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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성소수자 때문?…"사람을 보자"는 임보라 목사

중앙일보 2017.11.27 14:31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있을 때 성소수자 때문이라는 주술적인 해석이 납득 가능한지 의문이 들어요. 관동대지진이 조선인 탄압에 이용된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포항 시민들은 물론, 저를 초청한 학생들이 상처받을까봐 걱정됩니다." 서울 마포구 섬돌향린교회의 임보라(49) 목사가 26일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26일 예배 설교를 하는 임보라 목사. [사진 섬돌향린교회]

지난 26일 예배 설교를 하는 임보라 목사. [사진 섬돌향린교회]

한동대 인권법학회는 지난 23일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는 임보라 목사 초청 강연 행사를 열려고 했다. 그런데 지난 15일 오전 11시쯤 이 학회 소속 학생들이 학내 반발로 인한 강연 취소됐음을 임 목사에게 알렸다. 이날 오후 2시 29분쯤 규모 5.4의 포항 지진이 발생했다. 진앙 근처에 있던 한동대는 건물 외벽 손상 등의 피해를 입었다.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한동대 대나무숲 등 페이지에서는 "최근 동성애 찬성이니 뭐니해서 한동대에 큰 재앙이 발생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임보라씨를 초청한 한동대가 유독 큰 피해를 입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글도 있었다.  
[페이스북 캡쳐]

[페이스북 캡쳐]

"지금 여기 이렇게 살고 있는데, 존재를 부정 당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죠. 아직 사회적 벽이 높아요. 누군가는 그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해야하지 않을까요?" 임 목사가 말했다. 그는 2014∼2016년 서울광장 퀴어축제에 참석해 설교와 축도를 했다. 임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 등으로부터 이단성을 지적받았다. 이에 대해 그가 속한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총회는 "소수자를 위한 목회하는 분들의 어려움을 논쟁으로 비화시킨 이단성 시비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과거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성소수자 차별 반대 발언으로 임 목사는 다수의 항의 전화와 e메일을 받았다. 2010년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는 일부 교인들이 찾아와 임 목사의 몸에 손을 대고 "마귀야 물러가라"고 외쳤다. 최근 경주에서 열린 교단 총회에도 찾아와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했다.  
 
학창시절 보수적인 교회를 다니던 임 목사는 87년 한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그해 5월 5·18 비디오를 처음봤어요. 아직도 그 순간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6월항쟁을 겪고 신앙생활을 하며, 약자를 위한 신학을 공부해야겠다 싶었죠. 처음부터 성소수자 활동을 결심한 건 아니었어요."  
 
이후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해 95년 졸업 후 2003년 봄까지 캐나다 토론토의 한인교회에서 목회 일을 도왔다. 지난 8월, 캐나다 연합교회는 그가 이단성 논란에 섰을 때 "임 목사와 연대한다"는 지지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캐나다는 우리보다 먼저 성소수자와 혐오 문제를 겪었어요. 더 포용적인 사회가, 교회가 되기 위해선 뭘 해야하나 고민했죠. 1990년 전후로 성소수자들을 교회에서 포용하기로 결정했고, 교회 안에 연구모임을 만들었어요." 
임보라 목사. 지난 8월 캐나다 연합교회는 "임 목사와 연대한다"는 지지 서한을 보냈다. 여성국 기자

임보라 목사. 지난 8월 캐나다 연합교회는 "임 목사와 연대한다"는 지지 서한을 보냈다. 여성국 기자

임 목사는 2008년 "모든 기독교인들이 성소수자 혐오에 나서지 않는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시작했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50분에 시작하는 섬돌향린교회 예배에는 60명 정도가 참여한다. 교인들은 아기부터 팔순 노인까지 다양하다. "성소수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분들과 가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요." 임 목사가 설명했다.
 
임 목사는 오랜 기간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했지만 지인 중에는 최근에야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수많은 이들이 있어요.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부모님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차별과 혐오에 앞장서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혐오가 종교적으로 마땅히 해야하는 사명이라 여기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겐 사람을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성적 지향은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 중 일부일 뿐이에요. 이웃으로 봐줬으면 해요."
 
임 목사에게 사회적 비난과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인권 활동에 나서는 이유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예수는 당대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의 벗이었다는 게 성경의 이야기죠.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그 사회 비주류가 마주하는 고난과 고통, 호소에 귀 기울이고 함께 해야하지 않나요."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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