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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지키는 사용설명서

중앙선데이 2017.11.26 03:04 559호 30면 지면보기
[꽃중년 프로젝트 사전] ‘건강하기’
지난해 6월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리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다. 생사 결정권이 촌각을 다투는 현장에서 12시간이 지나서야 퇴원한 걸 보면, 그 쓰러짐의 깊이가 작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강의와 컨설팅이 주업(主業)인 내가 단어를 구사할 수 없도록 입이 닫히고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는데도, 그 순간에는 ‘오늘 저녁 약속 어떻게 하지?’‘설마 내일부터는 일할 수 있겠지?’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표정을 읽은 순간, 캄캄함보다 더 큰 어둠이 밀려왔다. 모든 생각은 오로지 ‘살았으면 좋겠다’ 아니 ‘살고 싶다’로 모아졌다. 내가 다시 무탈하게 살아난다면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고, 살려 달라고 기도했던 기억만 생생하다. 미친듯이 앞으로만 달려가던 중년에 이르러 엄청난 폭풍을 겪고서야, 왜 부모님이 늘 건강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는지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는 명언의 의미도 새삼 뼈저리게 느껴졌다.
 
또래 배우인 김주혁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듣고 되짚어 보니, 그 전쟁을 겪은 지 일 년이 넘은 지금도 내 생활이 그리 바뀌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내 삶에 대한 태도는 분명 변했다. 더 맘껏 먹고, 더 과감해지고, 하고 싶었던 일을 더 많이 하고, 무리하지 않기 위해 거절도 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내 몸을 아끼게 되었다. 나의 DNA에 맞는 생활로 즐거움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그리고 가족이 삶의 중심이 되니 후회도 줄고, 더불어 우선순위 결정이 빨라 시간도 벌고 스트레스도 줄었다.
 
남자들의 건강 척도는 성생활로 모든 것이 판가름 난다며 “복상사(腹上死)가 가장 행복한 죽음”이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던 남자 선배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쁘지 않다. 아니 응원한다. 그렇다고 여비서를 성추행해 문제를 일으킨 모 회장님들의 ‘몹쓸 건강함’을 응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품위도 건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 건강을 먼저 고민하고 내 몸을 아끼기 위해 노력하고 관리하는 건강한 중년을 응원하고 싶다. 눈치 보지 말자. 부인에게도 가족에게도 심지어 직원들에게도 건강관리하는 것을 미안해 하고 눈치 보는 중년의 리더들을 간혹 본다. 잘못된 판단이다.
 
‘비즈니스의 마지막은 의리다.’ 가장 존경하는 선배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대한 의리가 가장 먼저 아닐까. 내가 쓰러지면 모든 것은 의미 없다. 진짜 의리는 내가 살아서 약속을 지켜가는 것이다. 건강하지 않으면 1차적으로는 내가 힘들지만, 2차적으로 가족을 비롯한 타인을 섭섭하게 하는 일을 만들 수 있고, 어느 순간 본의 아니게 관계가 멀어지기도 한다. 외로우니 더 아프다.
 
출근하며 계단을 걸어 올라가거나, 식사 후 산책을 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스트레스를 만드는 시간이 아닌 풀 수 있는 시간이라면 술자리도 의미가 있다. 가장 당신답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라.
 
오롯이 내 몸을 위한 시간을 갖자. 긍정적 기운과 영감 넘치는 파트너가 곁에 있으면 더 좋겠지만, 혼자서도 관리할 줄 알아야 오래도록 외롭지 않다. 이제라도 ‘내 몸 사용설명서’에 관심을 갖고 내 삶에 대한 나만의 의리를 지켜보는 건 어떨까.
 
 
허은아
(주)디 아이덴티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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