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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완성은 지원 아닌 관객

중앙선데이 2017.11.26 02:00 559호 29면 지면보기
[CULTURE TALK] 창작산실의 실험이 성공하려면 
우리 공연계는 창작에 대한 갈증이 심하다. 연극도 오랜 세월 번역극 중심으로 발전했고, 뮤지컬도 아직 라이선스 공연이 대세다. 그런만큼 ‘창작물 개발’에 대한 관심은 거국적이고, 그에 따른 공적인 지원도 전폭적이다.

 
그 중심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창작산실’이 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창작산실은 50억원 규모의 국내 최대 창작공연 지원사업으로, 매년 기획 단계부터 시작해 쇼케이스 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된 작품을 본공연으로 제작하는 프로젝트다. 세계적으로 보기드문 지원 규모에 예술가들의 관심도 뜨겁지만, 거꾸로 ‘블랙리스트 집행자’란 오명을 쓰기도 했다.
 
올해도 연극·뮤지컬·무용·전통·오페라 총 5개 장르 22개 작품이 12월 8일부터 108일 동안 관객을 만난다. 연극 거장 오태석부터 30대 초반 신진 예술가들까지 두루 선정돼 작품 면면도 다양한데, 극단 하땅세와 백수광부, 놀땅 등 ‘블랙리스트 예술가’들도 대거 포함돼 눈길을 끈다. 심사 공정성을 위해 최초로 관객평가단까지 도입한 결과다. 블랙리스트 사태로 추락한 신뢰 회복의 몸부림으로, 전문심사단 외에 관객평가단 50여명을 선발해 쇼케이스 단계에서 9:1의 비중으로 점수를 반영했다. 
 
“집중해서 평가하다보니 숨결 하나 동작 하나가 더욱 인상적이었다”는 한 관객평가단의 말처럼, 관객평가는 공정성 측면을 넘어 관객 개발 차원으로 이어진다. 관객 의견이 피드백으로 제공되어 공연에 적극 반영되니 관객이 수동적인 수용자에 머물지 않고 공연의 완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셈이다. 해당 공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관객을 향한 적극적인 러브콜인 네이버 생중계도 2배로 확대한다. 지난해 생중계 시작 이후 티켓판매율이 20% 증가되고 올해 뮤지컬 패키지 티켓은 3분만에 매진되는 등 뜨거운 호응 덕이다. 차민태 공연지원부장은 “지원의 효과는 관객수가 말해준다. 창작산실은 재정 지원 외에 관객을 발굴하고 수요를 유발하는 지원도 병행한다. 많이 알리는 것도 역할”이라고 했다.
 
창작산실이 ‘관객개발’에 방점을 찍는 건 왜일까. 
알다시피 예술 지원은 양날의 검이다. 예술가가 권력에 예속되고 자생력을 잃기 쉽다. 블랙리스트의 역설은 ‘세계적으로 보기드문 지원규모’를 마냥 칭송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외 사례를 연구해온 김미혜 연극평론가는 “해외에서는 민간 후원과 티켓 판매 수익이 5:5로 공공의 지원은 상징적 수준이다. 극단 홍보맨들이 관객에게 직접 접근해 매니어 관객을 확보한다. 공연계가 자생력을 기르려면 사회 전반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짚었다.
 
창작물을 만들어도 관객이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없다. 이미 창작물량이 압도적인 뮤지컬 시장도 여전히 소수의 해외 콘텐트가 점거하고 있다. 창작 활성화를 위해서는 재정 지원이라는 대증 요법보다 창작물에 대한 진입장벽을 허무는 문화적이고 근본적인 접근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창작산실이 내년에는 관객평가단을 넘어 단편영화처럼 짧은 공연을 감상하게 하는 기획까지 준비한다니, 또 한번의 관객 부흥을 기대해본다. 공연의 완성은 지원이 아닌 관객이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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