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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경제는 세계 10위권, 대학은 100위에 못 들어"

중앙일보 2017.11.28 15:23
 “인수위가 없어서 그럴까. 현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100대 과제를 발표할 때 ‘학술’ ‘학문’이란 단어는 아예 없었다. 현안을 다루니 그렇다고 하지만, 그 현안의 토양이 되는 게 바로 학술과 학문이다.”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한류가 글로벌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우리의 문화로 내용이 채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한류가 글로벌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우리의 문화로 내용이 채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가진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 안병욱(69) 원장은 “100대 과제면 웬만한 건 다 들어갈 수 있다. 거기서 빠져 있으니 앞으로도 학술 정책을 국가적 주요 과제로 새삼 삼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현대사를 전공한 진보성향의 안 신임원장은 가톨릭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다. 한국역사연구회장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에게 한국학과 한국문화가 왜 중요한지 물었다.  
 
“한국의 수출입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다. 스포츠도 10위권이다. 그런데 대학을 보라. 세계 100위권 안에도 못 든다. 심지어 한국학을 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유학을 갈 정도다. 질적인 측면에서 학문의 볼륨이 그만큼 취약하다. 다른 지표에 비해 많이 떨어져 있다.”
 
-한국학의 질적인 볼륨이 왜 중요한가.
 
“조선의 임금은 모두 스물여덟 분이다. 지금도 그렇고, 당대의 지식인들도 그랬다. 높이 평가받는 두 임금을 꼽으라면 세종과 정조다. 세종은 집현전을 세웠고, 정조는 규장각을 세웠다. 두 임금은 영토를 확장한 것도 아니고, 복지정책을 크게 늘린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다른 모든 임금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학문정책과 문화정책이었다.”
 
-왜 학문과 문화가 중요한가.
 
“요즘은 한국의 대중문화가 해외에서 꽂을 피우고 있다. 그런데 한류가 영국의 문화, 독일의 학술만큼 글로벌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지속해서 성장하려면 우리의 문화로 내용을 채워야 한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미 그런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게 뭔가.
 
“세계에는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불교를 중심으로 한 인도의 인더스ㆍ갠지스 문명, 유교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황하 문명, 서양의 기독교 문명 등이 있다. 이 모든 문명을 축적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고대 원시사회의 샤머니즘도 있고, 불교 문화를 수용해 1000년간 꽃 피웠고, 유교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정통 이데올로기 지배를 받았다. 기독교 문명도 다른 나라에 전파할 정도다. 그만큼 우리는 세계 문명에 대한 이해도를 체득하고 있다. 그게 우리의 DNA(유전자) 속에 흐른다. 한국인의 몸속에 인류의 모든 문명적 요소가 있다. 그게 우리의 자원이다.”
 
안 원장은 한국이 위대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가진 자원을 학문적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다양한 창구로 써먹을 수가 있다. 그게 한중연이 해야 할 과제다.”
 
-한중연이 ‘국정교과서 논란’ 등 정치적 현안을 쫓아다니며, 애초의 설립 목적을 소홀히 한 측면도 있지 않나.
 
“그동안 정치적 필요에 의해 동원된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국정 교과서 ’문제는 와서 보니 좀 달랐다. 한중연 차원의 대응이 아니라 연구자 개인 차원의 대응이었다. 한중연은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
 
-인류의 여러 문명이 한국인의 몸속에 녹아 있다고 했다. 그건 소통과 화합의 가능성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진영 중심의 대립과 갈등이 여전하지 않나.  
 
“어느 사회나 기본적으로 대립과 갈등이 있다. 전통시대에도 그랬다. 어찌 보면 진영 중심의 대립과 갈등을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문제시하고 있지 않나 싶다. 서로 다른 건 좋은 일이다. 다만 그 차이를 수렴하고 해소하는 과정의 지혜는 필요하다.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이란 큰 굴곡을 지나온 걸 고려하면 대립과 갈등이 이 정도라는 게 오히려 대견하게 보인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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