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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중앙일보 2017.11.27 04:00
독서. [서울=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독서. [서울=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골프나 해외여행 같은 비교적 돈이 드는 취미생활은 꿈도 못 꿀 처지고, 음악회나 미술전람회를 감상을 즐길 문화적 소양도 없다. 게다가 몸 움직이기 싫어하고, TV를 보면 욕이나 하품을 하기 일쑤고, 술자리 또한 즐기지 않는다. ‘가진 게 시간밖에 없다’고 자조 섞인 농담을 하는 신세니 시간 죽이는 데는 독서만 한 게 없다.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21)
아내에게 물었다 "내가 죽어줬으면 좋겠어?"
아내 왈 "몇번 쥐어 박고 싶은 적은 있었지"


 
7년 전 퇴직 후 대충 이런 생활을 했으니 이제는 가히 활자중독증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고 내세울 만한 수준은 아니다. 특별히 주제를 정해 읽는 것도 아니고, 꼬인 성격 탓인지 명저, 걸작, 베스트셀러는 오히려 피해 가는 편이니 말이다. 그저 틈만 나면 어디서든 닥치는 대로 읽을 따름이다.  
 

요즘 쉬엄쉬엄 읽은 책이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북폴리오)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인데 발칙한 제목에 끌려 손에 들었다. 처음엔 주목을 받으려 편집자가 장난을 쳤다 여겼는데 일본 책의 원제 역시 ‘남편이 죽었으면 싶은 아내들’이었다. 책은 넌픽션. 독박 육아, 독박 가사에 고통받은 나머지 남편이 죽기를 바라게 된 일본 아내들의 다양한 사례가 책의 대부분이다.
 
 
고바야시 미키,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박재영 옮김(북폴리오, 2017).

고바야시 미키,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박재영 옮김(북폴리오, 2017).

 
이혼하면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부담이 크므로 ‘그럴 바에야 죽었으면…’하거나 ‘늙고 병들면 보자’고 벼르는 아내들을 보자니 섬뜩했다. 읽는 내내 ‘혹시 해당하는 사항이 있으면 얼른 고쳐야지’하는 경건한 마음이긴 했는데 다행히 크게 미움받을 일엔 해당하지 않았다. (라고 일방적으로 생각한다) 아니, ‘집안일을 할 만큼 한다’는 남편들에 대해 ‘집안일에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고 평하는 아내들이 많다는 대목에선 솔직히 찔리긴 했다.
 
어쨌거나 눈길을 끈 것은 책 결론 부분에 실린 ‘살의를 불러일으키는 남편’이 되지 않기 위한 방법. 후쿠오카에 본부를 두고 있다는 전국 데이슈간파쿠(亭主關白)협회에서 제안한 것인데 이 협회는 우리말로는 전국경처가협회 정도가 된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사진 smartimages]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사진 smartimages]

 
이들은 남편들에게 ‘고마워(라고 망설이지 말고 말하자), 미안해(라고 두려워하지 말고 말하자), 사랑해(라고 부끄러워 말고 말하자)’란 사랑의 3원칙과, ‘이기려 하지 않는다, 이길 수 없다, 이기고 싶지 않다’는 ‘이기지 않는 3원칙’을 매일 준수하라고 조언한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아내에게 책 내용을 들려주며 슬쩍 물었다. “당신도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수?” 기대했던 대로 즉각 답이 돌아왔다. “나야 뭐 그럴 일이 있었어야지.” 입꼬리가 막 올라가려는 참에 이어진 한마디. “쥐어박고 싶은 일은 몇 번 있었지만….”  
 
따져보고 싶었지만 속으로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해’하고는 접었다. 왜? ‘이기려 하지 않는다, 이기고 싶지 않다’를 지키는 게 몸에 좋다니까.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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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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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필진

[김성희의 천일서화] 책생책사(冊生冊死). 책을 읽고 기자를 꿈꿨고, 출판팀장으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핵심은 ‘재미’였다. 공연히 무게 잡는 책은 싫기도 하고 읽어낼 깜냥도 못 되었으니.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책’ 이야기 또는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쓰려 한다.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듯한 아라비안나이트식 책 이야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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