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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 사용법

중앙선데이 2017.11.26 02:00 559호 34면 지면보기
이윤정의 공감 대백과 사전
물샐틈없는
어학사전
한자로는 水泄不通(수설불통), 영어로는 watertight. ‘물샐틈없는 철통보안’, ‘물샐틈없는 수비’ 등의 표현에 쓰인다.

그여자의 사전
물이 새는 배수구를 교체해 본 뒤 얼마나 이르기 힘든 경지인지를 깨닫게 된, 그래서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함을 깨닫게 해준 표현

 
그 여자는 핸디맨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우아하고 가녀린 외모를 보면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집안의 가구들을 옮기고 물건 고치는 일을 은근히 즐긴다. 요즘처럼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때는 더욱 그렇다. 따분해지면 괜히 소파나 책장들을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한다. 그럴 때는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는 힘이 불끈불끈 샘솟는다. 전동 드릴을 즐겨 쓰고 조립가구 이케아는 최고 난이도인 침대와 격자형 책장까지 혼자 만들기도 했다.
 
며칠전 세면대의 배수관에서 물이 새고 있는 모양이 여자의 눈에 들어왔다. 마침 겨우 가구나 옮기는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때였다. 고치고 싶었다. 얼른 인터넷에서 주문을 하고 기다렸다. 배수 문제라면 몇년 전 새로 입주한 아파트에서 두시간 동안 물을 뒤집어 쓴 채 씨름한 끝에 시원찮게 물이 내려가던 욕실 배수구를 해결한 경험도 있었다.
 
현관 앞에 도착한 택배상자를 뜯고 여자는 거대한 의욕에 불타올랐다. 세면대의 물막이부터 바닥까지 연결되는 파이프를 열고 새 파이프로 교체했다. 중간중간을 스패너로 조인 뒤 물을 틀어봤다. 입으론 제임스 테일러의 옛날 팝송 ‘Handyman’과 콜드 플레이의 ‘I will Fix You’ 같은 노래를 번갈아 흥얼거리면서.
 
그런데 물이 여전히 줄줄 흘렀다. 다시 연결 부위를 풀고 조심스럽게 조인뒤 다시 수도꼭지를 열었다. 이번엔 실처럼 가늘어 지긴 했지만 여전히 물이 샌다. 그래서 다시 풀고 조이고 새는 부분을 더듬고 다시 풀었다가 힘을 더 써서 조이고…의 끝없는 반복이 시작됐다.
 
이런 일은 하면 할수록 오기가 생긴다. 이때만큼 도전 의식이 커지고 몰입이 되는 때도 없다. 풀고 조이고 틀고 새고의 무한 루프 속으로 깊이 빠져들면서 여자는 이제 녹초가 되었다. 그런데 해도 해도 끝이 나지를 않았다. 새던 물은 줄기에서 실같은 자락으로, 다시 큰 방울에서 작은 방울로 작아지긴 했지만 어쨌든 물은 공격을 멈추질 않았다.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구멍난 댐을 손목으로 막았던 네덜란드 소년의 심정이 잠깐 이해됐다. 이제는 어디가 틈인지 보이지도 않았다. 똑, 똑, 똑.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저 물방울들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인양 나를 비웃는 것 같아 약도 오르고 살짝 무섭기도 했다.
 
결국 여자는 두 손을 들었다. 해질 무렵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벌써 한밤중이 됐다. 이제 포기해야 할 때야. 그때 문득 스쳐가는 생각. 아, ‘물샐틈이 없다’는 말은 그야말로 완벽한 경지였구나. 이렇게 손톱만한, 아니 그보다 더 작은 틈도 놓아주지 않는 물이 새는 틈이 없다는 건 말이야. 그건 정말 대단한 거야.
 
그렇다면 도대체 ‘물샐틈이 없다’라는 말을 쓰려면 어떤 수준이어야 할까. 국어사전은 그런 것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감으로만 그것을 느껴야 할 뿐이다. 하지만 물샐틈의 무서움을 겪어본 나로서는 이게 앞으로는 물샐틈이 없다라는 말을 절대로 함부로 쓰지 못할 것이라고 예감한다. 이를 테면 축구에서 ‘물샐틈없는 그물 수비’라는 말을 쓰지만 그물은 애초에 물의 어느 한자락 조차도 막을 수 없으므로 그런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물샐틈없는 철통 경비’나 ‘물샐틈없는 안보’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어린 군인들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해내야 하므로 ‘물 정도는 새도 되는’ 그런 수준의 안보를 기대하기로 했다.
 
그 여자가 비유의 매뉴얼을 만든다면 아마도 우리가 쉽게 내뱉는 어떤 말에 대해서는 적어도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함부로 쓰지 말자고 할 것 같다. 그리고 나만의 감정 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도 깊이 공감할 줄 알아야 좋은 비유가 된다고 말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 앞에서 ’한숨도 못 잤어’라든가, 자식을 잃은 사람 앞에서 쉽게 ‘애끊는’을 호소하는 일 같은 건 금지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 땅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지진 소식이 눈에 들어온다. 당분간 ‘하늘이 무너지고’‘땅이 꺼질 듯한’이란 말을 쉽게 쓰기 전에 그 사람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고통을 먼저 떠올려봐야 할 것 같다.
 
 
이윤정 : 칼럼니스트. 사소하고 소심한 잡념에 시달리며 중년의 나이에도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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