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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철’ 9호선 파업 첫날, 열차 지연에 '지각 인증샷' 찍는 사람도

중앙일보 2017.11.30 10:25
전국 지하철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이 뒤엉키는 곳. 지옥철로 불리는 지하철 9호선 역 중에서도 혼잡도(194%)가 가장 높은 곳이 염창역이다. 강서ㆍ양천 지역에서 강남ㆍ잠실 지역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이곳으로 모인다. 급행열차 시각이 다가오면 경쟁하듯 역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연출된다. 
출근시간 8시10분쯤 염창역의 안내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와야 할 급행열차 2대가 나란히 붙어서 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장주영 기자

출근시간 8시10분쯤 염창역의 안내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와야 할 급행열차 2대가 나란히 붙어서 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장주영 기자

안 그래도 혼잡한 염창역이 30일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열차가 지연 운행으로 수많은 직장인이 지각 사태를 빚었다. 이날부터 9호선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서 벌어진 일이다. 

출근길 열차 연착에 사람들로 인산인해
타려는 사람과 말리는 안전요원 승강이도

당산역에 스크린도어에 붙은 파업 안내문. 황예린 예비기자

당산역에 스크린도어에 붙은 파업 안내문. 황예린 예비기자

앞서 노조 측은 다음 달 6일까지 파업을 예고하고 출근 시간에는 정상 운행을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도 파업에 따른 열차운행 감소는 없으며, 대체 교통수단을 마련하겠노라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철석같이 이말을 믿은 사람들만 바보가 됐다. 오전 7시 50분쯤 찾은 염창역은 승강장은 물론 계단까지 바늘 하나 꽂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여기저기서 ‘도대체 열차가 언제 오는 거냐’는 소리가 나왔다. 8시3분쯤 급행열차 한대가 들어왔지만, 문만 열었다 닫고 출발했다. 맨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은 문이 열리고 마주친 열차 안 사람들과 ‘어색한 짧은 만남’을 가졌을 뿐이다.  
연착된 급행열차의 문은 열렸다. 하지만 타려는 사람과 타고 있는 사람의 어색한 조우만 있었을 뿐이다. 장주영 기자

연착된 급행열차의 문은 열렸다. 하지만 타려는 사람과 타고 있는 사람의 어색한 조우만 있었을 뿐이다. 장주영 기자

이렇다 보니 곳곳에서 발길을 돌려 버스나 택시를 타러 나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염창에서 신논현역으로 매일 출근하는 박재윤(26ㆍ여)씨는 “30분 동안 열차가 2대 정도 온 거 같은데 그나마 문이 열려도 탈 수가 없으니 버스나 택시를 타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오늘부터 파업인 건 알았지만 뉴스에서 출근 시간에는 정상운행한다고 해놓고 이게 뭐냐”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9호선 첫날 염창역의 모습.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까지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차있다. 장주영 기자

9호선 첫날 염창역의 모습.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까지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차있다. 장주영 기자

역무실에는 환불을 요구하는 승객들의 줄도 이어졌다. 직원들은 열차를 타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승객들의 이름과 휴대전화번호를 적게한 후 ‘나중에 연락을 드려 환불을 돕겠다’고 안내했다. 환불을 요청한 전모(45)씨는 “환불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항의를 하러 역무실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왜 정상운행한다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했더니 ‘파업 때문에 그렇다’고만 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열차연로 출근길 전쟁을 치른 당산역. 한 승객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다. 황예린 예비기자

열차연로 출근길 전쟁을 치른 당산역. 한 승객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다. 황예린 예비기자

또다른 9호선 역이자 2호선 환승역인 당산역도 출근대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열차가 늦어지면서 급행열차가 아닌 일반 열차도 사람이 많아 타기가 수월치 않았다. 임산부인 이경림(32)씨는 “원래부터 9호선은 임산부에 대한 배려를 바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 오늘은 더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신영(29ㆍ여)씨는 휴대전화를 통해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모습을 찍어 누군가에게 보내는 중이었다. 그는 ”9호선을 타고 강남으로 출근하는 친구가 있어서 사진을 보내주고 ‘2호선을 타고 가라’고 말해줬다“고 말했다. 서모(36)씨는 ”코엑스까지 출근하려면 20~30분 정도 늦을 것 같아 지각 사유를 인증하려고 사진을 찍어뒀다“고 말했다.  
 
염창역과 당산역의 출근대란은 오전 9시를 전후해 풀렸다. 열차 운행이 정상화된 것보다는 다른 이동수단을 택한 승객들이 역사를 빠져나가면서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 53분, 7시 25분 두 차례에 걸쳐 김포공항역에서 신논현 방면으로 가는 급행열차의 출입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차고지로 회송됐다. 
 
서울9호선운영㈜은 이날 혼잡은 파업이 아닌 열차 고장으로 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필수유지인력과 파업 불참자, 신규 채용 인력 등을 동원해 열차를 정상운행할 계획”이라며 “평소처럼 열차가 하루 502회 운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9호선운영 노동조합이 30일 오전 서울시청 옆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9호선운영 노동조합이 30일 오전 서울시청 옆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서울9호선운영 노조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시청 동편 인도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본격적인 파업에 들어갔다. 박기범 서울9호선운영 노조위원장은 “관리감독권이 있는 서울시는 프랑스 운영사와는 어떠한 계약 관계도 없어 어쩔 수 없다고만 한다”며 “서울시가 주장하는 민자유치ㆍ효율적 민영화는 9호선에 존재하지 않고, 노동 착취ㆍ외화 유출ㆍ납품 비리 만이 판을 친다”고 주장했다.
 
노조측은 9호선이 '지옥철'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근무환경 개선과 인력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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