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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구웠네” “상쾌” … 학교 옆 편의점엔 담배 광고만 25개

중앙일보 2017.11.30 01:08 종합 14면 지면보기
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초등학교 근처 편의점 담배 진열대가 현란한 광고로 가득 차 있다. 담배는 경고그림을 가리기 위해 위아래가 뒤집혀 있다. [정종훈 기자]

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초등학교 근처 편의점 담배 진열대가 현란한 광고로 가득 차 있다. 담배는 경고그림을 가리기 위해 위아래가 뒤집혀 있다. [정종훈 기자]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초등학교 근처 편의점. 담배 진열대에 형형색색의 광고 10여 개가 붙어 있다. ‘레종 프렌치 번’ ‘잘 구웠네’ 등 KT&G의 담배 레종 광고 문구가 유난히 눈에 띈다. 이 담배는 빵처럼 잘 구웠다는 이미지로 소비자를 현혹한다. 진열대 앞에는 담배 제품을 홍보하는 대형 깔개가 깔렸다. 계산기 모니터에도 담배 광고가 여럿 붙어 있다.
 

건강증진개발원 3000곳 조사
수퍼 6개, 기타 소매점 2개와 차이
진열대 깔개, 계산 모니터에도 부착
담배는 거꾸로 진열, 경고그림 가려
아동·청소년에게 자연스럽게 노출

담뱃갑은 모두 위아래가 뒤집혀 진열돼 있다. 담뱃갑 상단의 경고그림을 잘 안 보이게 숨긴 것이다. 50대 여성 점주는 “손님들이 그림과 눈 마주친다고 싫어해 하나하나 다 뒤집어놨다”고 말했다.
 
이 학교 3학년 B군은 “담배 광고가 호기심을 갖게 한다”며 “계산대 뒤에 번쩍거리는 광고를 보면 백화점 같다. 펭귄 같은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어 장난감인 줄 알고 사 달라고 했다가 누나한테 혼났다”고 말했다. 4학년인 최모(11)군은 일주일에 5~6번 편의점에 들른다. 친구와 라면을 먹던 최군은 “편의점에서 계산할 때마다 담배 광고가 있어서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담배는 사진만 봐도 징그럽고 싫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의 한 고교 근처 편의점에도 궐련형 전자담배 광고가 큼지막하게 걸렸다. ‘상쾌’ ‘간편’이라는 단어를 밝은 화면으로 표시했다. 매대 한쪽에서는 주인이 제품 모형을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한다. 편의점 주인은 “요즘 기계가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말했다.
 
학교 근처 소매점에 표시된 다양한 담배 홍보 문구. [자료 선필호 부연구위원]

학교 근처 소매점에 표시된 다양한 담배 홍보 문구. [자료 선필호 부연구위원]

긍정적 문구, 현란한 화면으로 강조
 
학교 근처 편의점의 현란한 담배 광고가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흡연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그림 가리기도 성행한다. 선필호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부연구위원은 30일 담배규제 정책포럼에서 담배 광고·진열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한다. 9~10월 전국의 학교 주변 200m 내 담배소매점 중 3000곳(편의점 1235곳)을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소매점 10곳 중 9곳(91%)은 담배 광고를 하고 있다. 특히 아동·청소년이 많이 찾는 편의점은 모두 광고한다. 한 곳당 평균 25개의 담배 광고를 한다. 수퍼마켓(6.5개), 기타 소매점(2.3개)은 상대적으로 적다. 편의점 한 곳의 담배 광고는 2015년 16.8개, 지난해 20.8개에서 올해 25개로 늘었다. 이번 조사에서 편의점 1178곳(95.4%)은 밖에서 담배 광고를 볼 수 있다. 불법이다.
 
학교 옆 소매점 담배 광고·진열 보니

학교 옆 소매점 담배 광고·진열 보니

소매점의 대표적인 담배 광고 형식. 광고 형태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자료 선필호 부연구위원]

소매점의 대표적인 담배 광고 형식. 광고 형태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자료 선필호 부연구위원]

광고 방식도 다양하다. 스티커가 36.2%로 가장 흔했다. 현란한 화면을 활용한 디스플레이 광고(30.1%), 조명을 사용하는 광고가 16.6%다. 눈에 잘 띄게 계산대 주변에 집중돼 있다. LED 광고판이나 계산대 모니터, 풍선 등의 자극적인 수단을 동원한다. 선필호 부연구위원은 “아이들이 담배 광고를 자주 접하게 되면 흡연을 하게 될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담배 회사가 소매점에 광고 부착 지원금을 음성적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성규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는 “현행 담배사업법상 담배 회사가 소매상에게 금전적 이익을 줄 수 없지만 현장에선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담뱃갑 경고그림이 의무화된 이후 이를 가리는 행위가 끊이지 않는다. 이번 조사에서 소매점 825곳(28.3%)이 경고그림을 가리고 있었다. 339곳(11.6%)은 경고그림 가림용 담배 케이스, 스티커 등을 무료로 배포하거나 판매했다.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경고그림을 가리기 위해 담배를 위아래로 뒤집어 진열한 모습. [연합뉴스]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경고그림을 가리기 위해 담배를 위아래로 뒤집어 진열한 모습. [연합뉴스]

 
광고 규제 법안은 국회 문턱 못 넘어
 
29일 방한한 커스틴 쇼트 세계보건기구(WHO) 만성질환예방부 박사는 “WHO의 담배규제기본협약(FCTC·한국도 비준)에는 TV·옥외 광고판 등의 광고 외에 판매점의 광고·진열·판촉 행위도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소매점 광고 차단 등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국민 건강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규 겸임교수도 “소매점 담배 광고를 조속히 금지하고, 경고그림을 가려도 소용없게 그림 크기를 키우고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소매점 담배 광고 규제될까
담뱃갑 경고그림을 가리기 위한 장치들. [자료 선필호 부연구위원]

담뱃갑 경고그림을 가리기 위한 장치들. [자료 선필호 부연구위원]

하지만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이 경고그림을 가리거나 학교 출입문 반경 50m 절대정화구역 내 소매점의 담배 광고를 금지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지난 2월 발의했으나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한편 30일 담배규제 정책포럼에 참석하는 오렐리 베르뎃 스위스 산업보건연구소 박사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에서 일반 담배와 마찬가지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연구를 공개한다. 아이코스에서 1군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일반 담배의 74% 검출됐다고 한다. 인체에 유해한 아크롤레인 성분도 궐련 대비 82% 나왔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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