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새로운 적폐를 피하는 법

중앙일보 2017.11.29 01:37 종합 35면 지면보기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는 성범죄, 폭행, 학대 등 끔찍한 사건들은 우리 사회가 과연 정상인가 하는 의문을 낳게 한다. 동시에 그 가해자들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에, 그들에 대한 즉각적이고 철저한 사회적 단죄를 찾게 된다. 그것이 최소한의 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그런 사건들만큼이나 흔해진 또 다른 보도들은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지난 1년 넘게 성범죄자로 낙인찍혀 살았던 시인 박지성이 무혐의 처분을 받고, 그 허위 신고를 한 피해자가 오히려 무고죄의 대상이 되었다. 한때 세상을 경악하게 한 어린이집 교사의 바늘 학대 사건도 최근 무죄로 확정됐다. 한때는 우리 모두에게 흉악한 범죄자였던 이 무고한 시민들의 삶이 그동안 어떠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시집 출간이 중단되고 제자도 떠나고 시인으로서의 삶은 단절됐고, 집 앞에서 피켓까지 들고 시위하는 이웃들이 있었다고 한다. 바늘 학대 사건의 당사자인 교사는 식당일을 전전하고 있고, 그 어린이집 이사장은 심장이 녹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고 토로했다. 이들의 망가진 삶은 누가 어떻게 보상해 줘야 할까?
 

구속 면한 김관진과 전병헌 놓고
정치 성향 따라 옹호·비판 엇갈려
과거에도 사법 절차 무시한 탓에
억울한 유죄 판결 너무 쉽게 내려져
그것이 바로 적폐이자 청산 대상

그나마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무죄가 밝혀졌으니 운이 좋았다. 유죄가 선고돼 감옥에서 긴 세월을 보내다가 무죄로 뒤집히는 경우도 찾기 어렵지 않다. 이렇게 잃어버린 삶은 그 잘못된 사법적 판결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의 삶을 똑같이 망가뜨려도 회복될 수 없다. 그래서 사법 판결의 절차는 어찌 보면 가해자인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보일 정도로 철저하게 규정돼 있다. 무죄 추정의 원칙, 합리적 의심의 기준, 불구속 수사 원칙 등 인권적 가치에 부합하는 형사사법의 대원칙을 따르는 이유는 간단하지만 명백하다. 한 명의 무고한 시민이라도 억울하게 처벌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허태균칼럼

허태균칼럼

물론 흉악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받는 피의자에게도 그 원리가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논리는 불편하다. 하지만 그들은 판결 확정 전까지는 ‘혹시나’ 의심받는 것뿐이다. 최종 판결 한참 후에도 무죄로 밝혀지기도 하니, 확정 판결도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보통 법관들이 그 어려운 기준을 고려해도 합리적 의심이 없이 범인일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 경우에만 유죄 판결을 내리기에, 피의자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외쳐도 사회는 그들을 진범으로 간주하고 처벌한다. 그것이 진실을 알 수 없는 현실적 한계에서 인간의 판단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 불확실성에서 처벌 오류와 무처벌 오류의 갈등을 다루는 사법 체계의 본질이다. 사실 사법 판단도 법관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과정이고, 그 과정은 항상 무오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오류의 위험을 더 감수할 것이냐의 문제가 된다.
 
역설적이게도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사건일수록, 사법 체계는 일반 시민의 요구에 저항하게 된다. 성범죄, 아동학대, 살인과 같은 반사회적 사건은 그 가해자에게 강한 처벌을 반드시 하고 싶은 심리적 욕구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 범인으로 유죄가 확정되는 순간, 그는 중형을 받고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법관은 더 신중해져야 함이 당연하다. 그래서 처벌 오류를 피하고 싶고 어찌 보면 더 높은 유죄 판결의 기준을 적용하게 된다. 처벌 오류를 줄이자니 무처벌 오류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범인의 엄벌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 오히려 범인을 처벌하기 더 어려워지는 비극적 역설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최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이 구속적부심으로 석방되고, 전병헌 전 정무수석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그 근거로 아직 유죄로 확증할 만한 확신은 들지 않고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밝혔다. 이 결정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아직 재판도 받지 않은 그들의 유죄를 확증하는 증거를 가지고 있을까? 만약 그 결정을 옹호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정치적 성향에 의해 갈린다면, 법관은 어느 쪽과 의견을 같이해야 할까?
 
과거의 많은 정치적 사건들, 특히 정권의 압력에 의해 좌우된 사건들의 판결이 바뀌는 사례들이 있다. 그 이유는 결국 과거의 판결이 바로 유죄 판결을 어렵게 하는 그 사법 절차들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 절차들이 지켜지지 않았기에 억울한 유죄 판결이 너무 쉽게 내려졌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 적폐이고 척결의 대상이다. 적폐를 가능한 한 빨리 깨끗하게 없애고 싶어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신중하고 절차를 지켜야만, 과거의 적폐를 없앴을 때 또다시 없애야 할 새로운 적폐를 만나지 않는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