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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일으키면 대한민국도 패권국 가능”

중앙선데이 2017.12.03 00:02 560호 8면 지면보기
[김환영의 지식 톡톡톡] 『패권의 비밀』 저자 김태유 서울대 교수
김태유 교수의 『패권의 비밀』은 영문판(The Secrets of Hegemony)으로도 출간됐다. 최근 옥스퍼드대 교수 등 유럽 학자들은 이 책의 속편을 공동 집필하기로 했다. 임현동 기자

김태유 교수의 『패권의 비밀』은 영문판(The Secrets of Hegemony)으로도 출간됐다. 최근 옥스퍼드대 교수 등 유럽 학자들은 이 책의 속편을 공동 집필하기로 했다. 임현동 기자

패권(霸權)은 ‘어떤 분야에서 우두머리나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여 누리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다. 국제정치에서는 ‘어떤 국가가 경제력이나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압박하여 자기의 세력을 넓히려는 권력’이다. 현재 패권국은 미국이다. 미국의 위치를 위협하는 것은 중국이다. 일반인에게는 좀 생소한 단어일 수도 있는 패권·패권국에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크게 과장된 말은 아니다. 패권에 대해 많은 책이 우리 출판가에 나와 있다. 최근 김태유 서울대 교수가 출간한 『패권의 비밀』의 차별성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소위 4차 산업혁명과 패권의 문제를 연계한 데 있다.

한반도 5.5분의 1 영토 네덜란드
상업혁명 일으켜 한때 패권국
산업혁명 주도한 영국도 마찬가지
정해진 대로 온 게 아니라 노력한 것

성장동력 잃고 중진국 함정에 빠진
한국의 문제 해결책이 4차 산업혁명

진보든 보수든 정책 잘하는 게 중요
변화의 시대에 맞는 관료제도 필요

 
김 교수에 따르면 1853년 미국의 페리 원정과 1866년 프랑스의 조선 원정(병인양요)이 일본과 한국 양국의 운명을 갈랐다. 일본은 화혼양재(和魂洋才), ‘일본의 혼을 지키는 가운데 서양의 기술은 배우자’는 논리로 개항을 했다. 우리는 척화비를 세우고 위정척사(衛正斥邪)를 했다.
 
김 교수는 이 두 원정이 한·일 양국에 요구한 것은 1차 산업혁명이라고 재해석한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새로운 ‘개항’을 요구한다고 본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대비하고 주도하느냐에 따라 우리도 패권국이 될 수 있다는, 좀 ‘황당한’ 주장을 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궁금해 김 교수를 지난달 22일 서울대에서 인터뷰했다.

 
학문 분과나 학자마다 패권의 정의가 다르다.
“인류 문명에는 완전한 약육강식(弱肉强食) 시대가 있었다. 힘 있는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점령하고 약탈하고 노예로 삼았다. 우리가 추구할 만한 가장 합리적인 원대한 목표를 세계정부 시대라고 생각한다. 단일정부가 지구상 모든 인류를 공평하고 편안하게 민주적으로 이끄는 시대다. 둘 사이에 패권시대가 있다.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강압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 동의를 구하는 것이 패권이다. 패권을 나쁘게 이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자발적인 동의를 구한다는 면에서 굉장히 인도적이라고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약 30년간은 ‘골든 에이지(Golden Age)’였다. 미국의 패권 밑에서 30여 년 동안 인류가 창출한 재화가 그전 300년, 3000년 동안보다 많다. 1인당 국민총소득 100달러가 안 됐던 한국도 3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둘 정도로 성장했다.”
 
한국에 패권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가장 많이 기억하는 게 국권피탈·임진왜란·병자호란이다.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든 역사를 겪었나 생각해 봤다. 작아서 그랬다. 그런데 가만 보니까 한반도의 5.5분의 1밖에 안 되는 네덜란드가 한때 세계 패권국이었다.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네덜란드의 패권을 이어받은 것은 영국이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거의 같은 크기다. 우리 후손에게 역사를 가르칠 때 ‘일본 제국주의가 나쁘다’는 것만이 아니라 네덜란드·영국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실패한 이유뿐만 아니라 성공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패권의 비밀』을 쓴 배경이다.”
 
네덜란드·영국이 패권국이 된 비결은 무엇인가.
“네덜란드는 상업혁명, 영국은 산업혁명을 일으켜 성공했다. 우리나라도 4차 산업혁명을 계기로 선진 강대국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산업혁명을 공부해야 한다. 『패권의 비밀』에 나의 모든 정열을 쏟았다. 다른 책은 보통 1년 안에 쓰는데 이 책은 5년 걸렸다.”
 
미·중 패권 경쟁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많은 사람이 패권의 향방에 관심이 많다. 나는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산업혁명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으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면 미국의 패권이 유지되고 중국이 따라잡으면 중국의 패권시대가 온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도 기회가 있다. 어디서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져 있지도 않다. 나는 미래라는 게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업혁명과 산업혁명의 역사를 보니까 정해져 있는 미래로 온 것이 아니라 자기네들이 노력해 쟁취한 것이다. 학생들이 ‘우리나라에서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납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여러분이 일으킬 수 있을 따름이다’.”
 
미국과 중국은 우리에게 ‘우리 편에 붙어야 산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선택의 문제로 보는 관점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이 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에 빨리 다가가 우리의 가치를 높여야 미국도 우리를 선택하고, 중국도 우리를 선택하게 된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한다면 패권국이 될 수 있나.
“나는 그렇다는 믿음으로 이 연구를 시작했다. 패권을 추구하다가 안 되더라도 패권국과 함께하는 선진 강대국은 될 수 있다. 1등을 못하고 2등, 3등을 해도 성공한 것이다. 꼭 1등을 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패권에는 ‘독점 패권’과 ‘과점 패권’이 있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위해 노력하면 ‘과점 패권’에 참가하는 선진 강대국은 얼마든지 될 수 있다는 게 내 입장이다.”
 
한국은 잘하고 있는가.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으로 다른 국가에 피해를 주지 않고 선진국 문턱까지 온 유일한 나라다. 우리나라가 굉장히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고 또 칭찬받아야 할 일이다. 한강의 기적은 끝났다. 절반의 성공에 머물고 있다. 성장동력을 상실했고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 우리 젊은이들은 3포세대·5포세대에 살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바로 4차 산업혁명에 있다.”
 
굳이 책임을 묻는다면 누가 잘못했는가. 정치권인가 학자들인가, 아니면 일반 국민·유권자들인가.
“누가 잘했다, 못했다를 두부 자르듯이 말하는 것은 어렵다. 국가를 통치하는 행위를 정치행위라고 일반적으로 본다. 정치행위 중에서 가치 지향적이고 이념적인 것이 가장 순수한 정치행위다. 나는 가치 중립적이고 덜 이념적인 행위를 정책이라고 부른다. 정책은 집권당이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다. 정책은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방을 강화하고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어떤 정부든 상관없다. 정책이 잘못돼 이렇게 됐다. 나는 정치를 잘 모르고 큰 관심도 없다. 주로 정책에 대한 관심이 있다. 어느 정부든 정책을 잘 만들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책을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관료 아닌가.
“정책의 바탕이 되는 이론을 만드는 것은 학자,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은 관료가 한다. 그런데 그 방향은 정치의 영향을 받는다. 이 세 영역이 지금 엇박자다. 우리나라의 관료제도는 소위 모방경제, 벤치마킹, 패스트팔로어의 시대에는 적합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안 맞는다. 기병(騎兵)은 기갑(機甲)을 이겨 낼 수 없다. 말 탄 병사가 어떻게 탱크와 맞설 수 있겠는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관료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관료 선발부터 달라져야 하는가.
“선발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육성하느냐가 중요하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한다. 인재가 잘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환경에 맞게 발전한다. 그래서 내가 『정부의 유전자를 변화시켜라:성공하는 정부의 신공직인사론』(2009)과 『은퇴가 없는 나라: 국가경제를 이모작하라』(2013)를 썼다.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관료제도를 육성하는 게 중요하다. 조직개혁·재정개혁·인사개혁…. 이 세 가지를 하면 4차 산업혁명에서 성공할 수 있는 체제로 갈 수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으로 일했다. 그때 경험은 학자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것도 노 전 대통령하고 30분, 1시간 독대하면 풀렸다. 3시간 독대하고도 노 전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섭섭함이 앞섰는데 곰곰이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까 내 학문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선왕조 때 진짜 혁신을 하려고 목숨을 건 분이 정암(靜菴) 조광조(1482~1519) 선생이다. 율곡은 ‘정암은 학문이 완성되기 전에 세상을 바꾸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나는 학교로 돌아와 두문불출하고 공부와 집필에 매진했다. 그 결과 나온 책이 영어로 쓴 『경제성장론(Economic Growth)』(2014)이다. 경제학 이론이 너무 어려워 설득이 안 될 것 같아 역사학을 배경으로 쉽게 쓴 책이 이번에 나온 『패권의 비밀』이다.”
 
 
김환영 논설위원
kim.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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