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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골판지, 쓸만한 해우소로 변신

중앙선데이 2017.11.26 02:00 559호 24면 지면보기
윤광준의 新생활명품 <71> 휴대용 변기 주토 
진도 5.4를 기록한 포항 지진의 파장은 컸다. 이제 우리는 지진을 남의 일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정부는 닷새가 지난 20일 포항시를 특별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임시 대피소 모습이 TV에 비쳤다. 체육관 바닥에 거처를 펼쳐놓은 많은 이들의 불편은 안타깝다. 나 역시 언제 똑 같은 처지가 될지 모른다. 불의의 재난을 당한 인간의 모습은 다 비슷하다. 어수선한 현장에서 불안과 공포를 떨쳐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래도 시간이 되면 먹고 싸고 씻고 잠들어야 한다. 세상이 무너져도 거르지 못하는 삶의 습속엔 예외가 없다.
 
지진 발생 닷새 만에 사생활 보호를 위한 개별 텐트가 설치됐다. 이재민들은 비로소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옷도 갈아입고 피곤한 몸을 누였다. 담당 공무원들의 세심한 대처가 돋보였다.
 
이것으로 끝일까.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야 칭찬의 강도가 높아진다. 바로 화장실 문제다. 많은 사람이 몰리는 장소라면 당연히 배려되어야 할 사안이다. 포항의 임시 대피소 또한 모자라고 불편한 화장실 문제로 드러내지 못할 고민을 안고 있을 게다. 개별 텐트의 설치만큼 개인 화장실까지 배려하는 섬세한 대처는 불가능한 것일까. 전 세계의 재난 현장에서 화장실 문제는 언제나 뒷전이다. 예전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에서 똥덩이로 뒤덮인 주변 현장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화장실 문제까지 먼저 겪고 대처했던 나라가 있다. 반복되는 지진과 태풍 같은 재난으로 단련된 일본이다. 경험에서 얻은 대비의 방법은 촘촘했다. 이재민에게 나눠주는 일본의 비상용 키트 속엔 휴대용 변기도 들어있다. 난처하고 긴박한 상황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은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는 이재민을 위한 임시 종이주택을 지은 업적으로 세계적 인물이 되었다. 제한된 예산으로 빨리, 멋지게, 그러면서도 기능적인 집을 위한 고민은 깊었다. 잦은 재난을 안타까워했던 건축가의 생각은 종이란 소재의 디테일로 완결된다. 반 시게루의 이재민을 위한 집은 건축이 누구를 향할 것인가를 되묻고 있다. 여기에도 화장실은 빠지지 않았다. 모든 건 생각에서 출발해 행동으로 완결된다. 포항 지진의 여파가 내게도 밀려왔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휴대용 변기의 관심을 키운 일이다.
 
차단막 두르고 생분해 비닐 봉투에 일보면 끝
그동안 우리는 무심했다. 구호의 몸짓은 상대의 아픔과 불편을 공감할 때 아름답다. 구호 활동이 감동으로 이어지는 바탕은 진심이다. 구호 현장을 찾았던 젊은이들이 이런 세세한 문제에 주목했다. 휴대용 변기의 필요를 떠올린 출발이다. 화장실이 없다면 만들어 주면 되는 거 아닌가? 해법은 간단하고 완성은 복잡했다.
 
국내 제품인 주토(JUTO)란 휴대용 변기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회사 대표는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NGO활동을 한 이력이 있다. 난민과 저개발국가가 처한 현장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실감했다. 깨끗한 물이 없어 건강과 개인 위생이 위협받고 공중보건마저 위태로워지는 악순환은 당연하다. 열악한 화장실이 물을 오염시키는 원인이 되는 데 충격을 받았다. 환경친화적 변기를 공급해 주기로 한 이유다.
 
주토는 골판지를 조립한 휴대용 변기다. 생각보다 튼튼해서 무거운 사람이 깔고 앉아도 찌그러지지 않는 강도를 지녔다. 지금과 같은 형태와 실용성을 갖추기 위해 많은 개선의 과정을 거쳤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차단막을 두르면 남의 시선이 차단되는 편안한 개인 화장실로 바뀐다. 생분해되는 비닐 봉투에 볼 일보고 바로 처리해 버리면 된다. 물에 적셔지는 일만 피한다면 골판지 변기는 꽤 수명이 길다. 쓰고 난 변기는 자연분해되거나 태워서 처리하면 그만이다.
 
주토는 아프리카 오지와 난민 수용소에서 활용된다. 정작 이 나라에선 주토 휴대용 변기를 아는 이가 많지 않다. 필요조차 공감하지 못할지 모른다. 재난과 구호 현장이 매해 반복되는 현실에서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개선시켜야 발전이 된다.
 
재난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람 몰리는 곳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게 화장실이다. 세계 최대의 축제 가운데 하나인 뮌헨 옥토버 페스트에 지난해 참여해 보았다. 한 장소에 만 명이 몰린다는 맥주회사의 가설물 규모는 대단했다. 그 안을 꽉 채운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흥과 열기는 세계적 규모가 어떤 것인지 알려줬다.
 
난 엉뚱하게 맥주 먹은 이들이 싸댈 오줌의 뒤처리가 궁금했다. 건물 양편에 들어선 임시 화장실의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임시 화장실조차 수세식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마무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선진과 후진의 격차라 부른다.
 
휴대용 변기,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상책
누구나 화장실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차량 정체로 갇힌 차 속에서 배를 움켜쥐고 혹은 다리를 꼬며 버텼을 악몽 같은 기억이 선명할 것이다. 남자들은 그래도 낫다. 염치불구하고 갓길에 차를 세워 실례할 수도 있을 테니. 똑같은 일을 당한 여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대처를 할까.
 
심각한 문제임에도 난처하고 민망해 입 밖에 내지 못할 것이다. 미리 속을 비워두는 소극적 대처만으로 대처하지 말기 바란다.
 
휴대용 요강이 있다. 남녀 성기에 대응하는 실리콘 튜브나 깔때기를 부착해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식이다. 형태가 다소 민망하고 묘한 자세로 써야 하긴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의외로 쓸 만하다.
 
배변 처리법이라는 게 무슨 대단한 수가 있을까. 오줌과 똥이 새지 않고 냄새 나지 않도록 담아두는 것이 전부다. 얼마나 간편하고 쉽게 쓸 수 있게 만들었느냐가 관건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다면 준비해 두는 센스도 발휘해 볼 일이다.
 
먹는 것만큼 싸는 일도 중요하다. 이젠 당당하게 외치는 개인과 회사들이 늘고 있다. ‘휴대용 변기’로 검색하면 나오는 엄청난 양의 제품들이 증거다. 내 차 트렁크엔 주토 휴대용 변기가 실려 있다. 평소엔 물건을 담는 박스로, 비상시엔 훌륭한 좌식 변기로 쓴다. 세상일 미리 대비하면 다 해결책이 있다.
 
 
윤광준 :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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