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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이주 80년]카자흐스탄 현지 고려인 3세·4세가 말하는 '할아버지 나라'

중앙일보 2017.12.02 00:01
1937년 구소련 정부에 의해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초기 중앙아시아 정착모습. [사진 고려인마을 종합지원센터]

1937년 구소련 정부에 의해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초기 중앙아시아 정착모습. [사진 고려인마을 종합지원센터]

1937년 9월 구(舊)소련 정부는 동아시아(연해주)지역에 거주하던 카레이스키(이하 고려인) 17만여 명을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열차로 한 달간 6500㎞를 이동하는 갑작스러운 강압 정책에 굶주림과 추위 등으로 숨지는 고려인이 속출했다. 
 

1937년 옛 소련 강제이주 6500km 눈물의 길
풀 한 포기 없는 동토 일궈 현 사회 뿌리 내려
강제이주 80년 카자흐스탄 속 고려인 이야기
"고려인들, 전통 지키며 화합 이바지"
"조부 나라 한국 정착 원하는 청년 많아"
"꽉 막힌 남북 관계 중재역할 가능할 것"

허허벌판에 짐짝처럼 버려진 그들이었지만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황무지를 푸른 논밭으로 일궜다. 현재는 카자흐스탄 사회 속에 당당히 뿌리 내렸다. 올해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달 21일 카자흐스탄 알마티 현지에서 ’노청(老靑) 세대’를 대변하는 이들을 만나 ‘고려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카자흐스탄 국립 아카데미 고려극장 이류보피 극장장이 고려극장의 역할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카자흐스탄 국립 아카데미 고려극장 이류보피 극장장이 고려극장의 역할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만난 사람은 카자흐스탄 국립 아카데미 고려극장 이류보피(65) 극장장(이하 이 극장장)과 카자흐스탄 고려청년회 이이골(25) 회장(이하 이 청년회장)이다. 이 극장장과 이 청년회장은 각각 고려인 3세·4세대다. 각각의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통역에는 알마티 고려문화원 김상욱(51) 원장 등이 도움을 줬다. 
카자흐스탄 고려청년회 이이골 회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카자흐스탄 고려청년회 이이골 회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올해가 고려인 강제이주 80년이 된 해다.
이 극장장 : “전에는 (강제이주에 초점이 맞춰져) ‘고려인 디아스포라’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주 70주년(2007)을 기점으로 이런 표현은 점차 사라졌다. 카자흐스탄의 한 국민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청년회장을 비롯한 상당수 고려인 후손들이 한국말을 구사하는 데 낯설어하는 이유다. 김 원장에 따르면 현 카자흐스탄 내 고려인들은 두 가지 정체성을 지녔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조국 코리아의 후손이면서, 카자흐스탄 국민이다.
고려극장 단원들이 '2015 중앙아시아 재외동포 무형유산 강습사업 발표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고려극장 단원들이 '2015 중앙아시아 재외동포 무형유산 강습사업 발표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청년들의 생각은 어떤가.
이 청년회장 : “많은 고려인 청년들이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직업을 얻고 정착하고 싶어한다. 케이팝·케이드라마 등 영향으로 한국을 직접 가서 보고 느끼고 싶어하는 청년들이 상당수다. 한국의 수준 높은 고등교육도 매력적이지만 이유 중에는 한국이 할아버지의 나라인 점도 들어 있다. 한국은 역사적인 모국이다.”   
 
이런 현실에서 고려극장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있다.
이 극장장 :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예산 등 지원을 받는 국립극장이다 보니 정부의 문화정책 방향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우리 단원들 모두) 한국의 전통문화, 예술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아가 문화를 통해 다민족 사회인 카자흐스탄 내 화합(소수민족 비율 38% 수준)에도 노력 중이다.”
고려극장 외벽에 (강제이주) 85주년 기념 공연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민욱 기자

고려극장 외벽에 (강제이주) 85주년 기념 공연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민욱 기자

 
고려극장은 1932년 구소련 연해주에서 설립됐다. 1937년 강제이주 이후 카자흐스탄으로 이전, 현재 국립으로 운영 중이다. 지난해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아카데미 칭호를 받았다. 고려인들은 구소련시절 모진 핍박을 견디며 극장을 한인 공연예술의 중심지로 키웠다. 고려극장은 해외에서 설립된 한인 공연단체 중 가장 오래됐다. 이에 고려극장 단원들은 해외 민족예술사의 산증인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단원 96명 중 대부분이 고려인이다. 지난 2014년 고려인 연해주 이주 150주년을 맞아 이뤄진 한국 내 초청 공연 당시 아리랑·새타령 등을 무대에 올렸다. 
 
한국 정부에 특별히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 청년회장 : “한국에 대한 바람보다는 희망이 있다. 한국의 발전된 과학기술이나 의료기술, 경제적인 투자활동 등이 카자흐스탄으로 확대됐으면 한다. 단순히 문화공연 같은 행사지원에서 이제 교류의 폭이 한 단계 높아져야 한다. 한국 내 정착을 희망하는 청년들을 위해 비자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
알마티 고려문화원 내부모습. [사진 고려문화원]

알마티 고려문화원 내부모습. [사진 고려문화원]

 
이 청년회장이 언급한 비자 문제는 이렇다. 고려인 4세는 재외동포법상 동포가 아닌 ‘외국인’으로 분류된다. 3세까지만 동포로 국내 장기체류가 가능하다. 현 정부 들어 2019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만 20세 이상 고려인 4세들이 국내에 체류할 수 있도록 조치했지만, 고려인 부모가 한국에 거주해야 한다. 카자흐스탄에 가족이 있는 고려인 4~5세대는 단기방문 비자로 3개월마다 카자흐스탄 출국, 한국 입국을 반복해야 한다.
 
한편 고려인들은 분단 전 연해주로 이주한 배경에 남북 관계의 ‘중재자’로서 역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문화원 김상욱 원장이 남북 관계 중재로서의 고려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문화원 김상욱 원장이 남북 관계 중재로서의 고려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구소련이 붕괴한 91년 이후에도 카자흐스탄 내 고려인 사회에서는 친북 성향이 존재했다. 공산주의라는 정치적 노선이 같았기 때문이다. 이후 우수한 한국 기업의 자동차·TV·휴대전화 등 제품들이 물밑 듯이 수입되고 기업 투자가 이뤄지면서 친남 성향이 강해졌다고 한다.  
 
김상욱 원장은 “고려인이나 한인 동포들이 모이면 언제나 ‘모국’이 더 잘됐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이 평화로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며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는 자녀들 같다고 표현한다. 남과 북 모두 우리 부모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문화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려인 청소년들. [사진 고려문화원]

고려문화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려인 청소년들. [사진 고려문화원]

 
이어 “2006년 카자흐스탄 경제 호황기 때 고려인 기업가를 중심으로 남·북 교류에 물꼬를 트려는 시도가 있었다”며 “북한의 건설인력을 카자흐스탄으로 유입시키려는 움직임이었는데 평양 현지답사까지 마쳤지만, 투자 문제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지금도 투자 환경만 조성되면 유용한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알마티(카자흐스탄)=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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