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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108년 전 아픈 역사 딛고 모습 되찾은 대온실 독도 자생식물까지 품었죠

중앙일보 2017.11.28 10:53
새하얀 대온실 앞에 르네상스식 분수와 미로식 정원이 함께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랑한다.

새하얀 대온실 앞에 르네상스식 분수와 미로식 정원이 함께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랑한다.

대온실 측면 사진. 중앙에 출입구로 보이는 곳은 전실이라고 하며 과거에는 보일러실이었다. 전실은 대온실 양옆에 있으며 보수를 거쳐 현재는 출입구로 사용한다.

대온실 측면 사진. 중앙에 출입구로 보이는 곳은 전실이라고 하며 과거에는 보일러실이었다. 전실은 대온실 양옆에 있으며 보수를 거쳐 현재는 출입구로 사용한다.

고즈넉한 창경궁 후원을 따라 걷다 보면 하얗게 빛나는 건물이 나타납니다. 바로 창경궁 대온실입니다. 1909년에 건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죠. 화강석으로 만든 기단(집터를 잡고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단. 집터보다 한 층 높게 쌓는다)에 철골과 목조로 구조를 짜고 유리로 창을 냈죠. 대온실 앞에 있는 르네상스식 분수와 정원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합니다. 2층 구조로 된 온실 안은 파릇한 식물과 쏟아지는 햇볕으로 가득하죠. 아름다운 외관과 달리 이곳엔 아픈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1907년 순종 즉위 후 일제는 순종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창경궁을 헐어 식물원과 동물원을 지었죠. 일본은 이를 위해 방방곡곡에서 희귀 식물을 채취해 전시했습니다. 이후 1983년, 창경궁 복원 사업으로 동물원·식물원이 서울대공원으로 옮겨갑니다. 그러나 대온실은 대한제국 말기 서양 건축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산으로 인정받아 현재까지 보존됐고, 2004년엔 등록문화재가 됐죠. 지난 11월 10일, 창경궁 대온실이 1년 3개월간의 보수공사를 끝내고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대온실 바닥은 복원 과정에서 발견한 1909년 당시 타일 조각을 토대로 복원한 타일로 꾸몄다.

대온실 바닥은 복원 과정에서 발견한 1909년 당시 타일 조각을 토대로 복원한 타일로 꾸몄다.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를 담당한 문화재청 김선종 주무관은 “건물이 본래 가진 순백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고 개관 당시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에 초점을 집중했다”고 밝혔습니다. 부식된 목재와 창호를 교체하고 페인트칠도 모두 새로 했죠. 사무실로 사용하던 관리실도 단열재와 설비를 제거·복원하며 “보수 후 소규모 전시실 등으로 개방할 예정”이라고 전했죠. 이번 보수에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은 바닥이라고 합니다. 건립 당시 영국제 타일로 마감했던 바닥이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치며 시멘트로 뒤덮였고, 80년대 이후엔 다른 종류의 타일로 바뀌었죠. 보수를 위해 조사하던 중, 땅속에 묻힌 최초 타일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타일 뒷면에서 제조사의 이름을 찾아 영국 타일 제조사의 1900년대 상품 책자를 토대로 타일을 복원할 수 있었어요. 대온실의 식물을 관리하는 박순정 주무관은 “복원 과정에서 타일을 발견한 건 행운이었죠”라고 당시를 회상합니다. 실제로 대온실에 들어가자 말끔하게 깔린 타일이 가장 먼저 시선을 끕니다. 질서정연한 다이아몬드 무늬와 은은한 색이 조화를 이뤄 황실의 온실다운 우아함이 보입니다. 1909년으로 타임머신을 탄 것 같네요.  
 
박 주무관은 이곳에 방문하는 청소년이 근대 건축의 특징을 꼼꼼히 보았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서양식 온실이니만큼 건축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볼거리가 많습니다. 나무 덩굴이 꼬인 모양을 형상화한 트러스(여러 개의 뼈대를 삼각형으로 엮은 구조물)를 보면 여러모로 신경 써서 굉장히 아름답게 지은 건물이라는 걸 알 수 있죠.” 주 출입구 옆 기단에서는 단기4242년(1909년) 건축했다는 머릿돌을 볼 수 있고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가 새겨진 문과 지붕마루 장식도 있습니다. 채광과 환기를 위해 지붕 아래에 만든 창문인 클리어 스토리, 혁신적인 구조의 창호 등 당시의 건축 기술을 볼 수 있죠.
 
유자나무·동백나무 등 온대식물이 자라고 있는 네이브.

유자나무·동백나무 등 온대식물이 자라고 있는 네이브.

네이브 중앙의 작은 연못에서 파피루스를 비롯한 수생식물을 볼 수 있다.

네이브 중앙의 작은 연못에서 파피루스를 비롯한 수생식물을 볼 수 있다.

가는잎족제비고사리·설설고사리·뿔고사리 등을 볼 수 있는 양치류 전시장.

가는잎족제비고사리·설설고사리·뿔고사리 등을 볼 수 있는 양치류 전시장.

남쪽 창가에는 화려한 모습의 식충식물이 자리하고 있다.

남쪽 창가에는 화려한 모습의 식충식물이 자리하고 있다.

겨울에도 푸른색을 자랑하는 분재를 전시해 풍부한 볼거리를 갖췄다.

겨울에도 푸른색을 자랑하는 분재를 전시해 풍부한 볼거리를 갖췄다.

그렇다면 대온실 안은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요. 대온실은 복도 공간인 아일(Aisle)과 채광을 위한 클리어 스토리가 설치된 중앙 공간인 네이브(Nave)로 나뉩니다. 볕이 잘 드는 네이브엔 온대식물을, 아일에는 기획 전시와 분재, 천연기념물 등 한국의 식물 위주로 꾸렸습니다. 우리 식물 중 각 계절에 어울리는 식물을 골라 전시한다고 해요. 왁살고사리·단풍고사리삼·뿔고사리·탐라별고사리·보스톤줄고사리 등 이름도 낯선 다양한 고사리부터 이끼·식충식물까지 평소 보기 힘든 식물을 볼 수 있죠. 박순정 주무관은 “한화호텔&리조트의 지원으로 식충식물·양치류 등 평소 접하기 힘든 식물을 관찰할 수 있도록 풍부한 볼거리를 채웠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기 코너는 단연 식충식물입니다. 남쪽 창가에 늘어선 끈끈이주걱·사라세니아 그린필라 등 식충식물은 화려한 색상과 모양으로 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죠.
 
꽝꽝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인 전북 부안 중계리 꽝꽝나무 군락의 후계목.

꽝꽝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인 전북 부안 중계리 꽝꽝나무 군락의 후계목.

식물 전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선 우리 식물의 종 보존을 위한 노력도 하고 있죠. 천연기념물의 후계목이 그 주인공입니다. 후계목은 문화재청 전통수목양묘사업소에서 종 보존을 위해 천연기념물 모수(엄마 나무)에서 유전자를 채취해 기른 나무예요. 잎이 두꺼워 불에 태우면 꽝꽝하고 큰 소리가 난다는 꽝꽝나무부터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미선나무, 우리나라 궁궐 나무 중 가장 오래된 창덕궁 향나무까지 7종의 후계목을 볼 수 있습니다. 화분에 심긴 자그마한 아기 나무가 쑥쑥 자라 군락을 이루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독도 자생식물 술패랭이. 꽃이 만개하면 바람을 타고 향이 멀리 퍼진다.

독도 자생식물 술패랭이. 꽃이 만개하면 바람을 타고 향이 멀리 퍼진다.

우리 식물 보존을 위한 노력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문화재청 직원들은 독도 땅채송화·독도 왕해국·섬댕강나무 등 울릉도·독도의 자생식물을 직접 길러냈어요. 박 주무관은 전국을 돌며 식물을 채취하러 다닌 이야기를 전해줬어요. 2000년에 채취한 동백 화분을 가리키며 네이브의 동백나무와 달리 화분에서 길러 크게 자라지 못했다며 아쉬워하기도 했죠. 우리 고유종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 식물의 종 보존, 역사와 건축사적 의미 등 창경궁 대온실을 찾을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겨울의 초입에도 불구하고 계절을 잊을 만큼 화려한 색의 식물이 관람객을 반긴다는 점입니다. 환한 빛이 드는 네이브엔 울창한 숲이 펼쳐지고, 샛노란 열매를 함부로 따지 못하도록 가시가 돋은 유자나무부터 잎이 반질반질한 하귤나무, 새빨간 백량금 등을 볼 수 있죠. 분홍빛 꽃이 아름다운 동백나무 아래에선 너나 할 것 없이 사진 찍기에 바쁩니다. 또 온실 내 작은 연못에서 자라는 파피루스를 보고 이걸로 어떻게 종이를 만들 수 있냐며 호들갑을 떨기도 하죠.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소철도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창경원 시절부터 있던 소철인데 1984년 창경궁 복원 사업을 하며 쫓겨났죠. 길게 쭉 뻗어 자라는 식물이 이사를 하며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이리저리 휜 채로 2015년에야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32년이나 걸려 집으로 돌아온 셈이죠.
 
대온실에 전시한 식물은 각 계절에 맞춰 바꿀 예정이라고 합니다. 봄에 방문한다면 한 아름 꽃이 피어있겠죠. 여름엔 수상식물 전시도 예정돼 있습니다. 궁을 거닐며 황실의 이야기와 궁 구석구석에 숨은 우리 식물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글·사진=양리혜 기자 yang.rihye@joongang.co.kr
도움말=김선종·박순정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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