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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사설] 판문점과 JSA 귀순의 역사

중앙일보 2017.11.28 01:00 종합 30면 지면보기
판문점의 원래 땅 이름은 ‘널문리’다. 6·25전쟁 당시 휴전 회담 장소를 찾던 유엔 측은 작은 주막집이던 ‘널문리 가게’ 앞 콩밭에 천막을 치고 정전회담을 진행했다. 그때부터 ‘널문리가게’를 한자로 표기한 ‘판문점’이 이곳의 공식 지명으로 쓰였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판문점은 유엔과 북측의 ‘공동경비구역(JSA·Joint Security Area)’이 됐다. 76년 8월 이전까지는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남북 구획이 없어 남북의 인원이 자연스레 뒤섞였다. 하지만 ‘도끼만행사건’ 이후에는 높이 15㎝, 폭 50㎝의 콘크리트 군사분계선(MDL)이 생겼다.
 
JSA에서는 그동안 여러 번의 귀순이 이뤄졌다. 59년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평양지국 기자 이동준이 판문점을 통해 탈출했으며, 80년대에는 공산권 국가의 중립국 감독위원회 소속 인원이 잇따라 망명하기도 했다. 특히 84년에는 소련 관광객이 돌연 MDL을 넘어 남측 자유의 집으로 달려와 총격전이 벌어졌다. 98년에는 변용관 상위(우리 군의 중위와 대위 사이에 있는 북측 계급)가 남측으로 넘어 왔으며, 이번 JSA 총격사건 보도 과정에서 2007년 9월에도 북한군 병사의 귀순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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