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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YS라면 문재인에게 이런 조언 하지 않을까

중앙일보 2017.11.27 01:55 종합 32면 지면보기
이상렬 국제부장

이상렬 국제부장

김영삼(YS)은 역사적으로 저평가된 대통령이다. 그는 군부정권에 종지부를 찍고 문민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재임 말기 외환위기를 막지 못한 것이 그의 빛나는 업적들을 가렸다. 앞선 정권들이 미루기만 했던 금융실명제를 전격 도입한 이가 YS다. 우리 사회가 이 정도나마 투명해지고, 경제정의의 기틀을 잡은 것은 금융실명제 정착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YS 시절 노동·금융 개혁 좌초로 국가 신인도 추락
쏟아지는 노동 개혁 요구, 문 대통령 귀담아 들어야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YS 시절 외환위기를 막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그중 하나가 노동개혁이었다. YS 정부는 임기 4년차인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구성해 7개월 작업 끝에 노동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정리해고 도입, 상급단체 복수 노조 허용 등이 골자였다. 그러나 여당인 신한국당이 그해 12월 26일 새벽 6시 복수노조를 3년 유예한 개정안을 날치기 처리하면서 일이 꼬였다. 노동계는 격하게 반발했고, 정국 혼란 속에 이듬해 3월 ‘복수노조 허용 및 정리해고 2년 유예’를 담은 노동법 재개정이 이뤄졌다.
 
공교롭게도 YS의 후임인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외환위기 속에 미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 정리해고제 수용을 약속해야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이듬해인 98년 2월 재도입한 정리해고의 조건은 당초 개정안보다 근로자에게 불리해졌다. 애초부터 정치권이 협력하고, 노사가 힘을 모았으면 국민 고통도 덜했을 것이고, 국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모멘텀이 됐을 것이다.
 
금융개혁도 마찬가지다. YS는 집권 마지막 해인 97년 연초부터 금융개혁을 선언하고 드라이브를 걸었다. 한보철강 부도는 금융의 후진성을 낱낱이 드러냈다. 새로 기용된 강경식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도 금융개혁에 집중했다. 강경식-김인호 두 사람에 대해선 구원투수를 써야 할 9월 말에 선발투수를 마운드에 올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개혁적 인선이었다. 그러나 금융개혁법은 IMF 구제금융 신청 전까지 끝내 처리되지 못했고, 국제신인도 하락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노동개혁과 금융개혁, 그중 하나라도 제때 올바로 처리됐더라면 대한민국의 국운도, YS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최근 IMF 협의단이 우리 정부와 연례협의를 마치고 발표문을 내놨다. 듣기 싫은 얘기를 내놓고 하지 않는 IMF답게 문구는 부드러웠지만 메시지는 더할 나위 없이 선명했다. “경제가 괜찮을 때 구조개혁을 적극 추진하라”는 것이고 “그중에서도 노동시장 개혁을 서두르라”는 것이다. IMF는 ‘유연 안전성(flexicurity)’ 도입을 주문했다. 노동시장이 유연하다는 것은 경영 사정에 따라 고용과 해고가 신축적임을 의미한다. 그러자면 실업자를 위한 안전망이 튼튼하게 구축돼 있어야 한다.
 
IMF 권고를 듣고 말고는 회원국 정부 마음이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노동개혁의 절박성을 지적한다. 최근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숨은 설계자’로 불리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IMF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사회안전망을 확충함과 동시에 정규직 과보호를 걷어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평생 승부사였던 YS는 회고록에 “모두가 개혁을 원했지만, 개혁은 혁명보다 어려운 일이었다”고 적었다. 개혁 중에서도 어려운 것이 노동개혁이다. 오죽하면 YS가 “노동법 개정은 헌법 개정보다 어렵다”고 했을까. 그러나 노동개혁을 외면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일 묘수는 없다. 기업의 생존 본능은 생산성이 높고 고용 환경이 유연한 곳을 찾아 움직인다. 문 대통령과 집권 동기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인기 없는 노동개혁에 기를 쓰고 매달리는 것도 ‘30년 프랑스 병’을 고치려는 몸부림이다.
 
“개혁에 때를 놓치면 꼭 위기가 옵니다.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바랍니다.”
 
아마 YS가 살아 있다면 후배 대통령 문재인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아닐까.
 
이상렬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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