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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 펜화 공방

이낙연 총리 눈물샘 자극하는 한사람

중앙일보 2017.11.29 00:01
 
7월17일에 정부 서울청사에 있는 이낙연 총리 집무실을 스케치했다. 취임 초였고 당장 꺼야할 불이 많아 대중매체를 만나지 않고 있을 때였다. 마침 서울대 총동창신문 인터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함께 들어갔다. 취임 뒤 처음 간 곳이 경기도 안성 가뭄 현장이었다. 이날은 하루 290mm의 호우가 내린 충북 청주 수해지역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오후 5시부터 30분 동안 예정된 인터뷰는 30분 늦게 시작해 1시간10분이 지나서 끝났다. 인터뷰 중에 나는 집무실과 접견실을 오가며 풍경을 담았다.  
그 뒤 정국은 숨 돌릴 틈 없이 돌아갔고, 사건과 사고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림을 묵혀두고 있었다. 지난날 있었던 얘기, 그날 들은 말들, 그 뒤 일어난 일들을 집무실 풍경에 곁들여 재구성한다.  
 
총리 집무실. 총리라고 의자가 크지 않다. 손님은 이방 왼쪽에 있는 접견실에서 맞는다. 안충기 기자-화가

총리 집무실. 총리라고 의자가 크지 않다. 손님은 이방 왼쪽에 있는 접견실에서 맞는다. 안충기 기자-화가

 
1.  
6월 5일 총리는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을 방문했다. 1만원을 주고 시장의 명물인 ‘엽전도시락’을 사들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옆에서 아이와 함께 식사를 하던 엄마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다이어트를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하는 줄 아세요?
-……
-‘내일부터’라고 번역해요.
 
2.
2005년 총리(당시 민주당 의원)를 포함해 의원 104명이 장기기증을 서약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개그맨 김제동은 늘어선 국회의원들을 보며 금광에 서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총리가 한마디 던졌다
“정치인의 장기도 받아줄까 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합니다.”
 
3.
국무회의 자리에서는 윤활유를 쳐 분위기를 푼다.  
“대통령님이 좋은 의견도 엉뚱한 의견도 많이 내라고 하시는데, 오늘은 엉뚱한 의견들만 내시지요.”
“청문회로 시끄러울 때였어요. 회의 시작할 때 그랬지요. 여기 쉽게 온 분도 있고, 어렵게 온 분도 있다. 쉽게 오신 분은 업무로 갚으셔야 합니다.”
(쉽게 왔다는 의미는 청문회를 수월하게 마쳤거나 하지 않고 왔다는 뜻이다.)
 
이런 농담을 굵고 낮은 목소리로 눈을 끔벅이며 무표정하게 던진다. 슬쩍 돌려서 말하기 때문에 한번 생각해야 웃음이 터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유머감각은 어머니를 닮았다고 했다. 매사를 긍정하고 무언가에 정신없이 빠지는 성격은 물론 곱슬머리와 고혈압까지 같단다. 도지사가 된 뒤 어머니는 공관 뒤 텃밭에 고추 상추 가지 오이 등을 키우며 딸들에게 말했다.
“내가 영광 집에 가서 농사를 제대로 해볼까 싶은데 나이가 좀 어중간하지?”
나이 90을 어중간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런 어머니지만 삶은 평생 고단했다. 가난을 이고 지고 전쟁처럼 살아오면서 어머니가 버텨온 구석은 따로 있었다.    
 
총리의 일곱 남매가 어머니에 관한 추억 몇 가지씩을 모아 펴낸 책이 『어머니의 추억』이다.  책에서 큰 딸 연순씨는 기억한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남색 치마에 분홍 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은 여성 한 분을 집에 데리고 오셨습니다. ………(중략). 요즘 시대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겠지만 저희 어머니는 그 ‘작은 여자’와 중매쟁이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그날 밤부터 저와 동생들을 데리고 시어머님(저의 친할머니)과 방을 함께 쓰셨고, 아버지께서는 ‘작은 여자’와 한방을 쓰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버지와 온 가족을 위해 아침밥을 지으셨고, 제게는 아버지께 진지 드시라 여쭈라며 심부름을 시키곤 하셨습니다.  
그때는 제가 너무 어리고 철이 없었나 봅니다. 저는 아버지의 방문을 열고 본 것을 어머니께 그대로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엄마! 작은 엄마가 아빠 팔 베고 잔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그대로 밥상만 차리고 계셨습니다.
그 후로도 어머니는 변함없이 시어머니와 남편을 공경하며 ‘작은 여자’에게도 따뜻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작은 엄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어머니께 죄를 지을 수 없다며 떠나셨습니다.
제가 좀 더 철이 들었을 때인가요? 어머니께 그 일에 대해 여쭈어 보았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추호의 미움도 없이 아버지께 한결 같이 잘 하실 수 있었느냐고.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내게는 너희들이 있었으니까. 아버지가 언젠가는 돌아오실 것이다 믿으며 용기를 가졌다.”
집무실 창밖 풍경. 광화문광장 너머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다.      안충기 기자-화가

집무실 창밖 풍경. 광화문광장 너머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다. 안충기 기자-화가

 
총리는 어머니를 이렇게 추억한다.
 
“가을 농사 마치면 어머니는 게를 잡으러 다니셨다. 이듬해 여름까지 가족들이 먹을 밑반찬을 장만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새벽에 도시락 두 개를 싸가지고. 모든 길을 걸어 다녔다. 주로 전남 영광군 백수해변이었는데, 집에서 6~7km떨어진 곳이다. 백수에 게가 없어지거나 하면 전북 고창 심원 해변까지 다니셨다. 최근에 동생 하나가 도로표지판에 적힌 거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집에서 심원까지는 정비된 국도로 달려도 23km였다. 국도가 생기기 전엔 어머니는 구불구불한 길로 대체 얼마나 걸었는가. 왕복 50km가 훨씬 넘는 길이었다.”  
 
총리는 전남지사 퇴임식을 마치고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어머니’ 얘기만 하려 해도 눈물이 나오는 것처럼, ‘전남’ 생각만 해도 목이 멥니다.”  
어머니는 총리가 된 아들을 걱정했다.  
“도지사가 됐을 때는 참말로 좋았는데 이번에는 마음이 편치 않구나. 너도 이제 쉴 나이가 됐는데…”
2014년 전남지사 시절의 이 총리와 어머니 진소임 여사. 어머니는 관사의 마루에서 퇴근하는 아들을 기다렸다.   [프리랜서 오종찬]

2014년 전남지사 시절의 이 총리와 어머니 진소임 여사. 어머니는 관사의 마루에서 퇴근하는 아들을 기다렸다. [프리랜서 오종찬]

 
 
총리는 서울법대 시절 억울한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를 꿈꿨다.
“2학년 때부터는 하숙비 낼 돈도 없었어요. 사법시험에 몰두하기가 쉽지 않았지요. 177cm에 50kg이 안 됐으니까요. 동생들은 줄줄이 있고 장남으로서 돈을 벌어야 했어요. 졸업하자마자 신탁은행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을 만나면 뭐하는 데라고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누구나 알아듣는 동아일보 기자로 들어갔지요. 그러다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저는 ‘인생은 아름답다. 역사는 발전한다’는 DJ의 마지막 말씀을 믿어요. 아버지가 하숙비를 못 주셔서 기자가 됐고 그러다 DJ를 만나 국회의원이 됐고 지사 총리가 됐잖아요. 압축해서 말하면 하숙비가 없어 국무총리가 됐다고 할 수 있지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해요. 총리가 대단한 게 아니라 이 변화 자체가 경이로운 거라고.”      
 
이 총리의 말은 군더더기가 없다. 활자로 옮기면 그대로 기사가 된다. SNS에 올리는 글은 수식이 없고 명확한 단문이다. 이런 식이다.  
 
세월호 미수습자들께 조문 드렸습니다. 권오복 회장님을 포함한 미수습자 가족들과 처음으로 소주 몇 잔 나누었습니다. 제가 총리로 호출 받을지 몰랐던 전남지사 시절에 많이 뵈었지만, 소주를 마실 수는 없었습니다.(11월 18일 오후 9:43 페이스북)
 
손자가 태어났습니다. 예정보다 12일 빠릅니다. 그래도 4.4kg. 큽니다. 이목구비가 저를 닮은 듯. 단점은 닮지 말아야 하는데. 생후 33개월 손녀와 남매입니다.(11월 4일 오후 8:13 페이스북)
 
기자로 25년 일한 이력이 말과 글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총리실은 동으로 창이 나 있다. 창가에 서면 아래로 광화문광장이 내려다 보인다.    안충기 기자-화가

총리실은 동으로 창이 나 있다. 창가에 서면 아래로 광화문광장이 내려다 보인다. 안충기 기자-화가

 
인터뷰 뒤 예정에 없던 저녁을 함께 했다. 청사 뒤의 남도 음식점에서였다.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관저에 들어갔더니 요리사가 없어요. 손님들 식사 대접을 하려면 출장요리사를 불러야 해요. 셋이 먹어도 기본이 100만원이에요. 낭비가 크잖아요. 그래서 1명을 뽑았지요. 김영란법을 고려해 1인당 3만 원이하의 음식을 냅니다. 김치찌개를 메뉴에 넣었는데 인기 폭발이에요. 드시는 분들이 다들 좋아하더군요.”
 
술자리에서는 대개 막걸리를 마신다.
“농민들 도울 수 있고, 쉽게 배부르니 과음할 염려가 없고, 다음날 아침에 속편하니 일석삼조잖아요. 취임 한 달이 지나니 총리실 직원이 그래요. 지난 정부에서보다 총리가 외부에서 밥 먹은 횟수는 꽤 많은데 쓴 돈은 훨씬 적다는 거예요. 김치찌개 먹고 막걸리 마시니 돈 많이 들 일이 뭐 있겠어요. 세종 총리실 대회의실에서 출입기자 50여명과 상견례를 할 때 지역 막걸리를 갖다놓았지요. 자기 동네 술이 앞에 있으니 다들 좋아하더군요.”  
술은 대개 막걸리를 마신다. 많이 마실 수 없으니 실수할 염려가 없다. 막걸리의 장점 중 하나다. 형광등 아래서 찍어 사진이 흐리다.     안충기 기자-화가

술은 대개 막걸리를 마신다. 많이 마실 수 없으니 실수할 염려가 없다. 막걸리의 장점 중 하나다. 형광등 아래서 찍어 사진이 흐리다. 안충기 기자-화가

 
불필요한 의전도 없앴다.  
“경호 인력을 반으로 줄였지요. 전에는 외부에 나가면 선도 차량이 길을 개척하고 뒤에도 경호하는 차가 있었지요. 뒤에 붙던 차를 없앴어요. 신호통제도 하지 않아요. 공항에 가고 올 때 의전 때문에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
 
총리는 문자나 카톡에 인색하지 않다. 늦어도 어떻게든지 답을 한다.
“전화 2대를 쓰다가 하나를 분실했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 중의 하나가 담배 끊은 거, 다음이 전화 잃어버린 거예요. 두 대를 쓸 때는 찾는 전화번호가 여기 있나 저기 있나 항상 헷갈렸는데 엄청 편해졌어요.”
 
기자 시절 총리의 송곳 같은 구석은 이제 둥글어져 찾기 어렵다. 깔끔한 일처리는 여전하다.  
“직원들은 징글징글 할 겁니다. 그래도 혼을 내면 그날 식사나 막걸리 한 잔 하면서 풀어주려 합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면 내 자식에게까지 화가 간다고 하잖아요.”
 
총리의 농업 지식이 만만찮다. 들 넓고 섬과 갯벌 많은 전라남도 행정을 오래 한 덕이다.  
“대통령은 나라를 통찰해야 하지만 지사는 체험으로 알아야 합니다. 모르고 현장을 갈 수는 없지요. 매생이는 물매생이와 찰매생이가 있어요. 찰매생이는 식어도 국물과 매생이가 색깔이 같아요. 맛도 더 좋지요. 대파의 뿌리 쪽 흰 부분이 총백인데 30센티 이상 돼야 상품으로 쳐줘요. 좋은 파를 만들려면 그래서 계속 흙으로 북돋워줘야 해요. 만만한 농사는 없어요.”  
스케치북에 받은 이 총리의 서명.

스케치북에 받은 이 총리의 서명.

 
인터뷰를 마치며 말했다.
“어려운 문제가 산처럼 많았지만 용케 잘 풀어낸 총리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안충기 기자·화가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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