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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재 확보·R&D 비용 절감·기술 보완'…대기업 스타트업 M&A '스타트'

중앙일보 2017.11.28 17:26
동반성장위원회가 가산점을 준다고 해도 지지부진했던 대기업의 국내 스타트업 인수합병(M&A)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보기술(IT) 대기업의 인공지능(AI) 인재난을 해소하고 연구개발(R&D)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장점으로 스타트업 M&A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국내 스타트업 전반의 역량이 높아진 것도 한몫하고 있다.
 

삼성전자, AI 챗봇 개발업체 플런티 인수…국내 스타트업으론 첫 사례
네이버·카카오·SK플래닛 등 IT 기업이 적극적
대기업 '문어발 확장' 부정적 인식과 규제 걸림돌
"대기업 확장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규제 완화해야 M&A 활성화 돼"

삼성전자는 최근 인공지능 채팅로봇을 개발하는 국내 스타트업 플런티를 인수했다고 28일 밝혔다. 업계가 추정하는 인수가격은 50억원 안팎으로, 설립한 지 3년이 안 된 스타트업으로서는 제값을 받았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비브랩스·퍼치 등 해외 스타트업 인수에는 나선 적이 있지만, 국내 스타트업을 인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플런티는 지난해부터 삼성전자 무선사업부(IM)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크리에이티브 스퀘어 1기 멤버로 육성됐다. 이 과정에서 개발 인재들의 역량을 알아본 삼성전자가 이 회사의 인력과 기술·자산 등을 몽땅 인수하게 된 것이다. 황성재 플런티 공동 창업자는 "삼성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고려하면 스타트업 인수에 있어서 국내 대기업의 인식이 변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까지 대기업의 국내 스타트업 인수는 주로 네이버·카카오·SK플래닛 등 IT 기업이 주도했다. 미처 개발하지 못한 영역을 스타트업이 보유한 기술로 보강하는 식이다. 2015년 5월 카카오가 '김기사'로 유명했던 모바일 내비게이션 스타트업 록앤올을 인수해 '카카오내비'로 업그레이드한 것이 대표적이다. SK플래닛도 지난해 12월 쇼핑몰 '11번가'의 신선식품 코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친환경 식자재 온라인몰 헬로네이처를 인수했고, 올해 3월에는 네이버랩스도 가상·증강현실 지리정보 스타트업 에피폴라를 인수해 모바일 지도 제작 기술을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가 단지 사업 확장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재 채용 방식으로도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덜 중요해지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대규모 공채 형식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필요한 고급 인력을 스타트업 인수를 통해 얻는 방식이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다. 김수호 맥킨지코리아 파트너는 "디지털 혁신으로 R&D를 포함한 기업 업무를 외부에서도 수혈할 수 있게 됐다"며 "스타트업 인재의 왕래는 기존 산업 전반으로 혁신을 확산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물론 현재 국내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이 M&A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비중은 3.1%(2016년)에 불과하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 비중이 각각 86%, 59%에 달한다. 판교에서 스타트업 플랫폼을 운영하는 박진석 판교에가면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들은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M&A 하지 않는 점을 불만 1순위로 꼽는다"고 말했다.
 
대기업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스타트업 M&A를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나 '골목상권 침해' 이슈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부담이다. 또 국내 스타트업들이 대부분 내수 시장을 겨냥해 사업을 하다 보니,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는 대기업들이 국내 스타트업을 인수해야 할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점도 있다.
 
박용순 중소벤처기업부 벤처투자과장은 "대기업이 M&A에 나서면 대외적으로는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조직 내부에서도 M&A 이후 성과를 따져 책임을 묻기 때문에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으려는 '보신주의'가 작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공정거래법상의 규제도 대기업의 스타트업 M&A를 막는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벤처캐피털을 설립해 스타트업을 인수하더라도 대기업의 계열사로 편입되기 때문에 계열사 부당 지원, 일감 몰아주기 등의 규제를 받게 된다. 또 대기업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 지분 전량을 반드시 보유해야 경영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규제도 대기업 계열사들의 스타트업 인수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초대 벤처기업협회장을 지낸 이민화 KAIST 교수는 "대기업의 스타트업 M&A를 막는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 스타트업 활성화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사회도 대기업의 M&A 활동을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긍정적 측면에서 봐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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