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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점령한 롱 패딩 행렬…겨울 '과잠' 천하통일

중앙일보 2017.12.02 00:01
최저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내려갔던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대 캠퍼스. 한 학생 밴드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수십명의 학생들이 보였다. 절반 정도가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긴 점퍼를 입고 있었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른바 ‘롱 패딩’ 패션이다. 그런데 대부분 등 부분에 대학의 이름이, 어깨에는 대학 마크가 새겨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학과나 각종 동아리의 이름이 적혀 있는 옷들도 있었다. 기성 의류 브랜드의 옷이 아니라 학생들이 단체로 맞춰 제작한 옷인 것이다.
서울대 캠퍼스에 모인 학생들 상당수가 롱 패딩 '과잠'을 입고 있다. 송우영 기자

서울대 캠퍼스에 모인 학생들 상당수가 롱 패딩 '과잠'을 입고 있다. 송우영 기자

이렇게 단과대나 동아리별로 맞춰 입는 옷을 학생들은 ‘과잠(과 단체 점퍼)’이라고 부른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김한슬(19)씨는 “입학했을 때 선배들이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우리도 따라서 맞췄다. 여럿이서 주문하니 가격도 싸고 생각보다 따듯해서 좋다”고 말했다.

‘과잠’도 롱 패딩 스타일로 바뀌어
“편하고 따듯하고 가격도 싸다”
과시욕 기반의 ‘구분 짓기’라는 시선에
대학 로고는 빼달라고 하기도

 
야구 점퍼 스타일이 주를 이뤘던 과잠이 유행을 따라 ‘롱 패딩’ 스타일로 바뀌고 있다. 최근에는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제작하기도 한다. 대학 온라인 게시판에서 공동구매를 하는 경우도 많다.
 
가격대는 30개 제작을 기준으로 보통 솜으로 된 맞춤 롱 패딩 점퍼는 4만~5만원 대, 오리털로 된 제품은 7만~9만원 대다. 기본적인 학교 마크 외에 동아리 이름이나 이니셜 등을 새기면 추가 인쇄비를 3000원 정도 더 내야 한다. 프린팅이 아니라 자수로 할 경우 1만5000원 정도 가격이 올라 간다. 

 
올 겨울 ‘교복’이 된 롱 패딩 과잠
연세대 경제학과 이정원(21)씨는 “같은 반 동기들과 함께 맞췄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어 더 두껍고 긴 디자인의 롱 패딩을 하나 더 주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롱 패딩 과잠에는 학과의 반 이름인 ‘말라카’가 영문으로 새겨져 있다.
연세대 학생들이 '롱 패딩 과잠'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연세대 학생들이 '롱 패딩 과잠'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같은 대학 천문우주학과 김남훈(20)씨는 학교 로고 외에 활동 중인 동아리의 이름 ‘인연’을 새겼다. 김씨는 “정말 롱 패딩 과잠이 인기가 많다. 어느 날은 캠퍼스에서 만난 사람의 절반 이상이 이 옷을 입고 있어서 교복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역사교육과 용현진(20)씨는 “디자인이 예뻐서 주문했다. 입으면 애교심도 생긴다”고 말했다. 

 
“주문량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주문 들어와”
수요가 많아지자 맞춤 제작 업체들도 늘고 있다. 이대섭(36) 티파나 대표는 “5년 전부터 체대나 예술 전공 학생들을 중심으로 롱 패딩 스타일의 단체 점퍼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전국의 여러 대학, 다양한 학과들에서 주문이 들어와 주문량을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고 말했다.
한 맞춤 제작 업체의 공장에 배송을 앞둔 '롱 패딩 과잠'들이 쌓여 있다. [사진 '티파나']

한 맞춤 제작 업체의 공장에 배송을 앞둔 '롱 패딩 과잠'들이 쌓여 있다. [사진 '티파나']

명지대의 한 학생은 “나는 대학 마크가 달린 롱 패딩을 입어 보기 위해서 대학에 왔다고 할 정도다. 하루라도 빨리 좀 만들어 달라”며 간곡한 주문 전화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홍익대 미대에선 한 번에 300개를 주문했다. 최근 이 업체에는 몇몇 예술고에서도 주문이 자주 들어온다.    
 
한 맞춤 제작업체는 지난 10월 먼저 주문하는 10개 학과들은 가격을 깍아주는 이벤트를 열었다. 또 추가 비용을 받지 않고 학과명이나 동아리명을 자수로 새겨준다는 마케팅을 하고 있다. 소비자가 대부분 대학생인 점을 고려해 무릎 담요나 수면 양말 등을 사은품으로 주는 업체도 있다. 
 
다양한 대학 학과들의 이름이 새겨진 '롱 패딩 과잠'들. 송우영 기자

다양한 대학 학과들의 이름이 새겨진 '롱 패딩 과잠'들. 송우영 기자

한때 ‘학벌 과시’ 눈총 받기도
과잠이 대학가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대 들어서다. 대부분이 ‘야구 점퍼’ 스타일이었다. 명문대 중심으로 시작된 과잠은 “학벌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엘리트 대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스스로를 구분짓고 과시하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최근엔 유명 외국어고나 예술고 등에서 과잠을 맞춰입는 것을 두고 비슷한 비판이 있었다. 여전히 ‘마이너 대학’의 과잠은 비교적 눈에 덜 띄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명지대 학생들이 야구 점퍼 스타일의 '과잠'을 입고 있다. [중앙포토]

명지대 학생들이 야구 점퍼 스타일의 '과잠'을 입고 있다. [중앙포토]

그러나 올 겨울 롱 패딩 과잠 열풍은 그런 일각의 시각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 문화로 자리잡은 모습이다. 연세대 스포츠응용학과 이선혜(21)씨는 “이제는 거의 모든 학교에서 과잠을 입기 때문에 그런 시각에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주위의 시선이 의식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대학 마크와 이름은 일부러 빼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계량위험관리과 성연제(22)씨는 “과잠을 입을 때 과시 욕구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 경우에는 친한 친구들끼리 같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친목 도모의 의미가 가장 큰 것 같다. 또 학교 안에서 주위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막 입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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