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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법관 후보 '서오남' 공식 깨고 '비행정처' 법관 발탁

중앙일보 2017.11.28 13:59
내년 1월에 퇴임하는 김용덕(60)·박보영(56) 대법관 후임에 안철상(60) 대전지법원장과 민유숙(52)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지명됐다.
 

비서울대 안철상 대전지법원장
여성 민유숙 서울고법 부장 지명
법관 생활 대부분 재판 현장에서

대법원은 28일 김명수(58) 대법원장이 안 법원장과 민 고법 부장을 대법관 후보로 제청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법관 제청은 김 대법원장 취임 후 첫 제청권 행사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들여 두 후보자에 대해 국회에 임명 동의를 요청하면, 국회는 인사청문회를 거쳐 표결로 임명 여부를 결정한다.
 
이번 인선은 '서오남' 공식에서 벗어났다. 지금까지 대법관 구성이 대부분 '서울대를 졸업한 50대 남성'으로 채워진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때에는 대법관 14명(양 전 대법원장 포함) 중 서울대 출신 남성이 9명이었다.

대법관에 제청된 안철상 대전지법원장(좌)과 민유숙 서울고법 부장판사(우) [사진=대법원 제공]

대법관에 제청된 안철상 대전지법원장(좌)과 민유숙 서울고법 부장판사(우) [사진=대법원 제공]

안 후보자는 건국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연수원 15기로 김 대법원장과 동기다. 민 후보자는 서울대 출신이지만 여성이다. 현재 여성 대법관은 3명이다.

 
대법관 '승진 코스'로 여겨졌던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없는 법관을 발탁한 것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 법원행정처는 이른바 '엘리트 법관'이 거쳤던 곳으로 법관의 관료화와 수직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의 권한과 규모 축소를 사법개혁의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이번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심사 과정에는 김 대법원장의 의중이 반영되지 않았다. 김 대법원장은 과거 대법원장들이 대법원 규칙에 명시된 '의견제시권'을 이용해 심사 대상자를 사전에 통보하는 관례를 깼다. 대법관후보추천위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안 후보자는 추천위가 심사한 후보들 중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번까지 포함해 세 차례 대법관 후보로 올랐던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출신의 김선수(56·연수원 17기) 변호사는 최종 제청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안 후보자는 1986년 마산지법 진주지원 판사로 시작해 31년의 법관 생활 중 24년을 일선 재판 현장에서 근무했다. 재판 현장을 떠났던 건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대법원장의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7년뿐이다. 민 후보자도 미국 조지타운대 교육파견과 대법원 재판연구관 생활을 제외하고 1989년부터 법관생활 대부분을 재판 현장에 있었다.
 
두 후보자는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중도로 꼽힌다. 다만 안 후보자의 경우 2009년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의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던 점에서 개혁적 성향이 점쳐지기도 한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두 후보자 모두 행정업무보다 재판 실무 경험이 많다는 점에서 김 대법원장이 지향하는 '좋은 재판' 실현과 어느 정도 코드가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도 대법원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31년간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 없이 재판 현장에서 일했다.
 
안 후보자는 행정법과 민사집행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행정소송의 이론과 실무』 집필에 참여했고, 법관들의 학술단체인 행정판례연구회 부회장을 지냈다. 그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판결을 여러 번 했다.
 
서울행정법원 재판장으로 근무하던 2007년에는 암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군인을 강제 전역 조치한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유방암 수술을 받고 강제 전역당한 피우진 현 국가보훈처장의 소송에 영향을 줬다.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피 처장은 2008년 퇴역 처분을 취소하라는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2011년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으로 있을 때 여성가족부가 가요의 노랫말에 '술'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한 사건에 대해 유해매체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해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품행 미단정'을 이유로 귀화 불허 처분을 받은 중국동포의 귀화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미얀마 출신 민주화 운동가를 난민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민 후보자는 5년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일하며 실무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 대법원장이 참여했던 법원실무제요 민사 및 가사편의 발간위원으로도 참여했다. 2013년에는 서울고법의 유일한 여성 재판장으로 성폭력전담재판부를 이끌었다.
 
지난 9월 서울고법 민사29부 재판장을 맡은 민 후보자는 2011년 여름 폭우로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 때 차를 타고 지나가다 흙더미에 매몰된 피해자에게 국가와 관할 지방자치단체(서초구청)가 4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했다. 1심 법원은 피해자가 서초구 거주자가 아니므로 지자체 책임이 없다는 서초구청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패소로 판결했지만 민 부장은 이를 뒤집어 지자체와 국가의 국민 보호 의무를 명확히 했다.
 
2010년에는 '세계여성법관회의 아시아·태평양 지역회의' 이사를 맡았고, 2012년부터는 대법원 산하 젠더법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여성·아동·장애인 등 소수자의 법적 권리 보호에 관심을 기울였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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