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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총리급 4차산업혁명 수장에게 이러쿵저러쿵 말라는 관료

중앙일보 2017.12.02 01:01 종합 4면 지면보기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2차 회의가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에서 열렸다. 장병규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주형철 위원,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장 위원장. [뉴스1]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2차 회의가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에서 열렸다. 장병규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주형철 위원,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장 위원장. [뉴스1]

수화기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지난달 30일 범정부 합동 4차 산업혁명 대응 방안 발표가 있던 직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한 관계자는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정책 심의를 맡은 곳”이라며 “장병규 위원장이 나서서 (세부 내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게 아니다”고 말했다. 정책 심의를 담당해야 할 기관장이 정책을 집행하는 영역에 관여하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장 위원장 범정부 대응안 발표하자
과기정통부 직원 월권이라며 뒷말

정부, 미래 먹거리 사령탑 맡겨놓고
임기 1년 임시직, 회의는 1년 4번뿐
“언제 잘릴지 몰라” 명함도 안 파

장 위원장은 그날 본인이 잘 모르는 21개 부처 실무에 대해 ‘주제 넘게’ 발언했던 것일까. 브리핑 상황을 녹음한 파일을 다시 들어봤다. 질의응답 과정에서 장시간 질문을 이어가던 한 기자와 언쟁을 벌이는 등 진행이 매끄럽지 않은 상황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주로 발언한 내용은 4차 산업혁명 대책에 대한 실행 의지와 성과 평가, 규제 개혁 방향 등 정책 심의·조정을 총괄하는 사람으로서 응당 답변해야 할 것들이었다. 설사 21개 부처 실무에 대해 장 위원장에게 질문했더라도 그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대통령이 지명한 혁신성장의 컨트롤타워이기 때문이다.
 
장 위원장은 총리급이다. 그러나 관료들이 대하는 그는 ‘총리’가 아닌 ‘45세의 민간인’이었다. 행정고시를 패스한 정통 관료 출신의 총리였다면 기자간담회 발언을 두고 ‘뒷말’을 할 수 있었을까.
 
솔직하게 보자. 컨트롤타워라고 말했지만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무엇을 컨트롤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명색이 총리급인 장 위원장은 위원회에서 함께 일하는 60여 명의 민간위원 중 단 한 사람도 직접 지명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달 15일 간담회에서 “민간에선 손발이 맞는 사람을 뽑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정부 조직에선 그럴 수 없다”며 “개인적으로 상당히 고생하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비상근직인 장 위원장은 아직 위원장 직함의 명함도 제작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22일 인터뷰차 찾아온 기자에게 여전히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고문직 명함을 건넸다. 그런 뒤 “임시직이라 언젠가 잘릴 테니 일부러 (명함을) 파지 않았다”고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임기 1년의 임시직 위원장으로서의 한계가 느껴지는 한마디였다. 그를 포함한 민간위원들의 임기도 모두 1년이다. 그간 기업에서 흔히 봐왔듯 임기가 짧으면 단기 성과에 집착하게 된다.
 
민간위원들의 규정에 따른 회의 일정은 분기당 한 번이다. 물론 필요하면 더 자주 모일 순 있다. 하지만 20여 명에 달하는 위원들이 한 해 많아야 10번 안팎의 회의를 열어 21개 부처의 정책을 심의·조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위원은 “정부 정책에 대해 짧은 의견을 말하는 수준은 가능하겠지만 그 이상은 무리일 것”이라며 “민간이 정책기관의 들러리가 되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4차 산업혁명 대응 방안은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첫 미래 먹거리 대책이다. 그런데도 주무부처인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다른 일정으로 브리핑 도중 자리를 떴다. 국토교통부 등 일부 부처 실무자들도 간담회가 끝나기도 전에 회의장을 나섰다.
 
실무 담당 공무원 15명에 한 해 예산은 50억원에 불과한 곳. 스타트업 규모에 불과한 이곳의 설치 목적(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1조)을 읽어 보자. “경제성장과 사회문제 해결을 함께 추구하는 포용적 성장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며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1년 임기의 위원장과 민간위원들의 어깨에 너무 큰 짐과 책임을 떠안긴 건 아닌가.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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