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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떼려다…벌금 줄이려 청구한 재판, 되레 벌금액 늘 수도

중앙일보 2017.12.01 16:48
2013년 폭행죄로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A씨가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그가 피해자를 때리는 장면이 폐쇄회로TV(CCTV) 화면에 선명히 찍혔지만, A씨는 “CCTV가 조작됐다”며 수사기록에 등장하는 목격자 11명을 증인으로 신청해 달라고 요구했다. 증인들은 “A씨가 때린 게 맞다”는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생업을 중단하고 법정에 출석했다. 몇 달간 정식재판을 했지만 A씨는 그대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정식재판 ‘불이익 변경 금지’ 폐지
‘패소해도 본전’…악용 지적 있어
영업정지 늦추려 재판 청구 남발
“재판받을 권리 침해” 지적도

 
앞으로는 김씨 같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간 큰코다칠 수도 있다. 정식재판을 청구하면 약식명령에서 선고한 벌금형보다 더 무거운 형을 내릴 수 없도록 한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이 폐지됐기 때문이다.
검찰청 앞에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청 앞에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는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약식명령 사건에 대해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경우 중한 형을 선고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457조의2(불이익변경의 금지) 규정을 삭제하고, 벌금형의 범위 내에서 형량 상향을 가능하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약식명령은 벌금, 과료, 몰수형에 처할 수 있는 비교적 경미한 사건에 한해 정식재판을 열지 않고 형벌을 정하는 처분이다. 검찰이 약식기소한 뒤 법원이 결정한 약식명령에 불복할 경우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정식재판을 청구하면 법원은 형사소송법상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약식명령의 형보다 중한 형을 선고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피고인들이 무분별하게 정식재판을 청구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식재판 청구를 악용해 행정처분을 늦추며 불법 영업을 계속하는 사례도 있다. B씨는 불법으로 도우미 노래방 영업을 하다가 적발돼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정식재판을 청구하고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면서 2년 넘게 불법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판결에 불복해도 벌금 상한이 50만원이 넘지 않고 유죄 확정 전까지는 영업정지 처분이 지연되는 점을 노린 것이다.  
 
정식재판을 청구하면 대개 국선변호인이 선정되는데 국선 변호인들도 “실제 유·무죄를 다투기보다 시간을 끌거나 우기기 위해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한다.
서울법원 종합청사 본관 [연합뉴스]

서울법원 종합청사 본관 [연합뉴스]

국민이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지만,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법원의 업무 가중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불이익변경 금지원칙 도입 직후(1997년 1월 1일 시행)인 1997년 정식재판 청구비율은 전체 사건 대비 1.8%(약 1만4000건)에 불과했지만 2016년 기준 10%(약 6만7400건) 수준으로 급증했다.
 
이날 통과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벌금형 범위 내에서 형량 상향은 가능하도록 하고, 이 경우 판결문에 상향 이유를 기재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법무부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정식재판을 남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고, 정식재판이 진정 필요한 사건은 더욱 충실한 심리를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피고인이 불이익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식재판 청구를 망설일 수도 있다며 ‘재판 청구권’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불이익 변경금지 원칙을 없애는 것이 사건처리 부담을 줄이려는 사법행정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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