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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20년의 회고와 교훈…“경제위기는 현재진행형”

중앙일보 2017.11.29 15:56

“재벌들은 고위험-고수익 사업에만 열을 올렸고, 금융회사도 사업성 검증이나 심사 없이 대출로 외연을 늘리는 이자 장사에만 집중했습니다.”

29일 '외환위기 20년의 회고와 교훈'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김석동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 [사진=예금보험공사]

29일 '외환위기 20년의 회고와 교훈'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김석동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 [사진=예금보험공사]

 
김석동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경제 상황을 이같이 표현했다. 29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대강당에서 열린 ‘외환위기 20년의 회고와 교훈’ 세미나 자리에서다.

예금보험공사 ‘외환위기 20년의 회고와 교훈’ 세미나
“외환위기는 정부주도형 성장과 금융시스템 부재의 결과”
“문어발식 투자에 열 올린 재벌과 제어할 시스템 부재”
“외환위기는 현재진행형, 안정성·건전성 강화해야”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안 1997년. 대한민국 경제는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며 그로기 상태에 몰렸다. 구제금융을 신청하며 한국의 경제주권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당시 한국의 외환 부채는 304억 달러. 대우그룹과 한보그룹 등 재계 30위권 이내의 대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수십만명이 정리해고를 당해 길거리로 내몰렸다.
 
불균형 성장과 금융시스템의 부재 
이날 세미나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김 전 위원장은 ‘제2의 경술국치’라 불린 위환위기 발발의 가장 큰 이유로 정부주도형 성장으로 인한 불균형과 경제금융시스템의 부재를 꼽았다. 재벌기업은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문어발식 확장에 몰두했고, 상환능력과 만기를 고려하지 않은 채 대출을 남발하는 금융회사를 견제할 장치가 없었다는 의미다.  
 
김 전 위원장은 “1997년 외환위기는 동남아 국가에서 촉발된 통화위기라는 외부 요인에 더해 성장에만 주력해온 재벌들의 과잉투자와 과잉부채, 그리고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경제시스템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뼈아픈 경제 실패였다”고 말했다.
 
금모으기 운동, '하나된 국민' 
그는 사실상의 정부 실패였던 외환위기를 극복한 주인공은 ‘하나된 국민’이었다고 말했다. 금 모으기 운동은 당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이 ‘십시일반’한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 부채를 갚기 위해 국민들은 금을 자발적으로 내놓는 금모으기 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 약 227톤(21억3000달러 어치)의 금이 모였다.
 
당시 한국의 수출 경쟁력 또한 상대적으로 빠른 시일 안에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요소로 꼽힌다. 김 전 위원장은 “외환위기를 겪은 지 불과 1년 만에 대한민국은 405억 달러에 달하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며 “이후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계속해서 유지된 것은 위기 상황 속에서도 한국이 수출 경쟁력이 점차 강화된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현재진행형인 'IMF 외환위기' 
곽범국 예금보험공 사장이 세미나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예금보험공사]

곽범국 예금보험공 사장이 세미나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예금보험공사]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경제 전문가들은 ‘외환위기의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입을 모았다. 곽범국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위환위기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가계부채, 양적완화 축소, 북한 리스크 등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대내외 리스크 요인들은 여전히 상존해 있다”며 “우리도 미국의 FSOC(금융안정감독위원회)와 같은 공식화된 위기대응 협의체를 설치해 신속하고 일관된 정책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제2의 외환위기’를 유발할 수 있는 한국 경제의 리스크로 ^노동 안정성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 ^복지 부담에 따른 세대 간 갈등 문제 등을 꼽았다. 실제 한국개발연구원(KDI)가 외환위기 발생 20주년을 계기로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인식조사 결과 응답자의 88.8%(복수응답)가 외환위기가 현재 한국에 끼친 영향으로 ‘비정규직 문제 증가’를 꼽았다. 외환위기가 공무원과 교사 등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고(86.0%), 국민 간 소득 격차를 키웠으며(85.6%), 취업난을 심화시켰다는(82.9%)는 응답도 많았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박재하 금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외환위기 당시 청와대 경제구조조정기획단 종합반장)은 “앞으로 1997년과 같은 외환위기가 오진 않겠지만 또 다른 형태의 경제위기가 올 가능성이 큰 만큼 항상 경제 전반의 건전성과 안정성을 되돌아보고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특히 1400조에 달하는 가계부채 문제를 하루빨리 극복하고 금융회사들이 ‘생산적 금융’을 위한 다양한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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