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가 줄어야 산다"...제조업 닮아가는 유통업체들

중앙일보 2017.11.27 17:16
이마트가 수입한 샤또 뿌삐유. 개점 24주년 기념 와인이다. 프로덕트 엔지니어링을 통해 원가를 낮췄다. [사진 이마트]

이마트가 수입한 샤또 뿌삐유. 개점 24주년 기념 와인이다. 프로덕트 엔지니어링을 통해 원가를 낮췄다. [사진 이마트]

 유통업계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제조업이 써 온 원가 절감 기법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프로덕트 엔지니어링'(product engineering)이다. 원료에서 완성품 생산까지의 과정을 공정별로 추적·분석하고 원가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을 말한다.  
 

공정별로 원가 확인하는 '프로덕트 엔지니어링' 도입
컨테이너 맞춰 와인 수입하고 포장 디자인 자체 해결

지난 19일 이마트가 개점 24주년 기념으로 발표한 와인 샤또 뿌삐유는 프로덕트 엔지니어링이 도입된 대표 사례다. 샤또 뿌삐유는 2013년 빈티지로 프랑스 보르도 지역 내 생떼밀리옹 산지에서 수확한 포도를 한국인 입맛에 맞게 블렌딩한 와인이다. 포도 품종 비율은 멜롯 70%, 카베르네 프랑 20%, 카베르네 소비뇽 10%다.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와인과 비교해 멜롯 블렌딩을 늘린 게 특징이다. 멜롯은 화사한 맛이 특징이지만 두터운 맛이 없어 이를 보충해 줄 수 있는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 비율을 높였다.
 
와인 원가는 와이너리 선정에서 절반 이상이 좌우된다. 대규모 와이너리보단 중·소 규모 와이너리가 원가 절감에 유리하다. 신근중 이마트 주류팀장은 “와이너리 규모가 크면 유통 업체가 의무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재고 부담이 늘어나고 이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국내에서 전량 판매할 수 있는 와인량에 딱 맞춰 생산할 수 있는 중·소규모 와이너리와 계약해야 원가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샤또 뿌삐유를 생산한 비뇨블 장마리 까리유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서 5대째 이어지고 있는 중규모 와이너리다.
 
이마트가 들여온 샤또 뿌삐유는 2만4000병으로 컨테이너 두 대 분량에 꼭 맞췄다. 수입 와인의 경우 컨테이너 운송비가 원가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 과정에서 컨테이너 사이즈에 꼭 맞춰 상품을 발주해야 운송 원가를 줄일 수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국제 선편 운송료가 컨테이너 숫자에 따라 매겨지기 때문에 컨테이너 한 대 반 물량을 수입하는 것보다 컨테이너 2대 분량에 맞춰 물건을 수입하는 게 소비자에게 더 이득”이라고 말했다. 
 
와인 원가를 줄이는 방법은 또 있다. 와인병의 두께가 두꺼우면 그만큼 원가가 상승한다. 와인라벨도 원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샤또 뿌삐유는 병의 어깨가 두드러지는 헤비 보틀을 사용하지 않았다. 광택지가 아닌 일반적인 종이 재질을 와인 라벨에 썼다. 신근중 팀장은 “헤비 보틀과 광택지 등 외적인 부분에 공을 들인 와인을 수입하기도 했지만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그만큼 높진 않았다”며 "샤또 뿌삐유는 보르도 최고급 수준 와인에 뒤지지 않는 품질이지만 원가 절감 기법을 통해 동급 품질 와인의 절반 수준으로 값을 낮췄다”고 말했다.
이마트가 원두를 수입해 생산하는 에티오피아 원두 커피. [사진 이마트]

이마트가 원두를 수입해 생산하는 에티오피아 원두 커피. [사진 이마트]

 
이마트는 먹거리 수입에 프로덕트 엔지니어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커피 생두 수입도 대표적인 사례다. 이마트는 2012년부터 브라질과 콜롬비아 등에서 로스팅 하기 전인 커피 생두를 직접 수입하고 있다. 커피 완제품이 아닌 생두를 들여오는 건 로스팅 과정에서 원가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생두를 들여와 국내에서 로스팅한 후 원두 형태로 판매한다.ㅜ덕분에 콜롬비아산 원두는 이마트에서 1㎏에 1만5000원 수준에 팔리지만, 커피전문점에선 250g이 1만4000원에 팔린다. 가격 차이가 4배에 이른다. 
 
롯데마트는 자체상품(PB) 브랜드 온리 프라이스(only price)에 프로덕트 엔지니어링을 도입했다. 롯데마트가 지난 16일 출시한 와이퍼 블레이드가 대표적인 프로덕트 엔지니어링 상품이다. 온리 프라이스 와이퍼 블레이드는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일반적인 상품과 달리 블레이드 길이에 상관없이 8000원에 판매된다.

롯데마트가 지난 16일 선보인 와이퍼 블레이드. 프로덕트 엔지니어링을 도입해 원가를 낮췄고 소비자가를 8000원을 통일했다. [사진 롯데마트]

롯데마트가 지난 16일 선보인 와이퍼 블레이드. 프로덕트 엔지니어링을 도입해 원가를 낮췄고 소비자가를 8000원을 통일했다. [사진 롯데마트]

 
롯데마트는 상품 개발 과정에서 현대ㆍ기아차에 와이퍼를 납품하는 HST와 손잡았다. 롯데마트 이성현 MD(상품기획자)가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HST에서 와이퍼 제조과정을 역순으로 되짚으면서 원가 절감 방법을 찾았다. 이 MD는 “HST가 애프터 마켓에 진출해 실패한 경험이 있었는데 원인 중 하나가 과도한 제품 포장비와 창고 보관료였다”고 말했다. 롯데마트와 HST는 제품 포장을 플라스틱 1차 포장으로 단순화했다. 롯데마트 디자인팀에서 맡았다. 지난 10일 인천 남동공단 와이퍼 생산라인에서 만난 이재호 HST 대표는 “온리 프라이스 제품 출시를 준비하면서 제조와 유통사가 상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와이퍼 블레이드 출시 1주일 만에 3000여 개를 판매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일반적인 와이퍼 블레이드 판매량의 두 배”라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