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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간 아내에 “국 좀 끓여 두라니까”…추석 안방극장 성차별 사례 보니

중앙일보 2017.11.28 12:00
추석 연휴 방영된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에서 여행을 떠난 아내의 가사 책임을 지적하는 가부장적 남성을 보여주는 내용이 나왔다. [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추석 연휴 방영된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에서 여행을 떠난 아내의 가사 책임을 지적하는 가부장적 남성을 보여주는 내용이 나왔다. [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남성 중견배우가 부엌에서 냉장고를 열며 “콩나물국 좀 끓여놓으라고 했더니, 고것도 하기 싫어서…”라고 투덜댄다. 동남아 여행을 떠난 아내에게 하는 혼잣말이다. “국내에도 좋은 데가 얼마나 많은데”, “동남아는 무슨 동남아” 등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방영된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전업주부의 가사 책임을 지적하는 가부장적 남성의 모습을 보여줬다.
 

추석 연휴 예능 양성평등 모니터링 결과
성차별 사례가 성평등의 3배 이상
성역할 고정관념, 외모지상주의 조장
남성 MC 여성의 3배…성별 쏠림현상
'맥가이버' 여성상은 성평등 사례
양평원 "방통위 심의개선 요청할 것"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추석 연휴 11일간(9월 29일~10월 9일) 전파를 탄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23개(총 64편)의 성차별성을 모니터링한 결과를 28일 공개했다. ‘2017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 YWCA와 함께 진행했다.
 
양평원 모니터링 결과, 성역할 고정관념과 외모지상주의를 드러내는 등 성차별적인 사례가 성평등한 내용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출연자의 성비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전체적으로 여성보다 남성 출연자가 많았고, 주 진행자 비율은 남성이 74.3%로 여성(25.7%)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보조 진행자(55.2%)와 초대손님(57.3%)도 절반 이상이 남성이었다. 양평원은 ”예능 프로그램의 남성 쏠림 현상이 드라마에 비해 심했다“고 분석했다.
 
방송에 나타난 성차별적 내용은 총 18건이었다. 성평등적인 내용(5건)의 3배 이상이었다. 이 중 성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내용이 절반 이상으로 나타났다.
 
싱어송라이터의 음원차트 생존기를 다룬 지상파 추석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 주인공인 싱어송라이터 3명이 모두 남성, 그 외 대다수의 출연자가 남성이다. [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싱어송라이터의 음원차트 생존기를 다룬 지상파 추석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 주인공인 싱어송라이터 3명이 모두 남성, 그 외 대다수의 출연자가 남성이다. [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원차트 생존기를 다룬 지상파 A프로그램은 3명의 출연자가 모두 남성이었다. 양평원은 “작곡과 노래를 동시에 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마치 남성만의 영역인 것 처럼 연출되어 잘못된 성역할 고정관념을 갖게 했다”고 지적했다.
직장인의 퇴사를 주제로 한 삽화에서 출근을 부담스러워 하는 직장인이 여성으로 묘사됐다. [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직장인의 퇴사를 주제로 한 삽화에서 출근을 부담스러워 하는 직장인이 여성으로 묘사됐다. [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는 남성으로, 피해자는 여성으로 그려졌다. [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는 남성으로, 피해자는 여성으로 그려졌다. [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케이블 채널의 B프로그램은 출근을 부담스러워하고 책임감이 없는 듯한 직장인을 여성으로 묘사한 삽화를 내보냈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각각 남성·여성으로 표현했다. 양평원은 “잘못된 직장 내 성별 고정관념을 야기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종편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반 여성 출연자를 외모에 초점을 맞춰 소개하고 있다. [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종편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반 여성 출연자를 외모에 초점을 맞춰 소개하고 있다. [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여성 연예인들이 발레를 배우며 소통하는 C프로그램에서는 4명의 출연자가 모두 날씬한 체형의 인물로 구성됐다. 종편의 D프로그램은 일반인 여성 출연자를 소개하며 ‘캠퍼스의 여신’, ‘매일 하는 상·하체 운동’ 등의 자막을 내보냈다. 모두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았다.
 
여성 연예인이 능숙하게 기계를 수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성평등 사례. [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여성 연예인이 능숙하게 기계를 수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성평등 사례. [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반면 지상파의 E프로그램은 중년 여배우를 ‘맥가이버’라고 소개하며 능숙하게 기계를 고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여성도 기계 수리 등의 일을 타인의 도움없이 혼자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성 평등 사례로 꼽혔다.
 
또 다른 종편 F프로그램에서는 ’명절풍경‘을 주제로 양가 부모님 댁을 방문하는 순서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명절 당일 시댁에 가고 다음날 친정을 간다는 여성의 의견과 당일 아침 처가에 가고 오후에 본가에 간다는 남성의 의견이 함께 나왔다. 가부장제의 고정관념을 깨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양평원은 이번 모니터링에서 찾은 성차별 사례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개선 요청을 추진할 예정이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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