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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선 동아시아

중앙일보 2017.12.02 01:17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홍구 전 국무총리·중앙일보 고문

이홍구 전 국무총리·중앙일보 고문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전쟁의 먹구름이 하늘을 덮은 한반도에서 대통령 탄핵과 새 대통령 선출이란 입헌민주주의의 큰 위기를 넘긴 올 한 해는 나라의 운에 더해 우리의 축적된 민주문화의 저력이 작동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북한 비핵화는 동아시아 유일의
핵보유국인 중국의 동참이 필수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에 대해
주변국들의 핵 보유에도 북한과
동일한 잣대 들이댈지 물어야

그러나 새해를 맞아도 북한 핵을 둘러싼 긴장과 위기는 계속될 것이며 막바지에 이르는 한계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북한의 핵확산을 앞세운 핵전쟁 모험을 더 이상 감내하거나 방치할 수 없다는 광범위한 지구촌의 여론이 힘을 받고 평화로 향한 결단의 시간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30여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확대돼 온 북한 핵 문제를 드디어 평화적 해결의 외길로 몰아넣으려는 주역이 군사력의 힘을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란 사실은 역사의 작은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그동안 북한 핵 문제를 방치한 것은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인 미·중·러 등 강대국 지도자들의 태만 탓이라는 트럼프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핵무기 확산 금지를 유효하게 집행할 책임이 있는, 특히 동아시아 유일 핵보유국인 중국이 그 특수한 위치를 나누어 갖겠다는 북한의 엉뚱한 시도를 사실상 방치한 것을 중국 특유의 대범함으로 치부해야 할지 당혹스러운 기현상임에 틀림없다.
 
지난 한두 달 트럼프는 북한에 대해 핵포기 카드에는 체제 안보와 번영을, 핵 보유 고집에는 파멸이란 양자택일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유엔 제재에 동참하여 북한의 선택을 도와줄 것을 호소하는 한편, 미국은 북한의 정권교체나 체제붕괴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며 급속한 통일 시도나 미군의 38선 이북 진입도 없을 것으로, 이에 대한 확약을 위해 미국 특사를 북한에 파견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이홍구 칼럼 12/2

이홍구 칼럼 12/2

이러한 트럼프의 제의와 국제사회의 여론에 중국과 러시아도 유엔 제재결의안에 찬성함으로써 북한의 결단을 촉구하는 듯 보였다. 이에 더해 두 달 반에 걸친 북한 핵과 미사일 실험의 휴식기를 미국과의 담판을 앞둔 김정은이 평화로 향한 결단을 준비하는 징조로 확대 해석한 희망적 관측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엊그제 29일 새벽 북한이 발사한 장거리미사일은 ‘핵에는 핵으로’ 대처하겠다는 김정은의 도전적 메시지가 실려 있었으며 한반도와 동아시아는 계속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 있음이 재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75일 만에 발사된 북한 미사일은 아마도 미국 본토를 겨냥해 정확성과 파괴력이 완성 단계에 가까웠음을 알리면서 결국에는 미국이 타협을 위한 협상에 나서게 될 것이란 김정은의 희망이 실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북한 미사일은 우리가 처리하겠다’며 비핵화와 평화로 향한 북한의 선택을 종용하는 최대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는 트럼프의 반응은 더 이상 핵확산과 핵전쟁의 동력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각오를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핵확산과 핵전쟁의 위협은 한반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에, 나아가서 전 지구적 문제라는 인식이다. 북한 핵을 용인한다면 동아시아에서의 핵확산은 필연적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트럼프가 추진하는 북한의 비핵화는 이에 대한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 특히 현재 유일한 핵 보유 강대국인 중국의 적극적 이해와 동참이 있을 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합의가 시급한 선결조건인 상황에서 2주 후로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는 예사롭지 않다.
 
북한 핵을 둘러싼 관계국들의 반응이 혼란스럽게 얽히는 한 원인은 중국의 입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북한이 비핵화를 계속 거부할 경우 이에 대처하는 주변 국가들의 핵무기 보유 시도에도 중국은 북한에 적용한 동일한 잣대로 감내할 것인지 분명한 입장을 듣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번 정상회담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관심이다. 북한 핵의 위협을 의식하여 비핵화가 어렵다면 스스로의 핵 보유를 선호하는 국민이 대다수인 한국의 특수 상황에 대한 중국의 이해를 촉구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리고 이 기회에 미국과 중국이 함께 북한의 비핵화 결단을 유도하도록 거듭 부탁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략적 균형을 둘러싼 문제는 역시 양 대국 간의 협의 사안이므로 한국이 나서기에는 적절치 않음을 솔직하게 피력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평화의 필수요건인 한·중·일의 3자 협력관계를 비핵화 후에는 중국과 일본, 한국과 북한의 4자평화공동체로 발전시켜 가자는 장기적 구상은 한·중 정상이 함께 나눠볼 만한 역사적 비전이 될 수 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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