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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시각각] 개혁과 복수라는 두 얼굴

중앙일보 2017.11.29 01:38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개혁’에는 ‘복수(復讐)’의 함의가 담기기 마련이다. 있는 것을 뜯어고치자니 그걸 만들고 득 보는 이들과 이해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크거나 작거나, 원하거나 원치 않거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권 차원의 개혁에 으레 ‘정치보복’ 주장이 따르는 게 그래서다. 퇴락한 야당 내에서조차 계파 간에 보복 얘기가 나오는 판에, 개혁의 칼을 휘두르는 집권세력을 향해 거품 문 목소리가 쏟아지는 건 너무도 당연할 터다.
 

저항 최소화에 개혁의 성패 달려
내가 실천할 수 있을 만큼만 해야

개혁 대상은 일반적으로 ‘시대착오’에서 비롯된다. 이를 넘어 ‘병폐’로 지목될 경우 복수의 함의는 더 단단해진다. 오랜 세월 쌓인 ‘적폐’로 치부되는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개혁으로 포장된 복수의 칼날이 더욱 커다랗고 예리하게 빛날 게 뻔하다. 물론 개혁 대상에게 그렇다는 얘기다. 개혁의 주체한테는 그저 청산돼야 할 기득권의 저항일 따름이다. 하지만 개혁이 전기와 같다는 게 문제다. 저항이 클수록 효율성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대신 불필요한 열이 발생한다. 발열은 소모적일뿐더러 계속되면 불이 붙거나 폭발할 위험마저 있다.
 
따라서 저항을 최소화하는 데 개혁의 성패가 달렸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운 게 그래서다. 혁명은 저항을 물리적으로 제압할 동력이 있지만 개혁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촛불 혁명으로 집권했지만 혁명의 본질적 주체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서 그저 시민혁명의 열기에 무임승차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혁명적 동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면 어줍잖게 혁명을 넘볼게 아니라 개혁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 저항을 최소화해야 하며, 곧 복수의 함의를 최대한 희석해야 한다는 얘기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개혁만 하면 된다는 거다. 나도 똑바로 못할 거면서 남이 못했다고 적폐니 청산이니 떠들어대면 저항만 커지고 믿음만 상실할 뿐이다. 자격 시비와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는 현 정부의 인사만 봐도 그렇다.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다. 노벨상 수상 시인인 조지프 브로드스키가 수필집 『하나보다 작은』에서 한마디로 설명한다. “악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순간 뿌리 내린다.”
 
옛 소련 출신으로 미국에 망명한 시인이 시를 쓰면서 터득한 진리다. 한마디 더 보태면 이렇다. “모든 시인은 독재적 성향을 지닌다. 자신이 남들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려 한다.” 펜만 가진 시인도 그럴진대, 서슬 퍼런 권력의 칼자루를 쥔 사람들이야 오죽 그럴까. 마음뿐 아니라 몸도 다스리려 한다. 위험이 훨씬 커지고 즉물적이 됨은 물론이다. 칼을 꺼낼 때마다 브로드스키의 말을 주문처럼 외우는 게 좋다. 그래야 사(邪) 없이 옳은 초식이 나온다.
 
그래도 남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맹신(盲信)이다. 아일랜드 독립운동 지도자 대니얼 오코넬이 그 위험성을 신랄하게 경고한다. 그는 게일어만 고수하려는 아일랜드인들에게 영어를 함께 쓰는 게 독립에 도움이 된다고 설득할 만큼 열린 사람이니 들어볼 필요가 있다. “맹신은 머리가 없어 생각할 수 없고 가슴이 없어 느끼지 못한다. 맹신은 격노한 상태로 활동하고 폐허 위에 엎드려 쉰다. (…) 맹신이 지옥을 날다가 잠시 멈춘다면 그곳은 자신의 독수리가 더욱 잔인하게 사냥할 수 있도록 송곳니를 날카롭게 갈 수 있는 바위일 것이다.”
 
등골이 오싹하지 않나. 이를 피하려면 다시 말해 내가 실천할 수 있을 만큼만 개혁하는 것이다. 그걸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복수(개혁)를 할 때는 지나간 악의 크기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선의 크기를 봐야 한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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