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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물활론'에 포스트휴먼과의 공존 해법 있다

중앙선데이 2017.11.26 02:25 559호 26면 지면보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상력, 동양 신화
화가 정지영

화가 정지영

일찍이 ‘신화의 귀환’을 선언하여 시대의 정신을 선취(先取)했던 학자는 상상력 연구의 대가 질베르 뒤랑이었다. 그는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의 신화적 특성에 착안하여 교류와 소통이 일상화된 오늘을 ‘헤르메스의 시대’로 규정한 바 있었다. 그렇다면 임박한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누구의 시대로 명명하는 것이 좋을까. 아마 뒤랑이 그래왔듯이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적임자를 찾는다면 사람의 몸에 소머리를 한 미노타우로스가 될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복합체인 반인반수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물 나아가 인간과 기계 등 인간과 모든 이타적(異他的) 존재의 공존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현재 가속화되고 있는 이질적인 것들 사이의 결합, 즉 서로 다른 기술과 기술에서 넓게는 과학과 인문학의 융복합까지 표상하기 때문이다.

태양·물·바람·비 등 자연현상
살아있는 존재로 간주하고 교감

AI·사이보그와 살게 될 시대에
물활론적 사유로 적응력 키울 것

물질 개벽 따라 정신도 바뀌어야
상상력 대안 동양신화 귀환 필요

 
그러나 미노타우로스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삼기에는 걸림돌이 많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표준인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반인반수는 괴물이었다. 게다가 그는 수간(獸姦)으로 태어난 식인괴물로서 인간에 의해 처단될 운명의 소유자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차세대 정신의 상징으로 삼을 만한 바람직한 반인반수는 누구인가? 그는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완전한 것으로 추구했던 동양신화의 반인반수 신농(神農)이 될 것이다. 끔찍한 식인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아니라 호모사피엔스의 순혈주의에 물들지 않은 몸으로 농업과 의약을 가르쳐주었던 고마운 반인반수 신농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진정한 아이콘인 것이다. 여기에서 나아가 우리는 행복한 반인반수 신농을 낳았던 동양신화 전반의 의미와 가치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요한 마인드와 관련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연 동양신화는 근대를 지배했던 그리스로마신화의 상상력을 대신하여 차세대 상상력의 대안이 될 자질을 지니고 있는가?
 
근대 후 탈주술 시작되며 교감 능력 상실  
우선 물질, 기계적 존재와의 교감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물활론(物活論)의 부상은 필연적이다. 물질은 살아 있다! 물질은 자기조직하고 반응한다. 과거 인간이 표준이었던 시대에 물질 곧 무생물은 죽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었으나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 서울 DDP에서 열렸던 ‘브릴리언트 메모리즈’전에서 작가들은 폐기된 자동차에 대한 주인의 애틋한 심정을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그것은 결코 기계를 종전처럼 죽은 물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으로 보는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난 감정이었다. 그것은 다가올 물활론 시대의 징후였다. 물활론은 모든 사물이 살아 있기에 소통할 수 있다는 주술적 사유의 기반이 된다. 신화는 이러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태양을 표면온도 6000도, 내부온도 1500만도의 과학적 실체로만 인식하면 결코 교감할 수 없다. 그러나 뜨거운 태양 이면의 근원적 실체를 위대한 신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그것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
 
원시인류는 이처럼 태양, 달, 바람, 비 등 수많은 자연현상을 살아 있는 존재로 간주하고 교감을 시도했다. 우리는 근대 이후 탈주술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미 이러한 교감능력을 상실했고 사실 그것이 그대로 오늘에 가능한 것도 아니다. 다만 신화시대의 물활론적 사유가 물질, 기계적 존재와의 교감이 요청되는 향후 시대에 메마른 우리의 심성을 윤택하게 해 줌으로써 적응능력을 향상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신화는 그대로가 아니라 시대마다 항상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론 주술적 교감능력은 동양신화뿐만 아니라 그리스로마신화를 포함한 모든 고대신화가 풍부히 지니고 있는 자질이다. 이러한 공통의 자질을 넘어 그리스로마신화와 대비되는 동양신화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로마신화가 인간을 표준으로 삼은 나머지 동물을 비롯한 자연계에 대해서도 군림하는 자세를 취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기계적 존재와의 교감은 물론 동물에 대해서도 그것의 자생적 가치와 권리를 인정하고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향후 시대에서는 인간만이 유일한 존재라는 관념은 더 이상 성립하기 어렵다. 동양신화의 인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창조신화에 보인다. 혼돈 속에서 태어난 거인 반고가 죽을 때 온몸의 각 부분이 해와 달, 땅, 숲, 강으로 변하는데 몸속의 기생충은 인간으로 화한다. 또 다른 계통의 동양신화에서는 여신 여와가 동식물들을 창조하는 와중에 ‘심심해서’ 황토로 인간을 빚어낸다. 그녀는 처음에 일일이 손으로 사람을 빚어내다가 나중에 피곤해지자 새끼줄에 진흙을 묻혀 휘둘렀다. 그랬더니 떨어져 나간 흙물들이 사람으로 화하였다고 한다. 아주 무성의하게 인간을 창조한 것이다. 이태백은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읊었다. “여와가 진흙으로 장난을 쳐 어리석은 인간을 만들어 냈다네(女媧戱黃土, 團作愚下人).”
 
동양신화 속 인간은 자연의 일부
동양신화에서는 인간의 탄생이 다른 피조물과 구분되는 중요한 사건이라는 인식이 별로 없으며 그리스로마신화나 히브리신화처럼 불을 갖다 주거나 한껏 번성하여 동식물을 지배하라는 등 자연계에 군림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인간 역시 다른 사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동양신화에서 인간은 결코 유아독존의 존재가 아니었다.
 
인종적 편견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작금의 과제인데 이제는 다른 인종은 물론 인공지능, 사이보그, 유전자 복제인간 등 이른바 포스트휴먼에 속하는 수많은 타자와 공존해야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호모사피엔스의 순혈성을 견지하는 그리스로마신화, 그리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 주체를 강조하는 서구 근대의 휴머니즘적 인간관은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관흉국 사람들. 가마를 태우듯 가슴 구멍에 장대를 꿰어 이동하는 모습.

관흉국 사람들. 가마를 태우듯 가슴 구멍에 장대를 꿰어 이동하는 모습.

 
주체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타자에 대한 억압이 수반되었다. 인간 주체를 확립하기 위해 자연이, 서구 주체를 확립하기 위해 비서구가 배제되어 온 것은 역사적 현실이었다. 서구의 이야기 전통에서 이방인, 외계인 등의 타자는 항상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되어 적대시와 배척의 대상이 아니었던가? 중세의 박물지에 그려진 이방인들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움베르토 에코는 “정상적인 서구인을 위해 비정상적인 이방인이 필요했던 것”으로 반성한다. 동양신화에도 많은 이방인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도 서구 박물지의 이방인 못지않게 기형적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신화적 묘사를 읽는 우리의 느낌은 과거 서구에서 이방인들에 대해 가졌던 감정과는 많이 다르다.
 
섭이국 사람. 커다란 두 귀를 받쳐 들고 다니는 모습.

섭이국 사람. 커다란 두 귀를 받쳐 들고 다니는 모습.

『산해경』에는 머나먼 지역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다. 가령 관흉국(貫胸國) 사람들은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다. 그들의 시조가 슬픈 일로 제 가슴을 칼로 찔러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예의범절이 분명했다. 지체 높은 사람이 행차를 할 때면 아랫것들이 그 분의 가슴 구멍에 장대를 꿰어 가마에 태우듯 모셔 갔다고 하니 말이다. 섭이국(聶耳國) 사람들도 이상한 모습의 인종이었다. 그들은 귀가 엄청나게 크고 무거워서 항상 두 손으로 두 귀를 받쳐 들고 다녔다. 하지만 그 큰 귀가 아주 유용할 때도 있었다. 그들은 취침할 때 한쪽 귀는 요로 깔고 다른 한쪽 귀는 이불로 덮고 잤다고 한다. 이외에도 거인들이 사는 대인국, 난장이들이 사는 소인국, 눈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일목국(一目國), 날개 달린 사람들의 우민국(羽民國), 여자들의 나라인 여인국(女人國) 등 수많은 기이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산해경』에서의 이들에 대한 묘사는 중화주의적 입장에서 변방의 인종들을 희화화(戲畫化)시킨 혐의가 없지는 않으나 적대감이나 배타적 감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우리는 이들 괴상한 인종들조차 자신들의 기이한 정체성을 간직한 채 이른바 사해동포(四海同胞)의 일원으로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된 세계의 구성에 참여하고 있음을 느낀다. 평론가 고 김현은 이러한 『산해경』의 신화세계에 대해 “아름다운 시보다도 더 많은 꿈을 꾸게 한다”고 소회(所懷)를 피력했다.
 
지금까지 검토한 결과를 요약해 보면 동양신화에는 사물과의 풍부한 교감능력은 물론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동물,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겸허한 자세 및 이방인과 타자에 대한 호혜적 공존의식이 담겨 있어 임박한 4차 산업혁명 시대 상상력의 대안으로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바야흐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도 개벽되어야 하는 이 시점에서 동양신화의 화려한 귀환을 꿈꾸어 본다. 복(復)! 복(復)! 신농이여! (‘복(復)’은 고대 동양의 초혼의례에서 망자의 혼이 돌아오라고 외치는 말.)
 
 
정재서 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울대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하버드-옌칭 연구소와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연구생활을 했다. 중국어문학회 회장, 비교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산해경 역주』 『이야기 동양신화』 『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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