는다고 한다. 기밀 유지가 불가피한 정보기관의 활동도 법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공수사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다. 각국 정보기관의 운영 사례를 보면 정보 수집과 수사를 분리한 나라도, 이를 통합한 나라도 있다. 국가마다 처한 안보 상황이 다르므로 어떤 것이 더 우월하다고 단정하기 쉽지 않다. 다만 사이버 테러를 비롯한 각종 테러 위협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각국은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둬 대내외 정보 수집활동을 강화하는 추세다. 현 정부가 국정원의 자체 개혁 방안대로 모든 수사권을 다른 기관에 이관하거나 폐지하고자 한다면 이때 발생할 수 있는 대공수사망 공백 현상에 대해 보완책도 함께 발표해 일말의 불안감을 씻어 주길 바란다. 간첩 수사는 누가 맡을지, 이 기관과 국정원이 어떻게 정보를 원활하게 주고받으며 공조할 수 있을지 말이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는 국민의 안전과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은 뭐든지 수행하고 절대 입을 열지 않아 ‘침묵의 구원자’로 통한다고 한다. 국정원이 원훈(‘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을 지켜갈 수 있도록 정권 스스로 악연을 끊겠다는 절연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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