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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세입자·포항시, 지진으로 금 간 집 놓고 3각 갈등 왜?

중앙일보 2017.11.26 15:48
경북 포항시 장량동 한 필로티 구조 건물 1층 기둥이 뼈대만 드러내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포항시 장량동 한 필로티 구조 건물 1층 기둥이 뼈대만 드러내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발생한 규모 5.4지진으로 건물 기둥이 엿 가닥처럼 휜 경북 포항시 북구 장성동의 한 필로티 건물. 
집주인 A씨(45)에 따르면 최근 며칠간 건축회사 몇곳이 다녀갔다. A씨가 부른게 아니다. 포항시 측이 이 건물을 '재건 가능'으로 판단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이들은 최소 1억5000만원에서 최대 3억5000만원까지 부르며 "집을 고쳐주겠다"고 제안했다. A씨는 "현재로선 수리도 폐쇄도 불가능하다. 당장 전세금·보증금 빼줄 돈도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포항시, 아파트·원룸 '재건 가능' 판단에 집주인 반발
"집 전세금부터 빼달라"는 세입자와 집주인도 갈등
전문가들 "주거대책 정확한 기준, 설명 필요하다"지적

 
경북 포항시 장량동 한 필로티 구조 건물 앞에서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포항시 장량동 한 필로티 구조 건물 앞에서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진이 발생 열흘이 지난 포항에서는 금 간 집을 놓고 포항시와 집주인, 세입자 사이에 갈등이 싹트고 있다. 시에서는 "재건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세입자는 "그래도 무서우니 금 간 집에서 나가고 싶다. 전세금을 빼달라"고 집주인에게 요구한다.
이에 집주인은 "당장은 돈이 없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세입자에게 사정하고 있다. 집주인은 포항시 측에 "여기서 어떤 세입자가 계속 살겠다고 하겠느냐. 이 원룸에 사는 주민들을 이주대상으로 정해주고 건물주에겐 폐쇄금이나 수리금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3각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22일 오전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동빌라에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지진 피해 이재민들의 짐을 옮겨 싣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22일 오전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동빌라에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지진 피해 이재민들의 짐을 옮겨 싣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포항시는 지난 19일 이재민 주거안정 대책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집이 필요한 이재민을 500가구(1500명)로 추산했다. 이들 중 피해가 큰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3개 동 170가구,  대동빌라 4개 동 75가구, 필로티 공법으로 지은 7개 원룸 83가구 등 328가구 이재민을 LH(한국토지주택공사) 임대 주택 이주 대상으로 선정했다. 1차 육안조사 결과 더이상 거주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이에 따라 당초 필로티 건물을 포함한 원룸 7개 건물도 폐쇄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10개 팀, 36명으로 구성된 위험도 평가단이 파견된 2차 조사에서 1개 건물을 제외한 6개 원룸 건물이 '재건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원룸 주인들은 "LH 임대 주택 이주 첫날인 지난 22일에서야 이주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결국 이들은 지난 25일 포항 시청에 찾아갔다. 이주대상에서 제외되는 순간 수리 등 지원 금액을 거의 받을 수 없어서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자연재해대책법 등의 규정에 따르면 지진 등 자연재난으로 피해를 본 건물에 대해 전파 900만원, 반파 450만원, 소파(일부 파손) 100만원이 지원된다. 세입자는 이주대상이 아니므로 이사비만 지원받고 나가면 된다. 
원룸 주인들은 "이정도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를 이주대상에 포함해달라. 그러면 전세금 융자를 1억원까지 받을 수 있으니 이 대출금으로 세입자들에게 전세금 등을 주겠다"고 주장했지만, 포항시 측은 "아직 잘 모르겠다. 기준을 마련하는 중"이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지난 19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에서 주민들이 짐을 빼내 트럭에 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에서 주민들이 짐을 빼내 트럭에 싣고 있다. [연합뉴스]

원룸 외에 일부 맨션 거주 주민들도 집이 심하게 파손됐지만 '재건 가능' 판단이 나왔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포항시 북구 한미장관 맨션 주민들은 "집 내부가 다 부서졌는데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럼 고칠 때까지 몇 달을 대피소에서 살아야 하는 데 말이 되느냐"고 포항시 측에 항의했다. 포항시에서는 혹여 이주대상으로 선정된 이재민과 선정되지 못한 이재민이 다툴 수 있어 한 대피소에서도 구역을 나눠 배치한 상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주거대책에 대한 정확한 기준과 이재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입자·집주인 모두 지진이라는 자연재난으로 인한 피해자다. 이들이 갈등을 겪지 않도록 제대로 된 기준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당장 집을 잃은 이재민들을 위해 정부는 주거 대책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 납득시켜야 한다. 나아가 이번 지진을 통해 유사한 재난 발생에 따라 생 길수 있는 갈등을 예상하고 매뉴얼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항=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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