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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탈북과 탈남

중앙일보 2017.11.28 01:44 종합 35면 지면보기
송호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송호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유엔사가 공개한 귀순병사의 탈주 장면은 전율이었다. 판문각으로 뻗은 그 길을 어디서 시동을 걸었는지 모르는 둔중한 몸체의 지프가 내달렸다. 언뜻 봐도 시속 80㎞, 지체하는 기색은 없었다. 24세 젊은 청년이 감행하기에는 비장하고도 외로운 질주였다. 길은 한적했지만, 평생 받은 세뇌의 장벽과 탈주를 제압하는 무력이 가득 찬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청춘을 옥죄는 체제 ‘밖으로’ 나간다는 일념 하나였을 것이다. 순식간에 나타난 병사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허둥지둥 내닫는 병사의 뒤통수에 총알이 쏟아졌다. 체제 내부를 단속해야 하는 인민공화국 병사들 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저지도 도주도 필사적이었다. 그 필사의 국경선에 초겨울 이른 어둠이 내렸다.
 

‘탈북의 사선’을 넘은 젊은 병사를
‘탈남의 사선’ 넘어 살려낸 이국종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비극이지만
해피엔딩으로 가야만 할 드라마다

하루 수천 대 비행기가 수많은 영토를 가로지르는 세계화 시대에 국경이 곧 ‘죽음의 경계선’인 나라는 북한밖에 없다. 국경은 사선(死線)인 것이다. 국경 안에는 삶 같지 않은 삶이고, 국경 밖으로 나가는 담장은 생사의 갈림길이다. 탈북(脫北)은 사선을 넘는 행위, 신생(新生)을 향한 극단의 모험이다. 서울대에도 탈북학생이 더러 있다. 차마 탈북 과정을 묻지 못한다. 10년 전 탈북한 대학원생은 남포제련소가 느닷없이 폭파될 때 오래 묻어둔 생각을 결행하기로 했다. 남포제련소는 학습교사로 일한 그녀의 직장이었다. 무작정 압록강으로 가서 산 능선을 따라 걸었다고 했다. 경비초소는 촘촘했고, 강물은 넘실거렸다. 밤길 산중에서 승냥이도 만났다. 여울이 많은 두만강에 다다랐다. 회령 부근 여울목에서 보위부대에 발각됐는데 돈으로 무마했다. 사선을 돌파하는 데 석 달이 걸렸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은 줄잡아 3만여 명, 이들이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는지 남한인은 잘 모른다. 정착금 1500만원에 적응생활비 600만원이 고작이다. 일용, 임시직 건설노동자가 많다. 얼마 전 인기프로 ‘나는 자연인이다’에 탈북민이 출연했다. 먹고사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사실, 탈북의 목적지가 반드시 남한인 것은 아니다. 체제의 구속을 벗어나 자기 인생을 꾸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좋다는 게 탈북민의 일반적 심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밖에’ 나와 보면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결국 남한으로 발길을 돌린다.
 
송호근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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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이 맞습니까?” 의식을 회복한 병사의 불안한 첫마디로 미뤄 그의 최종 목적지는 남한임이 틀림없다. 만신창이가 된 몸, 사선을 넘는 비용은 엄청났지만 TV 연예프로를 보고 걸그룹 노래를 들으며 만끽할 삶의 냄새가 그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것이다. 치명상 환자를 치료하는 중증외상전문의 이국종 교수가 이번에도 생명의 조타수 역할을 했다. 피칠갑에 분변을 뒤집어쓰면서 집도한 끝에 병사의 의식이 돌아왔다. 몇 년 전, 중앙일보가 주관한 유민상을 수상한 그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린 공적을 높이 평가받은 결과였다. 이국종 교수는, 말하자면 영웅을 살려낸 또 다른 영웅이었다. 그런데 그의 고민은 정작 다른 곳에 있었다. ‘의료계와 사회 일각의 비방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시비를 걸었다. 27cm 기생충, 옥수수 알갱이, B형 간염을 소개한 치료 브리핑이 ‘북한 병사에 대한 인격테러’라고 공격했다. 어떤 익명의 의사는 ‘환자팔이 보여주기 쇼’라고도 했다. 이국종 교수는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 환자의 진정한 인격’이라고 단호하게 응수했지만, ‘듣보잡’ 의사가 뜨는 것이 배 아픈 ‘인정거부 문화’가 그를 괴롭혔다. 석해균 치료를 계기로 교통벌칙금의 20%를 중증외상센터에 지원하는 제도가 도입된 것도 논란거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국 14개 권역외상센터는 재정난과 인력난에 허덕인다. 응급실과는 달리 외상센터는 테러, 지진, 전쟁 대비 재난대응체계다.
 
이런 궁핍한 환경과 편견을 뚫고 중증외상치료의 중요성을 이만큼이라도 부각한 것은 아무래도 이국종 교수의 집념 덕분이다. 그는 24시간 대기한다. 한밤중이라도 비상호출이 발령되면 소방헬기를 타고 출동한다. 치명상 환자가 발생하는 곳은 예사롭지 않은 장소다. 캄캄한 새벽어둠을 뚫고 날아 만신창이가 된 환자와 생사의 경계를 넘나든다. 남한 사회에 팽배한 비방과 냉소의 공간이 정작 그에게는 사선(死線)이다. 이 사선을 넘어야 외상 환자의 꺼져가는 생명에 작은 불씨라도 되살린다. ‘그런 남한을 보러 탈북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매일 밤 편견과 냉소의 공간을 탈주한다. 성숙한 한국으로 귀환하기 위한 탈남(脫南)이다.
 
‘탈북의 사선’을 넘다 총탄에 쓰러진 젊은 병사를 ‘탈남의 사선’을 넘는 외상전문의가 살려냈다. 한국에서나 일어나는 비극, 해피엔딩으로 가고야 말 드라마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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