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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서 눈 가린 엄마 안내 체험 … “우리 애가 차분해 졌어요”

중앙일보 2017.11.29 01:48 종합 25면 지면보기
서울 양천구 ‘우렁바위 유아숲체험장’에서 진행된 산림치유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눈을 가리고 숲길을 걷었다. [임현동 기자]

서울 양천구 ‘우렁바위 유아숲체험장’에서 진행된 산림치유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눈을 가리고 숲길을 걷었다. [임현동 기자]

“엄마, 지금부턴 내리막길이야. 조심해.” 다섯 살 조연수양이 엄마의 손을 야무지게 잡고 말했다. 그 뒤에서 걷던 나윤재(5)군은 자신의 발을 쭉 뻗어 바닥을 더듬어보더니 근심 어린 표정으로 엄마를 올려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밑에 큰 돌이 있어. 넘어지면 안 돼.” 딸과 아들의 말에 의지하는 어머니들은 눈에 안대를 차고 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엄마를 이끌고 숲길(150m)을 걸었다. 지난 20일 오후 진행된 ‘유아 숲 체험’ 현장의 모습이다.
 

유아숲체험장 산림치유 현장
감정 다스리고 문제 해결능력 키워
스마트폰 중독 등 심리문제도 개선
엄마도 자녀의 마음 이해하는 시간
서울시 내달까지 프로그램 무료운영

서울 양천구 신정산 우렁바위 유아숲체험장에서 진행된 서울시의 산림치유 프로그램 ‘놀이요요’에서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숲길을 걷고 서로를 돕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 이날 프로그램엔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생 8명과 어머니 5명이 참여했다. 기존의 유아숲 체험이 놀이 위주였다면 이 프로그램은 유아숲에 처음으로 도입된 치유 프로그램이다.
 
“어휴 무서워. 엄마 잘 부탁해.” 유독 겁을 내는 엄마 신보영(40)씨의 발걸음에 맞춰 아들 안현(5)군은 천천히 걸었다. 이 모습을 본 김주연 산림치유사는 “안대를 쓰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두렵지요. 사회를 처음 겪는 아이들의 심정이 그럴 거예요. 아이가 (안대 쓴) 엄마를 기다려 주듯이 아이를 기다려 주세요”라고 말했다.
 
곽동훈 서울시 푸른도시국 자연생태과 주무관은 “아이들의 심리 문제와 어머니들의 육아 스트레스를 자연으로 치유하는 것”이라고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했다. 어린이집 등에서 ‘이른 사회생활’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거나 스마트폰 중독 등의 심리 문제를 겪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숲길 중간 지점부터는 반대로 아이들이 안대를 찼다. 엄마의 손을 잡은 안군은 “내 발 아래서 낙엽이 밟히는 소리가 들린다”며 까르르 웃었다. 참가자 중 맏형인 이동규(10·서울 가재울초4)군은 제일 먼저 목표 지점에 올라 동생들을 응원했다. 150m를 걷는 동안 포기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김주연 치유사는 “아이는 감정 다스리는 법을 체득하고 문제 해결력을 기를 수 있다.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이해하고 돈독해지는 시간도 된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우렁바위 유아숲체험장’에서 진행된 산림치유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침낭 위에 누워 하늘을 봤다. [임현동 기자]

서울 양천구 ‘우렁바위 유아숲체험장’에서 진행된 산림치유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침낭 위에 누워 하늘을 봤다. [임현동 기자]

숲 정상에 오른 참가자들은 침낭을 펴고 누웠다. 나란히 누운 조연수·수현(3) 자매가 “엄마, 우리 애벌레 같아. 곧 나비도 되지?”하고 묻자 엄마는 환하게 웃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던 어머니들의 입에서는 “얼마 만에 보는 하늘이야…”라는 탄성이 나왔다. 신보영씨는 “육아를 하면서 창업을 준비하느라 쌓였던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숲은 아이들에게 놀이터가 됐다. 아이들은 흙바닥을 스케치북 삼아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렸다. 두 팔을 벌려 나무를 꼭 끌어안기도 했다. 낙엽으로 손에 간지럼 태우는 아이도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 10월부터 이곳과 종로구 삼청공원 유아숲체험장에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12월까지 일곱 번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숲을 만난 가족은 조금씩 달라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곽노의 서울교대 교수(한국아동숲교육학회 회장)는 “아이는 짜증이 줄고, 차분해진다.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등 체력도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이동규군은 “이전까지는 방과 후에 주로 스마트폰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 동영상을 봤다. 숲이 게임이랑 동영상만큼 재밌는 곳 같다”고 말했다. 전두윤(36)씨는 “부모가 호기심만 갖고 있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숲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내년 봄과 가을에도 여러 유아숲체험장에서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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