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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FTA의 복병 ‘관세 3종 세트’ 바로잡아야

중앙일보 2017.11.27 01:51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업 입장에서는 아마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일 것이다. 고작 몇 %의 관세율을 낮추려고 몇 년 줄다리기 끝에 겨우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천신만고 끝에 철폐된 관세율이 하룻밤 새 5%, 10%, 심지어 50~60%가 된다. 기업은 망연자실, 정부는 난처하다. 우리 상품을 겨냥해 요즘 부쩍 늘어나는 주요 교역국의 반덤핑 관세, 상계 관세, 그리고 세이프가드 관세 이야기다.
 

반덤핑·상계관세·세이프가드는
수출기업 옥죄는 3종 압박 세트
정부는 한·미 FTA 재협상 때
추가 관세 부과의 부당성 따져야

수출기업에 추가 관세 부과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그러니 늘 좌불안석이다. 추가 관세 부과 3종 조치는 오랜 기간 우리 기업들을 괴롭혀 왔다. 워낙 자주 접하다 보니 지금도 세계무역기구(WTO)나 FTA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업체 사람들은 제일 먼저 반덤핑 관세를 떠올린다. 디지털 교역, 자율주행 자동차, 인공지능(AI) 같은 새로운 통상 이슈는 이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좋은 상품을 만들어 제값 받고 파는 데 골몰하는 게 우리 수출기업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들이 바로 우리 국제교역의 주춧돌이다. FTA 상대국들이 우리 주력 수출상품에 대해 3종 조치를 적극 발동하는 추세는 여러모로 우려스럽다. 자유 교역의 극대화를 기치로 삼은 FTA 체제에서 이러한 수입 규제 조치들은 점차 줄어들어야 하나 현실은 반대로 움직인다. 오히려 FTA 체결로 인해 당초 취지와 맞지 않게 추가 관세 부과의 국내적 효용성이 더욱 부각되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관세가 철폐됐으니 조금이라도 구실을 찾아 관세를 다시 올림으로써 자국 시장을 보호하고자 하는 심리적 기제가 발동한다. 그 결과 자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허투루 보면서 다른 나라 기업의 조그만 티끌은 어떻게라도 찾아 가차 없이 반덤핑 관세의 칼날을 들이댄다. ‘정부기관이 관여했다’는 애매한 이유로 상계 관세를 부과하고, 상품 품질이 좋아 자연스레 시장점유율이 올라가도 세이프가드 관세를 부과한다.
 
시론 11/27

시론 11/27

기업 입장에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수출이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늘어나면 늘어나는 대로 가시방석이다. 학수고대하던 관세율 0%가 이런저런 이유로 스멀스멀 다시 몇 %로 올라가면 FTA 효과는 수포가 된다. 비록 한시적이기는 하나 이들 조치는 FTA 혜택의 ‘킬 스위치(Kill Switch·제동장치)’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조사의 ‘된서리 효과(chilling effect)’다. 추가 관세 부과를 위한 조사가 두려우니 수출기업들이 처음부터 이윤을 적정한 선에서 유지하는 것이다. 더 팔 수 있는데 덜 팔고, 가격을 더 낮출 수 있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골치 아픈 일은 처음부터 피하는 것이다. 심지어 조사가 예견되거나 시작되면 아예 수출을 포기하거나 다른 국가로 수출처를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슈를 다루는 FTA에서 정작 이들 3종 조치에 대한 규범은 미미하다. 우리나라가 체결한 FTA뿐 아니라 다른 나라가 맺은 FTA도 사정은 비슷하다. 몇 가지 간단한 절차적 규정과 함께 WTO 협정 내용을 그대로 적용한다는 취지의 소략한 조항이 전부다. 행여나 나중에 국내적 필요로 수입 규제 조치를 발동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를 포기하거나 약화할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요 교역국들은 우리와 FTA 체결 과정에서 이런 무역장벽 수단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뜻을 자국민에게 천명하곤 한다.
 
물론 이들 조사의 근간을 이루는 WTO 협정이 바뀌지 않는 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우리 수출기업의 애환을 모른 체할 수 없다. 어떻게든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WTO 협정에 연동된 내용은 바꿀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들 조치의 절차적 측면에 대해 양자 간 FTA에서 나름의 의미 있는 개선을 도모할 여지가 있다.
 
가령 조사 개시와 진행 과정에서 양국 간 실질적 논의가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도입할 수 있다. 의례적 성격에 머무는 양국 간 협의체를 활성화해 현실적인 논의와 정보 공유를 가능토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중요한 내용은 반복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FTA 협정에 명시적으로 규정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아쉬운 대로 이런 방법으로라도 자의적인 조사와 관세 부과를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다고 본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과 한·미 FTA를 다시 논의하게 됐다. 아마 여러 쟁점이 나올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추가 관세 부과 문제를 다루는 것이 최우선 현안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측에 떠밀려 시작한 재논의이지만 이 기회에 이 문제를 한번 본격적으로 다루어 보자. 우리 협상 전문가들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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