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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과 수능 연기

중앙선데이 2017.11.26 03:09 559호 31면 지면보기
외국인의 눈
1995년 1월 17일 저녁 고베(神戸). 지진이 발생한 지 12시간 이상 지났는데도 불길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이날 오전 5시 46분 간사이(關西)지방을 강타한 ‘한신(阪神)·아와지(淡路)대지진’은 수도권인 가나가와(神奈川)현에 살던 나에게도 아직 잊지 못할 충격으로 남아 있다.
 
간사이지방은 일본에서 비교적 지진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도 규모 7.3지진이 나 고속도로가 무너졌다. 평소에도 ‘언제든 대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는 간토(關東)지방 사람들은 ‘다음은 간토 차례구나’하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날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집에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지진 관련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불안에 떨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한신대지진은 일본판 수능인 ‘대학입시센터시험’ 이틀 후에 발생했다. 일본에서는 이 시험 후에 대학별로 실시되는 2차 시험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수험생에게는 가장 민감한 시기였다. 재수생이던 나에게는 1분 1초가 귀중했는데, 이날은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수험생들은 동요했다. 한 학원 강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간사이는 너무 힘든 상황이다. 그것을 보고 우리가 유리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 침착하게 자신의 공부에 집중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대학에 합격하는 것보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기도 했다.
 
한국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1주일 연기됐다. 당초 발표와는 달리 전날 밤 갑작스런 연기 결정은 혼란을 초래했다. “이날에 맞춰 컨디션을 가다듬어 왔다”는 일부 학생들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이런 부정적인 반응이 나에겐 의외였다.
 
수능이 수험생들의 일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험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천재지변은 정부 탓도 아니고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도 없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연구해 온 지진 예지(豫知)는 최근에 거의 불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주어진 상황에 맞춰 그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이런 생각에 공감할 한국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말이다.
 
 
오누키 도모코
일본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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