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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찾아 고개 숙인 조국 “교황 말씀 압축하다 실수”

중앙일보 2017.11.30 01:25 종합 10면 지면보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오른쪽)이 2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주교 수원교구를 방문해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인 이용훈 주교와 이야기하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조 수석이 지난 26일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을 왜곡해 인용한 것과 관련해 항의했었다. [뉴시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오른쪽)이 2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주교 수원교구를 방문해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인 이용훈 주교와 이야기하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조 수석이 지난 26일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을 왜곡해 인용한 것과 관련해 항의했었다. [뉴시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인용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낙태’ 관련 발언을 놓고 불거진 청와대와 천주교의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까.
 

낙태죄 관련 ‘새로운 균형점’ 발언
천주교 반발 3일 만에 잘못 인정
“교황의 인식 왜곡할 의도 없었다”

청와대 신자모임 회장 박수현 동행
천주교는 낙태 허용 반대 서명운동

논란의 발언 당사자인 조국 수석이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주교 수원교구를 찾아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용훈 주교를 예방했다. 조 수석은 이 주교를 만나자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청와대 가톨릭 신자모임 ‘청가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수현 대변인도 함께였다.
 
이들이 이날 생명윤리위원회를 찾은 건 지난 26일 조 수석이 ‘낙태죄 폐지’ 국민 청원에 대답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신중절에 대해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고 말한 데 대해 생명윤리위가 다음 날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기 때문이다.
 
박 대변인은 면담 뒤 브리핑을 통해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이용훈 위원장님과 이동익 신부님(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지영현 신부님(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을 조국 민정수석과 함께 면담했다”며 “생명 존중이라는 천주교회의 입장을 겸허하게 청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와대의 청원 답변 내용 중 교황님의 말씀은 ‘아이리시 타임스’ 기사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음을 말씀드렸다”며 교황 발언을 잘못 인용한 데 대해서도 사과했다.
 
‘아이리시 타임스’는 2013년 9월 20일자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길 원하며 주요 의사 결정에서 여성의 참여도를 높이고 동성애자, 이혼한 사람들, 낙태를 한 여성들에 대한 비난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조 수석이 교황의 ‘새로운 균형점(new balance)’ 발언을 곧바로 낙태죄 폐지 문제와 연결 지었다는 점이다. 천주교는 “낙태에 반대하는 교황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반발했고, 결국 조 수석이 사흘 만에 실수를 인정했다.
 
조 수석과 박 대변인은 이 자리에서 “청와대가 낙태죄 문제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하거나 예단을 갖고 이 문제를 바라보지 않는다”며 조 수석이 교황 발언을 인용한 것도 낙태를 죄(罪)로 보는 교황의 기본 인식을 왜곡하거나 호도하려 했던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천주교 측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을 조 수석이 왜곡 인용했다는 입장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측은 “교황님의 발언이 ‘낙태 허용’을 의미한 게 아니다. 천주교 교회는 배아 상태를 생명으로 보기 때문에 낙태를 살인으로 본다”며 “교황님의 발언은 낙태에 대한 허용이 아니라 낙태로 인해 죄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죄할 때 그들에 대한 자비를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동성애 결혼에 대한 교황의 입장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 추기경으로 일할 때도 뜨거운 이슈였던 동성결혼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대신 “교회를 찾아오는 동성애자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라며 그들에 대한 자비를 강조하고, 동성애자에 대한 정죄는 신의 영역임을 밝힌 적이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낙태’에 대한 청와대의 움직임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천주교는 전국 교구 차원에서 ‘낙태 허용 반대 100만 명 서명운동’을 펼친다. 주교회의는 29일 각 교구에 이와 관련한 공문을 발송했다. 
 
백성호·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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