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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 창간 100주년 기념] 데니 밀러의 4C로 본 경주 최부자집

중앙일보 2017.12.02 00:02
세계적인 장수기업을 연구한 데니 밀러(Danny Miller)는 '4C'라고 부르는 연속성(continuity), 공동체 의식(community), 관계(connection), 지휘(command)가 모든 장수기업에서 공통적 특징으로 보고 있다. 데니밀러의 4C로 경주 최부자집의 장수비결을 분석해봤다.
 
기업의 수명을 학자에 따라서는 20년, 30년, 50년으로 규정하지만 대체적으로 50년이 넘으면 장수기업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실제 기업의 평균수명은 점차로 짧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1970~80년대 우리나라 30대 재벌 중에서도 지금까지 30대 재벌에 속해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단명 원인을 외부 환경의 변화로 인한 급격한 산업구조 재편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동일한 업종을 영위하는 기업 중에도 어떤 기업은 수십 년을 넘기고, 어떤 기업은 수백 년 동안 생존하고 있어 외부적 요인만이 직접적 요인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기업의 수명은 어떤 차이에서 생기는 것일까? 세계적인 장수기업을 연구한 데니 밀러(Danny Miller)는 장수기업의 성공요인을 기업의 내부적 요인과 경영 철학에서 찾았다. 그는 41개의 세계적인 장수기업을 연구하여 이들 기업의 공통된 성공요소를 밝혔다. 이들 대부분이 가족경영 기업이라는 것과, ‘4C’라고 부르는 연속성(continuity), 공동체 의식(community), 관계(connection), 지휘(command)가 모든 장수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400년간 부를 유지해온 경주 최부자 가문이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수많은 부자가 있었지만 경주 최부자처럼 400년 넘게 한결같이 주의의 존경과 칭송을 받은 경우는 없었다. 경주 최부자는 12대 만석꾼이라 일컬어져 왔는데, 이는 1570년 최신보를 시작으로 1970년대 최준에 이르는 동안 13대를 일컫는다. 최부자집은 어떻게 만석의 재산을 모을 수 있었으며, 수백년 동안 엄청난 시대의 변화 속에서 부를 유지하며 생존할 수 있었을까?
 
데니 밀러가 연구한 세계적인 장수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최부자 가문에도 독특한 경영철학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가족문화가 있다. 이것은 가문에서 지켜온 사상과 정신으로 가훈(家訓)을 통해 후대에 전해졌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지 좋은 글이 아니라 실천에 중점을 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경주 최부자 가문의 가훈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벼슬엔 연연하지 말되 양반 신분을 유지하여 재산관리를 제대로 하라는 것과 권력 및 재력 모두를 가지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2.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마라 .
 

재산을 모으되 적정한 수준으로 정당하게 모으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당시 소작농의 생활을 보장해주어 불만을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3.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덕을 좋아하고 과객에게 후하게 베풀었지만 과객을 의복이나 행색이 아니라 문리(文理)가 트였는지에 따라 대접을 달리하였다.
 
4. 흉년기에는 재산을 늘리지 마라.
 

재산은 정당하게 모아야 참 부자이며 어려운 이웃을 이용해 내 이익을 취하지 않도록 했다.
 

5. 며느리는 시집올 때 은비녀 이상의 패물을 갖고 오지 말며,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며느리의 정신이 가문의 흥망을 좌우한다고 여겨 항상  겸손하고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도록 교육했다. 자녀교육에 앞서 그 어머니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6.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부자의 도리는 더불어 잘 살도록 하는 것으로, 이웃을  위해서 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가르친 실천강령이다.
 
7. 양입위출하라.
  
재물이란 한도가 있고 쓰기에는 끝이 없으니 미리 들어올 것을 알아 거기에 맞추어 쓰라는 의미로, 한 가정의 경제도 집안을 짜임새 있게 잘 경영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8. 파장 물건은 사지도 말고, 값을 깎지 마라.
  
물건을 구입할 때 농어민들의 수고에 대한 값을 후하게 쳐주는 것이 부자의 도리라는 것을 후손들에게 가르친 것이다.
 
운이나 환경적인 조건이 좋아서 큰 재산을 형성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을 경영하는 관리자나 가족 또는 구성원이 잘못 관리하거나 함부로 사용하면 부를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없다. 따라서 많은 재물을 관리하는 주체가 확고한 경영이념이나 사상 또는 가치관을 확립해야 한다. 일시에 부를 축적하고, 또 단기간에 그 부를 소멸시키는 수많은 부자들과는 달리 최부자는 그들 나름의 부를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최부자의 성공요인을 밀러의 4C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1. 연속성(Continuity) | 꿈을 추구하라 
장수가족기업의 공통점은 건강하게 지속 가능한 기업을 유지하기 위해 자원을 조심스럽게 관리하고 장기적인 이익과 기술 전수에 힘쓴다. 마찬가지로 최부자 가문에도 먼 훗날을 깊이 생각하면서 큰 뜻을 차근차근 실천하는 원모심려(遠謀深慮)하는 자세가 있었다. ‘원모심려’란 ‘오늘의 수고를 통하여 내일을 가진다’는 의미로, 오늘날의 경영학적인 표현을 빌리면 장기적인 목표 또는 전략이 있었다는 것이다. 가훈으로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던 이유는, 벼슬에 나가서 자칫 정치적 시류를 잘못 타면 당사자가 욕볼 수 도 있었고 때로는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노출되어 정쟁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가문을 유지하고 부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전략 목표였던 것이다.
  
전략의 실천 방법 중 하나가 부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근검절약이었다. 절약정신이 몸에 배도록 하여 이후 만석의 살림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철저하게 교육시키기 위해 며느리에게 3년간 무명옷을 입으라고 하였다. 살림을 맡을 며느리를 새색시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자손들에 대해서도 귀한 도련님으로 애지중지하지 못하도록 하고, 5, 6세가 되어 철이 들면 사숙(私塾)에 보내 선생님의 회초리를 맞으며 엄격한 교육을 받도록 했다. 어릴 때부터 올바른 교육이 되어야 가문도 부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신념으로 삼았던 까닭이다. 어린 후손들에 대한 철저한 교육은 장기적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인적자본을 확충했던 것으로 최부자 가문의 신념이며 실천적 행동이었다.
  
또 다른 원칙은 ‘양입위출(量入爲出) 하라’는 것이다. 이는 후손들에게 경제교육을 시키기 위해 남긴 말로 한 가정의 경제도 집안을 짜임새 있게 잘 경영하라는 의미이다. 즉, 항상 여유를 두어 질병에 사용할 약값에 대비하고, 빚을 내거나 곤란함이 없도록 하며, 쓸 일이 없거든 자손을 위하여 논밭을 장만하라며 자손들에게 강하게 훈계하였다. 이처럼 대를 이어 부를 유지하기 위한 목표를 수립하고 길게 내다보고 후손들에게 절약과 절제의 미덕을 가르친 전략이 부를 유지한 첫 번째 비결이다.
  
2. 공동체 의식(Community) | 가족과 직원을 하나로 통합하라 
성공적인 장수가족기업은 가족과 직원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특정 가치를 내세운다. 이러한 가치들을 교육시키고 충성심과 독창성,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며 직원들의 욕구를 잘 충족시켜 준다.
  
최부자는 높은 벼슬아치가 되기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명예를 절제하였지만 선비의 정신을 몸으로 실천하였다. 그 일환으로 가족들에게 다음과 같은 생활수칙을 대대로 지키고 이어가도록 했다. 첫째 분수에 넘치는 행위를 하지 마라. 둘째 인격을 도야하고 고고한 인생관을 가져라. 셋째 선비의 일상생활인 깊고 넓은 학문을 닦아 자연의 이치와 인생의 도리를 터득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후손들에게는 충효교육을 시켰다. 이들이 말하는 진정한 충이란, 상위계층이 하위계층으로 하여금 한마음으로 성실을 다할 수 있도록 정신적·물질적 도움을 주어 기꺼이 충성된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언제든지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노비는 양반가나 관가에 딸린 재산의 일부분으로서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하는 하층민이었다. 노비에 대한 대우는 집안에 따라 달랐는데, 최부자는 가족들이 지켜야 할 가치를 교육함과 동시에 노비들 또한 인격을 존중하고 인간적으로 대해 주었다. 그 결과 노비들이 진심으로 주신을 섬기고 부의 형성과 유지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임진왜란 7년간 노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재산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구한말에는 노비들에 대한 차별 철폐에 앞장섰고 남보다 앞서 100명의 노비문서를 직접 불살라 없애 버렸는데, 노비들이  평소 인심이 후한 최부자집을 굳이 떠나기를 마다해 결국 집에서 일하게 하면서 그들에게 각각 그에 합당한 품삯을 지불했다. 이와 같이 노복에 대한 깊은 배려 및 인격적 대우의 전통은 대를 이어 실천되었다. 오늘날 성공한 경영자들이 제일의 철학으로서 강조되고 있는 인간중심 경영이 이들 가문은 앞서서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주에 있는 최부자집 본가.

경주에 있는 최부자집 본가.

  
3. 연결(Connection) | 좋은 이웃이 되라 
장수가족기업들은 사업파트너, 고객, 지역사회 등의 이해관계자와 영속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관계는 계약상의 잠재력을 급속히 늘리는 등 기업의 영속성에 기여한다.
  
최부자는 자손들에게 흉년기에는 재산을 늘리지 말라고 했다. 흉년기에는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또는 자녀들의 혼사비용 조달을 위해서 싼값으로 땅을 팔기 위해 내놓는 사람이 많았다. 이때야 말로 토지구입과 재산증식의 가장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최부자는 이렇게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의 재산을 사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고 곳간을 열어 식량을 해결해 주어 새 봄에 더욱 힘써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전체 수확량 즉, 만석을 총량으로 정해 놓고 그 이상으로 거두어 들이지 않으므로 소작농의 생활을 보장해 주었다. 그러면서 흉년이 들면 정도에 따라 소작료를 감면해 주기 때문에 소작인들로부터 인심을 얻었다. 이 때문에 소작인들은 최부자의 땅이 늘어나서 자기가 소작할 땅이 더 많아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를 고맙게 여긴 소작인들이 싼 가격에 좋은 농지를 살 수 있도록 구매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일 잘하는 좋은 소작인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또한 흉년이 들면 굶주리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죽을 쑤어 나눠 주었다. 최부자집의 재물 사용하는 모습이 본보기가 되어 경주 인근 주민들도 인심이 후했다고 한다. 도적떼들이 전국 각지에서 주로 부자나 양반집에 침입하였지만 최부자집만큼은 침입하지 않았고 그 흔한 돌팔매질이나 도둑질도 하지 않았다. 동학혁명 실패 후 활빈당이라는 무리가 양반과 부자들을 응징하면서 사방을 휩쓸고 다녔지만 경주 인근에 산재한 최부자의 창고에는 손 하나 대지 않았다. 평소 최부자가 아낌없이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재물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찍이 최부자는 지역사회 전체의 안정이 곧 모두 잘 사는 길이라고 믿었다. 흉년이면 곳간을 열어 식량을 나누어 주는 등 지역사회를 위해 그 소임을 다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최근 경영학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하지만 최 부자 가문은 그것을 책임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부자의 도리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4. 지휘(Command) | 자유롭게 행동하고 개선하라 
성공한 장수기업의 리더들은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며, 독창적이고 빠르게 환경변화에 적응하고 혁신을 추구한다.
  
최부자의 가계에서는 실학파가 주장한 만민평등의 인권사상 실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다. 만민평등이라 함은 곧 만인이 평안을 회복하여 모두 편하게 산다는 것으로 다른 사람 위에 부당하게 군림하거나 인격적 차별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최부자가 노비들에게 인간적 대우를 하면서 그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하여 노력한 사실, 노비해방을 과감하게 실천한 사실 등은 신분에 얽매어 인간적 대우에 소홀했던 조선시대의 어느 양반과는 달리 인간평등사상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최부자 가문에는 6가지 행동지침이 있었는데, 이 중 하나가 ‘자처초연’이다. 혼자 있을 때 처신하는 자세를 가르치는 말로, 바른 생각을 가지고 편협하지 않는 중용의 마음으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즉, 어느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가다듬고 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하나는 ‘유사감연’으로 일 또는 문제가 있을 때는 과감하고 결단성 있게 임하라는 것이다. 일이 없을 때는 조용히 장래를 대비하여 계획을 세우고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하고, 기회가 오면 전광석화같이 과단성 있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부자는 자손들이 외부를 의식하기 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가다듬고 스스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준비시켰다.
  
최부자 가문에서는 어떻게 이러한 정신들이 흔들리지 않고 수백 년 이어져올 수 있었을까? 이들은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종아리를 쳐가면서 가훈을 쓰게 하고 읽게 했다고 한다. 그만큼 가족의 정신과 철학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엄하게 생활의 지침으로 삼고 지켜왔다. 최부자가 장기적으로 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경영철학과 그 철학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가족문화가 있었고 대를 이어 이를 지키고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의 지속경영 요인은 외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것 이외에 기업 내부에 존재하는 창업정신과 경영철학과 같은 정신을 바탕으로 형성된 기업문화에 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 그리고 현재 장수기업의 공통된 추진 원동력을 분석해봄으로써 가족기업의 지속 가능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가업승계를 통해 장수경영을 꿈꾸는 기업이라면 데니 밀러의 4C의 관점에서 경주 최부자의 성공비결을 거울 삼아 자신의 가족과 기업을 점검해보라.
  
- 김선화 가족기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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