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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빨간 색안경만 있는 게 아니다

중앙일보 2017.11.27 01:40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1960년대만 해도 기생충과 함께 살았다. 학교에서 구충제를 나눠주고, 어떤 기생충이 몇 마리 나왔는지 적어오게 했다. 그래도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친구는 없었다. 없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었다. 비료가 부족해 분변을 채소밭에 뿌리던 시절이니 당연한 결과다.
 

북한 이미지에 좋지 않은 정보는
보도하지 않아야 좋은 언론인가
왜곡된 보도로 속여도 안 되지만
미화하고 실상 숨기는 것도 죄악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실용적 태도라야 협력도 가능해

북한 병사 배 속에서 기생충이 많이 나와 충격을 줬다. 의사들은 이미 잘 아는 사실이다. 지난해 신희영 서울대 부총장과의 인터뷰(중앙일보 12월 24일자 14면)가 생각난다. 그는 “북한 사회는 의료 면에서는 60~70년간 외부 영향을 안 받아 갈라파고스 같은 보물섬”이라며 남북 공동 연구에 기대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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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린이어깨동무재단과 함께 북한에 병원 5개를 지었다. 거기에서 진료도 했다. 지금도 부총장보다 서울대 의대 통일의학센터 소장 일에 더 열심이다. 북한 의료 환경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북한 사람은 100% 기생충에 감염됐다”며 “남쪽의 의료지원단이 북한에서 나오면 중국 선양(瀋陽)에서 일제히 구충제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신 부총장은 “남북 질병의 ‘차이’가 어떤 게 좋고 나쁘고 한 게 아니라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질병으로서는 북한이 더 좋다고 했다. 남쪽 같은 알레르기가 없고, 치료가 어려운 바이러스도 별로 없다. 항생제가 잘 듣는다고 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이국종 교수가 기생충·분변·옥수수 이야기를 해 북한 병사의 인격을 테러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게 그 병사의 책임인가. 아니면 북한 정권의 책임인가. 김 의원은 “북한에서는 1년에 두 차례 주민에게 구충제를 보급하고 있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 민생사업이라는 증언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귀순 병사의 경우 구충제를 제때 복용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귀순 병사의 잘못이라는 건가.
 
김진국칼럼

김진국칼럼

김 의원이 걱정하는 게 병사의 인격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체면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 말이다. 더구나 그는 “북한 주민 90% 이상이 기생충에 감염됐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한 의사 출신 박인숙 바른정당 의원을 겨냥해 “북한을 기생충의 나라로 낙인찍었다”며 비난했다. 구충제 보급은 오히려 감염 실태가 심각하다는 반대증거일 수 있는 것 아닌가.
 
김 의원은 이 교수가 의료법을 위반했을 수 있다고 했다. 기생충 이야기는 빼고 환자 상태만 발표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생충 이야기만 아니라면 환자 상태를 공개해도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말인가. 전 국민이 촉각을 세운 치료를 일반 환자와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 교수는 기생충이 치료를 방해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김 의원은 이 교수가 아니라 정부와 언론을 비판한 것이라고 했다. 김 의원 말대로 환자 상태가 아니라 기생충 얘기만 문제라면 정부가 기생충 이야기를 포함하라고 강요했다는 말인가. 김 의원은 기생충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런 충격적인 발표가 있어도 북한을 ‘더러운 나라’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은 국민이 모르도록 막아야 좋은 언론인가. 왜 북한의 실상은 알리면 안 되나. 더 심각한 건 이 문제다.
 
80년대 초 대학생들 사이에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 벌어졌다. 권위주의 정부가 북한을 적대적으로 과장·왜곡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반공을 정권 연장의 수단으로 삼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 반작용이 너무 컸다. 북한의 대남 선전방송을 아무런 비판도 없이 그대로 믿고 전파한 것이다. ‘주체사상파’가 학생운동의 주류를 차지했다.
 
북한 정권을 빨간 도깨비로 가르치던 시절이 있었다. 전쟁의 비극이 남긴 상처다. 이렇게 북한을 왜곡하고, 음해해 대결로만 몰고 가는 것은 문제다. 하지만 그들의 선전을 그대로 믿고, 있는 사실마저 부정하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시리아 난민 어린이 쿠르디(3)의 시신은 충격이다. 너무나 비극적이라 그 사진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선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난민의 진상을 제대로 알려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국제적인 지원도 끌어낼 수 있다.
 
북한은 우리와 다르다. 병원균의 종류와 의료 실태가 모두 다르다. 신 부총장은 남쪽의 지독한 바이러스가 북한에 퍼지면 잉카제국 같은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할 정도다.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협력도 가능하다. 모욕이라고 생각하는 건 우월감이고 오만이다. 색안경에는 빨간색만 있는 게 아니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실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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