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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트럼프의 질문, 김정은의 대답’

중앙일보 2017.11.28 01:49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을 수행했던 백악관 관계자가 전한 비화.
 

트럼프, 시진핑에 “지금도 혈맹 맞나?”
‘중국 한계’를 안 미국의 다음 수순은?

지난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트럼프는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돌연 두 개의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하나는 “중국과 북한은 오랜 혈맹 관계라 들었다. 그 유래를 들려다오. 그리고 지금도 그런지 말해줄 수 있겠나?” 또 하나는 “김정일과 김정은은 다른가? 다르다면 뭐가 다른가?” 시 주석의 답변 내용에 대해선 백악관 관계자는 말을 아꼈다.
 
과연 트럼프는 이런 ‘기초적’ 질문을 왜 시 주석에게 던진 것일까. 두 개의 엇갈린 분석이 나온다.
 
첫째, 단순하게 평소 궁금하던 걸 확인하고 싶어했다는 것. 실제 트럼프는 이틀 전 방한 중에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통일을 꼭 해야 하는 거냐?”란 돌발질문을 던졌다.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트럼프의 성격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이유만은 아니란 분석도 있다. 중국의 압박이 북한에 과연 ‘약발’이 먹힐지 여부, 나아가 시 주석이 정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최대한의 압박’을 가할 의사가 있는지를 시 주석의 즉석 답변에서 읽으려 했다는 것이다. 중국 등 국제사회를 통한 외교적 압박이라는 대북 전략을 유지할 것인지, ‘다른 결단’을 내려야 할지 판단의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트럼프는 시 주석과의 만남에서 절반의 믿음을, 그 후의 현실에서 절반의 불신을 갖게 됐다”는 표현을 썼다.
 
무슨 말일까. 먼저 ‘절반의 믿음’. 시 주석은 지난달 24일 당 대회가 끝난 뒤 특사 파견 계획을 짰다. 대상국은 북한·베트남·라오스 3개국. 2007, 2012년 때도 특사가 3개국을 쭉 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3일에 걸쳐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에게 베트남·라오스만 돌게 했다. 북한에는 ‘일단 연기’를 통보했다.
 
세 가지 의미였다. 첫째는 “트럼프 방중(8일) 때까지 도발하면 특사 취소!”란 대북한 메시지. 둘째는 미·중 회담 후 특사파견이란 모양새를 통해 미·중 일체감을 노렸다. 마지막은 트럼프에 대한 ‘선물’. “미·중 정상회담의 성과로 북한에 특사를 보내게 됐다”는 자랑을 할 수 있게 배려했다. 나름 머리를 쓴 것이다. 이를 전해 들은 트럼프는 “역시 시 주석은 믿을 만하다”며 흡족했다 한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자국에 올 특사를 미·중 밀월의 ‘재료’로 만든 데 분노한 김정은은 특사 면담을 거부했다. 김정일 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시 주석이 보낸 선물도 최용해가 대신 받게 했다. 중국 따위 신경 쓰지 않겠다는 역대 최강 메시지다.
 
결과적으로 트럼프가 던진 두 개의 질문, 즉 북·중 관계의 현 위치, 김정일·김정은의 차이에 대한 진짜 ‘정답’은 시 주석의 입이 아니라 김정은의 행동을 통해 나왔다.
 
정답을 받아든 미국의 첫 대응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이었다. 지난주부턴 미 국방부가 주한미군 가족들의 연말 휴가차 본국 귀국에 맞춰 ‘자발적 소개’를 권고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정식 ‘비전투원 소개 훈련(NEO)’은 아니기 때문에 위험을 고조시킨다는 비판도, 별도 예산 부담도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코리아 패싱’이 없을 거란 트럼프 한마디에 북핵 문제가 우리 의도대로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대로 가다 적당히 북·미 간에 타협할 것이라 생각하면 망상이다. 워싱턴의 북한 비핵화 의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모두가 쉬쉬하고 중국 눈치만 보고 있는 요즘, 진짜 눈치를 봐야 할 건 중국을 절반쯤 포기한 미국이다.
 
‘중국의 한계’를 깨달은 트럼프의 다음 수순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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