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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훈의 시시각각] 사면, 공론화를 청원함

중앙일보 2017.12.02 01:23 종합 30면 지면보기
고대훈 논설위원

고대훈 논설위원

며칠 전 민주노총 건설노조원 1만여 명이 퇴근 시간에 서울 마포대교를 점거하고 교통을 마비시킨 일이 있었다. 경찰이 불법 시위대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시위 사면설’이 떠올랐다. 제주 해군기지, 경남 밀양 송전탑, 서울 용산 화재 참사와 사드(THAAD)·세월호 등 5개 집회와 관련해 법무부가 특별사면(특사·特赦)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들 집회에 참가했다가 처벌된 사람들을 위해 전과와 형벌을 면제해 주겠다는 게 그 명분이다. 관용과 화합이라는 걸 내걸면 큰 탈이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불법 집회와 시위를 방치하고, 이를 주도하고 대거 가담했던 시민단체와 노조에 면죄부를 내주려는 의도라면 달리 볼 필요가 있다. 특사는 국회 동의가 필요 없어 대통령이 결정하면 그만이다. 이게 문재인 대통령의 뜻인지 궁금하다.
 

불법 집회·시위에 특별사면 추진
권한 남용 또는 국민 통합 따져야

한 공무원이 해준 말이 새삼 실감난다. “요즘 노조와 시민단체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사업이든 그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만들고 허락을 얻어야 진행할 수 있다. 갑(甲)이고 상전이다.” 시민단체와 노조는 이제 권력이다. 권력지도는 이미 바뀌었다. 시민단체·노조·운동권 출신의 신(新)주류가 3대 축을 이뤄 내각과 청와대를 장악했다. 신주류는 서로 경계를 넘나들며 끌어 주는 일란성 세쌍둥이에 비유할 수 있다. ‘집회와 시위 사면’은 권력으로 부상한 신 주류에게 합당한 특혜를 베풀라는 요구이자 이들의 세력화를 과시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사라는 이름을 빌려 보은(報恩) 파티가 이어져 왔다. 1948년 사면법이 제정된 이후 이승만 정부부터 허정 내각,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 9개 정부에서 총 83회에 걸쳐 모두 22만6000여 명이 ‘은총’을 입었다. ‘사회통합’ ‘국민화합’ ‘경제살리기’ 등 구호는 언제나 그럴 듯했다. 하지만 부정부패와 연루된 정치인·공직자·경제인 등 ‘특혜 집단’이 단골로 끼어들어 ‘유권(有權)·유전(有錢) 특사’라는 냉소적인 비판이 쏟아졌다.
 
사면이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진 가혹한 형벌을 바로잡는 순기능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상습적으로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폭력을 휘두른 전문 시위꾼을 뚜렷한 근거도 없이 슬그머니 끼워 넣는다면 그 정당성이 의심받게 된다. 벌써 ‘코드 사면’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이 수갑을 채우지만, 권력이 사면이란 정치도구를 이용해 그 수갑을 풀어 준다면 누가 법을 무서워하고 지키겠는가.
 
사면의 공론화를 제안한다. 사면은 절대군주 시대의 유물이다. 왕이 내린 형벌을 스스로 거두고 시혜를 베푸는 은사(act of grace) 행위다. 엄벌과 사면은 왕권 유지를 위한 도구였다. 과거 대통령들이 군주처럼 정치적 목적으로 사면을 그렇게 써먹었다. 일종의 적폐다. 문 대통령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선언하면서 “우리 국민은 공론화 과정을 통해 한층 성숙한 민주주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원전처럼 사면은 권한 남용이냐 국민 통합이냐는 찬반 양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사안이다. 공론장으로 끌어내 숙의 민주주의를 실험해 봄 직하다.
 
청와대가 소극적이라면 국민이 나서야 한다. 청와대 게시판에 공론화를 청원하자. 20만 건이 되면 답변하게 돼 있다. 국민적 합의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사면은 법치주의를 손상할 뿐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는 사면되고, 누구는 안 되는 걸 밀실에서 몇몇이 모여 결정하는 건 불합리하다. 공론화를 통해 제왕적 권한을 스스로 내려놓는 첫 대통령이 되는 건 명예로운 일이다. 자비를 베풀어 자기편을 감읍시키며 통치하던 시대는 지났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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