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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석방=적폐 판사’로 모는 정치인의 선동

중앙일보 2017.11.27 01:41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관진 전 국방장관에 이어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이 지난 주말 구속적부심사에서 풀려나자 고질병이 다시 도졌다. 자신의 생각·이념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법적 판단을 비방하는 병리 현상은 이제 일상이 됐다. 두 사람의 석방을 결정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1부 신광렬 부장판사에 대한 신상털기·욕설·험담이 사이버 공간에서 범람한다. 일반인이야 감정에 휘둘려 그렇다 쳐도, 정치인의 한술 더 뜨는 선동은 심각한 병폐다. 법치와 사법 독립을 수호해야 할 정치인이 안정과 화합 대신 혼란과 갈등을 조장하는 데 앞장서니 말이 되는가.
 

자신 생각과 다른 결정은 일방 매도
자극적 언어로 국민 갈등·혼란 조장
대법원장, 사법부 모독에 대응해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행태는 도(度)를 한참 넘었다. ‘소수의 정치적 공세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며 정치공학으로 매도하고, ‘적폐 판사들이 다수의 판사들을 욕되게 한다’며 적폐 청산론을 주장하고, ‘사법제도에 국민참여 확대가 필요하다’는 불신론을 확산하는 등 인신공격성 비난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신 판사=적폐 판사=석방’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의도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정치인들의 선동에 호응이라도 하듯 사이버상에는 ‘적폐 부역자’ ‘사법부 양아치’ 같은 조롱 글들이 쏟아지고, 신 판사의 사진과 이력 등이 나돈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도 신 판사를 해임해야 한다는 청원 글이 무더기로 게재됐다. 그가 정유라 특혜 의혹의 이화여대 김경숙 학장, 옥시 보고서 조작 의혹의 서울대 교수에 대한 구속적부심을 기각한 것은 애써 외면한다.
 
정치권이 법원의 결정과 판단을 비방하고 대중을 자극하는 행태가 굳어지는 건 심히 우려스럽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판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가 ‘신상털이’를 당하고 ‘삼성 장학생 출신’이라는 유언비어에 시달렸다. 당시에도 여당 중진 의원은 “삼성이 돈 주고 법원을 주물렀다”고 허황한 비난을 퍼부었다. 지난 7월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석방한 황병헌 판사는 가짜뉴스에 시달려야 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과거 라면을 훔친 도둑에게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적이 있다’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 소셜 미디어 등에 퍼 날랐다. 이번에도 자신의 입맛대로 사법부를 길들이기라도 하겠다는 위협적 도발이 반복되고 있다.
 
구속이 무슨 대단한 정의 실현이라도 되는 듯 착각하는 시대는 지났다. 국민 감정에 휘둘려 검찰은 ‘포퓰리즘 수사’를 통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은 기계적으로 영장을 발부하는 잘못된 관행을 끊을 때가 됐다.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됐다고 무죄라는 뜻도 아니다. 불구속 수사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다 알 만한 정치인들이 이념을 잣대로 민심을 선동하고 사법부를 모욕하는 것을 언제까지 방관해야 하는가. 사법부와 판사의 권위가 능멸당하는데 김명수 대법원장도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다. 사법부 차원에서 정치인의 무책임한 행동에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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