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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몇 년째 오르지 않는 임금 왜일까? 경제학자도 답을 못 찾는다

중앙일보 2017.11.30 01:04 종합 22면 지면보기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고무 부품 제조업체인 커스텀 러버를 운영하는 찰리 브라운 사장은 요즘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경제가 살아나면서 숙련된 기술자가 귀한 몸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 실업률은 4.1%였다. 17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미 17년, 영 42년 만에 최저실업률
임금은 1년 새 0.2% 오르는 데 그쳐
파트타임 늘며 고용의 질 나빠져
생산성 떨어지고 글로벌화도 이유

이처럼 노동시장에서 수급이 빠듯해지면 임금은 올라야 한다. 수요가 증가하는데 공급이 제한되면 가격이 오른다는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브라운 사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도 임금을 파격적으로 올리지는 못한다. ‘인플레이션 제로’ 상황에서 고객에게 제품 가격을 인상한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미국의 실질임금은 지난해 동기보다 0.2% 오르는 데 그쳤다.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명목임금 상승률은 2.4%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목표치인 3.5%에 못 미친다(이 목표는 지난 9년간 한 번도 달성되지 못했다). 미국뿐이 아니다. 일본·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오르지 않는 임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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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올 상반기 실업률이 2.9%였다. 수치만으로는 완전고용을 달성한 수준이다. 기업의 목표 채용 인원이 구직자 수보다 많은 현상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실질 임금상승률은 0.1%에 불과했다. 영국 실업률은 올 2~4월 평균 4.6%로 1975년 이후 42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하지만 3월 임금상승률은 2.1%로 금융위기 이전 평균치인 4%의 절반에 불과하다.
 
임금상승률이 저조하거나 아예 오르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저성장을 만성화하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소비는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요소다. 임금이 오르면 소비가 늘어난다. 이 결과 기업은 생산을 늘릴 수 있고 기업의 이익은 증가한다. 그러면 기업은 채용을 늘리거나 임금을 올린다. 이런 선순환으로 경제가 성장한다. 낮은 임금은 구매력을 낮춰 소비 부진을 부르고, 부진한 소비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장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선진국 노동시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실업과 임금의 연결고리가 끊어졌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실업률과 임금상승률은 역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밝힌 필립스 곡선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정 기간의 실업률(가로축)과 임금상승률(세로축)을 그래프로 그리면 ‘L’ 모양의 필립스 곡선이 나타나는데, 최근 선진국의 핍립스 곡선은 기울기가 가로로 평평하게 누워 버렸다.
 
실업률이 낮아져도 임금상승률은 정체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력 수요가 증가하는데 임금은 왜 오르지 않는 걸까. 경제가 회복돼도 임금이 오르지 않는 현상은 계속될까.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이를 ‘임금 상승 수수께끼(wage growth conundrum)’라고 불렀다. 최근 경제학자와 정책 결정자들은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지난달 IMF는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주요 국가 실업률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지만 임금상승률은 그에 못 미친다. 미국·캐나다·프랑스·영국 등 주요 선진국 대부분은 2007년보다 완만한 명목 임금 상승률을 보인다”고 밝혔다.
 
이렇게 된 요인 중 하나로 IMF는 파트타임 근로자 증가를 꼽았다. 최근 수년간 임시 계약직, 유연 근무 등 비정형 근무가 확산하면서 근로시간과 임금 상승 폭이 동시에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 여성의 고용 참여, 기술 발전 등으로 고용 형태가 다양화한 데 따른 것이다. 임시직 또는 파트타임 근로자는 정규직 또는 풀타임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계속 구직활동을 한다. 이들은 계약 형태가 바뀐다면 같은 임금으로도 일할 의사가 있기 때문에 임금 상승 유인이 떨어진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단기 계약으로 일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근로자의 증가도 이에 해당한다. 차량 공유업체 우버, 숙박 공유업체 에어비앤비, 음식 배달업체 딜리버루 같은 업체들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인력을 고용한다. 여유 시간에 잠깐씩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낮은 임금과 복리후생 부족으로 최근 비판받고 있다.
 
IMF는 “근로자 1인당 근무시간이 줄면서 임금 상승이 억제되고 있다”며 “파트타임·계약직 고용이 늘어나는 추세에서의 실업률은 과거와 다르게 봐야 한다”고 밝혔다. 언뜻 보면 실업률이 떨어지고 완전고용의 훈풍이 부는 듯 보이지만 고용의 질은 나빠졌다는 지적이다. 이를 IMF는 ‘표면적 치유(surface healing)’라고 불렀다.
 
로버트 바르베라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경기가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기 회복이 더딘 탓에 기업이 서둘러 고용을 늘리지 않았고, 이 때문에 임금 상승 역시 지체됐다는 것이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0월 10%였던 실업률이 4%대로 내려오는 데 8년 걸렸다”며 “1990년대 호황기를 겪어보지 못한, 2000년 이후 저성장에 익숙해진 근로자들은 당당하게 높은 임금을 요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고 말했다.
 
노동생산성 하락도 임금 인상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IMF는 “시간당 산출을 늘려야 기업이 임금을 올릴 유인이 되는데, 지금처럼 노동생산성이 오랜 기간 나빠진 채로 지속하면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4분기 기준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금융위기 이전 추세가 지속했다고 가정했을 경우의 90%, 유로존과 일본의 경우 각각 92% 수준이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제러드 번스타인은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저조한 인플레이션으로 기업이 가격을 쉽게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생산성 증가율까지 낮으니 기업들이 이윤 확보를 위해 임금 인상을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의 글로벌화도 한몫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무역이 증가하고 글로벌 공급 체인이 확대되면서 한 나라의 노동시장 여건은 다른 나라의 임금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같은 저임금 국가의 노동력이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빼앗는 상황에서 미국 근로자들이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기 어렵게 됐다”고 전했다.
 
세계적으로 노동조합이 힘을 잃어가는 것도 근로자의 협상력을 약화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 근로자의 23%만이 노조 조합원이었다. 1990년의 40%에서 확 줄었다. 독일은 같은 기간 비율이 31%에서 18%로 떨어졌다.
 
인구구조 변화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고임금을 받던 베이비부머가 은퇴한 자리를 저임금 신규 근로자들이 채우면서 임금 인상 유인이 약화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기에 ‘벤치’를 지키던 근로자들이 경기가 회복되면서 고용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저임금에 머물다 보니 전체 임금 인상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진단이다.
 
IMF는 “임금이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오르지 않는 이상 인플레이션은 계속 낮게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며 “경기 부양책을 거둬들이기 시작한 중앙은행들이 이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로존 중앙은행들은 경기 회복을 위해 시중에 돈을 풀었음에도 물가가 오르지 않자 이를 ‘미스터리’로 규정했다.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에 미달하지만 경기 회복세를 반영해 보유 자산을 축소하고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미 대선 달군 저임금,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다
오르지 않는 임금은 지난해 미국 대통령선거와 올해 한국 대선에서 핫 이슈였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임금 인상과 일자리 확충에 한목소리를 냈다. 클린턴은 연방 최저임금을 시간당 7.25달러에서 12달러로 올리고, 대량 해고가 일어난 산업에 투자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는 최저임금을 10달러로 올리고, 해외로 나간 제조업 일자리를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3% 증가했다. 임금은 8.7% 올랐지만 물가가 9.5% 오르는 바람에 실질 임금은 2000년 수준에 머물렀다. 제조업 일자리는 1700만 개가 사라졌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승리한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창했다. 최저임금 인상 등 실험이 진행 중이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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