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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의 신’ 키운 체조 명장, 이번엔 설원 묘기 조련

중앙일보 2017.11.30 01:00 경제 10면 지면보기
‘도마의 신’ 양학선(아래 작은 사진)을 키운 조성동 감독은 평창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에어리얼 대표팀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에어리얼 팀을 맡은 건 스키를 타고 내려오다 공중곡예를 하는 동작이 기계체조 기술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김상선 기자]

‘도마의 신’ 양학선(아래 작은 사진)을 키운 조성동 감독은 평창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에어리얼 대표팀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에어리얼 팀을 맡은 건 스키를 타고 내려오다 공중곡예를 하는 동작이 기계체조 기술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김상선 기자]

“고개 들어. 다리 붙이고. 멀∼리. 옳지, 잘 했어.”
 

조성동 에어리얼 스키 대표팀 감독
공중으로 점프해 몸 비틀어 회전
기계체조와 비슷해 조 감독 모셔

국내 도입 2년 밖에 안 됐지만
올림픽 티켓 1명 확보, 1명 유력

조 감독, 기술보다 기본기에 주력
“길 닦는 마음으로 최선 다할 것”

조성동(70) 감독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체육관을 울린다. 트램펄린(일명 방방이) 위에서 팡팡 뛰는 선수. 점점 높이 솟구친 뒤 정점에서 휘리릭 몸을 감아돌린 뒤 상자 모양 스폰지들이 깔린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충북 진천에 있는 국가대표 선수촌. 에어리얼 스키(Aerial Ski) 대표팀 윤기찬(23·한국체대)·김남진(21·한국체대)·김경은(19·송호대)이 개선관 3층 체조장에서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설원의 서커스’로 불리는 에어리얼 스키는 화려하고 박진감이 넘치지만 국내에서는 시작한 지 2년 밖에 안된 신생 종목이다.
 
‘도마의 신’ 양학선.

‘도마의 신’ 양학선.

조성동 감독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도마의 신(神)’ 양학선(25)을 조련해 기계체조 도마 금메달을 일궈낸 명장이다. 에어리얼은 공중으로 높이 점프해 몸을 비틀고 착지하는 종목이어서 기계체조 출신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래서 대한스키연맹은 2015년 에어리얼 대표팀을 꾸리면서 조 감독을 모셔왔다. 조 감독은 “에어리얼이 도마와 비슷하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높이 솟구쳐서 수직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도마보다는 철봉과 흡사한 종목이다. 우리 선수들이 세계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차근차근 따라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에어리얼은 길이 55m의 직선 슬로프를 내려오다 수직으로 세워진 도약대를 타고 점프해 공중에서 회전·백플립(공중제비)·트위스트(비틀기) 등의 묘기를 시연한 뒤 착지하는 방식이다. 배점은 점프 20%, 공중동작 50%, 착지 30%다. 5명의 심판 점수 중 최고·최하점을 뺀 뒤 난이도를 곱해 최종 점수를 낸다. 참가자의 수준에 따라 싱글·더블·트리플로 나뉜 도약대를 쓴다. 수준이 높을수록 도약대가 높아지며 정상급 선수는 지상에서 18m까지 솟구친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싱글∼더블 정도 수준이다.
 
국내에는 에어리얼 훈련 시설이 없다. 대표팀은 국내에서 트램펄린을 이용해 동작을 익히고, 수영장 풀로 착지하는 시설이 있는 중국에 가서 기술을 가다듬은 뒤 내몽골에 있는 정식 에어리얼 경기장에서 실전 훈련을 한다.
 
에어리얼 경기 모습. [김상선 기자]

에어리얼 경기 모습. [김상선 기자]

김남진과 김경은은 기계체조 선수 출신이고 윤기찬은 모굴 스키에서 전향했다. 모두들 그 종목에서 정상급 선수는 아니었다. 올림픽 출전 기회를 바라보고 과감한 변신을 택한 경우다. 기량이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김경은은 지난 2월 평창올림픽 테스트 이벤트로 열린 프리스타일 스키 월드컵에서 여자부 26명 중 20위에 올라 올림픽 출전권을 땄다. 김남진도 이 대회에서 32명 중 24위를 차지해 가능성을 보였다. 김남진은 다음달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0.6포인트만 더 따면 평창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윤기찬은 4점을 더 얻어야 평창행 티켓을 딸 수 있다. 체조 선수 출신이 아니라 스키 선수 출신인 그는 “피아노를 못 치는 학생이 음대에 들어온 기분이다. 왜 체조를 하지 않았는지 후회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나를 믿어주시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희망을 놓지 않고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조 감독도 윤기찬에게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조 감독은 ‘기본기’를 강조하는 지도자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개최국 일본의 텃세를 뚫고 남자 단체 은메달을 땄을 때 가장 뿌듯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고등학생들을 대표로 뽑은 뒤 하루 종일 철봉에 매달려 시계추처럼 앞뒤로 왔다갔다 하는 훈련만 시켰다. 체조협회 임원들이 ‘어쩔려고 그러냐’고 난리를 쳤다. 그렇게 몇 달을 기본기 훈련만 한 뒤 기술을 가르치니까 하루에 서너 개씩 소화하더라. 그렇게 키운 애들이 한국 체조의 간판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본기는 더 나은 기술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다. 난 무턱대고 기본기 훈련을 시키지 않는다. 그 선수가 최종적으로 해내야 할 단계에 맞춰 기본기를 가르친다”고 밝혔다.
 
조 감독의 지도 철학이 이렇다 보니 젊은 선수들이 답답해 하기도 한다. 세 선수는 이구동성으로 “더 높은 단계의 기술을 소화할 자신이 있는데 감독님은 허락하시지 않으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나 조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지도자 중에 하계·동계 올림픽에 모두 나가는 사람은 내가 처음인 것 같다. 나라고 멋지게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겠나. 그러나 우리는 길 닦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 에어리얼의 역사를 쓴다는 책임감을 갖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
 
에어리얼 대표팀은 지난 16일 내몽골로 마지막 전지훈련을 떠났다.
 
진천=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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