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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글리시’ 왜 없애? 초등 1·2학년 엄마 뿔났다

중앙일보 2017.11.30 17:13 종합 2면 지면보기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는 지속돼야 한다"는 청원글. 30일 오후 2시 기준 1만633명이 동의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는 지속돼야 한다"는 청원글. 30일 오후 2시 기준 1만633명이 동의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과도한 선행학습 막자" VS "사교육 의존도 높아질 것"…초1, 2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논란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 수업은 지속하여야 합니다.”

2018년 3월부터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선행학습 금지법' 시행 후 유예기간 3년 끝나
학부모 "사교육 의존도 높아질 것" 걱정 나와
청와대 게시판 "방과후 영어 지속" 글 올라와
방과후 수업 영어 강사 대량 실업도 우려

 
지난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초등 1, 2학년의 방과후 영어 수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전국 4800개의 초등학교에서 24만명의 1, 2학년들이 방과후 영어수업을 받고 있다"며 "학부모의 사교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방과후 영어 수업을 지속해달라"는 주장이 담겼다. 
 
이달 16일 게재된 이 글에 1만923명(30일 오후 5시 기준)이 공감했다. 댓글에는 '영어유치원과 영어학원은 허용하고, 방과후 수업만 금지하면 사교육만 배불리는 것 아니냐' '방과후 영어 수업을 폐지하면 영어 수업은 온통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 아이들의 영어 실력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 등의 의견이 이어졌다. 
 
초등학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영어 방과후 수업이 내년 3월부터 전면 금지되는 것은 교육부가 지난 2014년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 금지법)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방과후 수업에서 초등학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영어 수업을 시행하는 것은 이 선행학습금지법에 어긋난다. 이 법에 따르면 학교는 국가교육과정과 시·도교육과정을 기준으로 학교의 교육과정을 편성해야 한다. 이렇게 편성된 학교교육과정을 앞서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금지된다. 국가교육과정 상 영어 수업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하는 데, 이보다 앞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법 위반인 것이다.
 
그래서 선행학습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정규교육과정에서 초등학교 1, 2학년의 영어 수업은 즉시 금지됐다. 하지만 영어 사교육이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와 방과후 교사의 집단 실직 등 문제 상황을 고려해 방과후학교 영어수업 금지는 3년간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이 유예기간이 내년 2월 28일로 끝나는 것이다.
 
김진 교육부 융합교육팀 사무관은 “선행학습 금지법을 시작할 때 이미 초1, 2학년이 영어보다는 국어를 제대로 배워야 할 시기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며 “그간 한시적으로 허용한 초1, 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시행령을 예정대로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1, 2학년 시기의 영어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창 우리말을 배워야 할 아이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의 부작용, 과도한 영어 사교육 증가 우려 등을 이유로 이 시기의 영어교육을 반대해왔다.
28일 오전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방과후 영어교사들이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 영어교실 수강금지에 대한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28일 오전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방과후 영어교사들이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 영어교실 수강금지에 대한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영어수업 금지가 오히려 사교육 의존도를 높인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영어 유치원 등 조기 영어교육 수요가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학교가 영어 교육을 금지하면 결국 학원으로 쏠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사립초 교사는 "현재 초1 학부모들이 '내년에도 어떻게든 영어 수업을 해달라'는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고 말했다.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아이가 올해 처음 영어를 배우고 재미를 붙였는데, 내년에 수업이 없어지면 지금껏 배운 것이 도루묵이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것"이라 전했다.    
 
또 이 교사는 "사실 3학년부터 정규과목으로 영어를 가르치면 이미 사교육을 받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차이에 상당한 격차가 벌어져 있다. 아이들이 수업이 아닌 놀이 개념으로 영어를 접할 수 있는 마지막 기간이 초1, 2 방과후 수업인데, 이걸 금지하는 게 교육적으로 무슨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내년에 자녀가 공립초 입학 예정인 학부모 박수영(37·서울 도봉구) 씨는 “학교에서 영어를 3학년부터 가르친다고 미뤄두면 학부모는 불안만 가중된다”고 말했다. 박씨는 “다른 학부모들은 영어를 가르치는 데 우리 애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으면 불안해서 더욱 사교육에 의존하게 된다. 차라리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영어를 가르쳐주면 고민도 되지 않고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낼 경우 늘어날 사교육비도 부담이다. 이준호 전국방과후법인연합 간사는 "방과후 영어 수업을 받을 경우 주 5회 매일 한 시간 동안 영어를 배우고 5만~8만 원 정도만 내면 되지만 학원은 주 2, 3회에 30만~50만원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간사는 "방과후 수업에서 보통 알파벳 기초와 영어 발음 기초 등을 가르치는데 게임, 영어 동요 등을 이용하고 원어민 강사도 있어 수업의 질이 높다"고 강조했다. 
 
방과후 영어 교사들의 대량 실직도 우려된다. 이준호 전국방과후법인연합 간사는 "방과후 영어수업이 한 번에 사라질 경우 한국인·원어민 강사와 보조 강사 등 7000여명이 일자리를 잃는다"고 주장했다.
 
이태윤·박형수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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