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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든 기적, 지금부터 보여드릴께요

중앙선데이 2017.11.26 02:00 559호 16면 지면보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와 선생님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정권·노지현 안무가, 에릭 테일러·성지환·천우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정권·노지현 안무가, 에릭 테일러·성지환·천우진

아들 키워본 엄마는 다 안다. 10세 전후 남자아이들이 얼마나 말을 안 듣는지. 놀기 좋아하는 녀석들을 붙잡고 뭔가를 가르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란 것도. 지난 9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11월 28일~2018년 5월 7일 디큐브아트센터) 제작발표회에서 하이라이트인 ‘일렉트리시티’ 장면을 완벽하게 해내는 다섯 소년의 모습에 코끝이 찡했던 이유다.

 
2016년 4월 1차 오디션을 시작으로 1년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빌리스쿨’에서 지옥 트레이닝을 거친 빌리들이 마침내 도약의 순간을 앞두고 있다. 매일 밤늦게까지 테크 리허설에 한창인 세 명의 빌리 천우진(13)·성지환(11)·에릭 테일러(10)와 국내협력안무 겸 트레이너 노지현(43·발레), 이정권(36·탭댄스) 선생님을 만나 동네꼬마들이 ‘댄싱머신’으로 거듭나기까지, 실화판 빌리 스토리를 들어봤다.

‘빌리스쿨’은 2016년 4월부터 1년 6개월간 진행됐다

‘빌리스쿨’은 2016년 4월부터 1년 6개월간 진행됐다

 
‘어린 애들이 무슨 얘기를 할까?’ 병아리같은 소년들의 긍정 에너지는 이 의심을 ‘우리 미래에 희망은 있다’란 확신으로 비약시켰다. 안양과 남양주, 용인에서 양재동 깊숙한 연습실로 매일같이 실어 나른 어머니들의 온전한 헌신과 꼭 빌리가 되고 말겠다는 소년들의 의지가 ‘무’에서 기적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엔 물음표가 100만개였다”는 노지현(이하 ‘지지샘’)·이정권(이하 ‘정권샘’) 안무가도 “평범한 아이들이 의지력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대견해 했다.
 
발레와 탭댄스부터 현대무용, 아크로바틱, 스트릿댄스까지, 춤이라면 이제 선수가 됐다. 우진이만 탭댄스를 좀 춰봤을 뿐 춤과 무관했던 천방지축 동네꼬마들이다. “‘발레’의 ‘발’자도 몰랐던 애들이 세 바퀴, 네 바퀴 도는 걸 보면 저도 놀라요. 얘들은 빌리가 너무나 되고 싶은 거예요. 울고 지쳤을 때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계속 푸쉬했는데, 그걸 다 받아들이고 지금 이 자리에 있네요.”(지지샘)
 
그런데 아이들은 그저 춤이 좋았단다. 좋아서 더 잘 추고 싶었다는 것이다. “제가 원래 힘든 걸 싫어해요. 뛰는 것도 싫어해서 체육시간에도 앉아있었는데, 빌리는 춤에 욕심이 생기고 재밌어서 힘든 줄 몰랐어요.”(우진) “저는 레고만 했었는데, 갑자기 춤에 빠져들게 됐어요. 인생에 단 한 번뿐인 거라 그런 것 같아요.”(에릭) “솔직히 말해서 살면서 이렇게 재밌던 게 없었어요. 태권도를 오래 했는데, 춤이 훨씬 더 좋아졌어요.”(지환)
 
1차 오디션부터 함께 했던 지지샘과 정권샘은 이들을 “끼가 있는 보통 아이들”이라고 했다.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엄마가 ‘빌리 엘리어트’를 좋아해서 비디오를 많이 봤어요. 그런데 발레는 늙을 때까지 못한다고 안 가르쳐 주셨거든요. 제가 먼저 오디션 보겠다고 했어요.”(우진) “저는 태권도 하다가 빌리가 뭔지도 모르고 들어왔는데, 해보니 진짜 재밌는 거에요. 중간에 다리를 다쳐 2주 쉬면서 재활치료를 받았는데, 빌리를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 슬펐어요. 아, 갑자기 막 울먹거려요.”(지환) “저는 형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선생님들이 개인 렛슨을 해주셔서 열심히 쫓아갔어요. 춤을 처음 춰보는 거라 잘하고 싶은데, 하루종일 연습하고 나면 여기저기 아프긴 해요.”(에릭) “근데 신기한게 연습하다보면 아픈 것도 잊게 돼요.”(지환)
 
아프고 힘들어도 아이들을 도전하게 하는 춤의 마력은 성취감이다. ‘안되던 게 되는 순간’의 짜릿함이다. “겁이 많아서 아크로를 제일 못했어요. ‘측전빽핸드’(옆으로 돌아 두발로 짚고 뒤로 도는 기술)가 안되서 하루는 정권샘한테 엄청 혼났어요. 그거 못하면 저를 빼겠다고 하셔서 엄청 노력했는데, 그날 딱 돼서 난리났었어요.(웃음)”(우진) “저는 발레시간에 ‘후에테’가 너무 안돼서 젤 싫어했어요. 근데 어느 순간 되니까 날아갈 것 같았어요.”(지환) “저는 아크로를 좋아하는데, 한 동작이 되면 성취감이 되게 커요. 선생님이 도와주다가 어느 순간 손을 빼시면 되는 건데, ‘핸드스프링측전빽핸드스완’이 처음 됐을 때, 와~ 또 하고 싶었어요.”(에릭) 
 
춤의 마력은 짜릿한 성취감
‘빌리 엘리어트’ 해외 공연 모습

‘빌리 엘리어트’ 해외 공연 모습

1년 6개월 동안 지지샘과 정권샘은 아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수많은 스태프 중 “가장 무섭지만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란다. “지지샘은 처음엔 좀 무서웠는데 이젠 엄마 같아요.”(우진) “두분 다 무서운데 좋으실 땐 진짜 좋은 분들이세요.”(지환) “혼내실 땐 ‘아, 혼내시는구나’ 해요. 다 이유가 있거든요.”(에릭)
 
아이들과 5분 만에 친해졌다는 정권샘은 2010년 초연 때 터득한 노하우로 아이들의 ‘정신승리’를 이끌어낸 특급 조련사다. 특히 연기와 안무가 복합되어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앵그리댄스’를 가르칠 땐 동기부여를 하려 ‘악마의 속삭임’도 서슴지 않았다.
 
“‘앵그리’할 때 많이 울었어요. 화가 탁 터져야 되는데 우리가 화가 잘 안나거든요.”(지환)“그래서 항상 나쁜 말을 해주세요.”(에릭) “아니지, 나쁘게 들리는 덕담이지.”(우진) “샘이 탁 터뜨려주면 미친 듯이 막 해요. 그 기억으로 다음에 하려고 하면 또 생각이 안나고, 그럼 또 다른 말을 해주세요.”(지환) 
 
“막연하게 화내라고 하면 애들이 그 감정을 모르니까요. 자극을 줘서 터지게끔 해주고 싶은데, 1년 이상 보면서 일상적인 얘기도 많이 해서 애들이 싫어하는 게 뭔지 잘 알거든요. 그런 부분을 건드리는 거죠. 우진이는 ‘형이 돼서 왜 그러냐’ 그러면 빵 터지고, 지환이는 ‘너 대신 다른 애가 들어온다’고 하면 빵, 에릭은 일본까지 가서 오디션 다시 본 얘기하면 빵빵 터지죠.(웃음)”(정권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명장면은 크게 셋이다. 광란의 탭 댄스 ‘앵그리댄스’와 성인 빌리와 듀엣을 추는 ‘드림발레’, 그리고 춤의 전율을 표현하는 ‘일렉트리시티’가 아이들의 능력치가 극대화되는 포인트다. “저는 ‘드림발레’가 젤 좋아요. 플라잉할 때 라인이 젤 이쁘다고 해주셔서 빨리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어요.”(우진) “저는 다 재밌는데, ‘일렉’이 제일 기대가 되요. 제일 중요한 장면이니까 잘 하고 싶어요.”(지환) “‘일렉’이 개성이 들어가는 부분이거든요. 지환 형은 태권도가 들어가고 우진 형은 발레로만 하는데, 저는 아크로가 많이 들어가요. 다섯 명이 다 달라서 5번 보셔야 해요.”(에릭)
 
“많이 혼낸 만큼 많이 사랑했습니다”
왼쪽부터 에릭 테일러·천우진·성지환

왼쪽부터 에릭 테일러·천우진·성지환

‘감전된 것처럼 불꽃이 튀고, 새처럼 날아오르는 것 같다’. 춤을 출 때의 기분을 묻는 질문에 대한 ‘일렉’의 가사다. 세 빌리도 “그게 정답”이라고 입을 모았다. “처음엔 이건 사람이 할 수 없는 거다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되는 순간 세상 다 가진 기분이 들죠. 자신감이 생기니 더 잘하고 싶고요.”(우진) “정말 가사대로 똑같아요. 자유를 얻는 느낌이고 짜릿하게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아요. 한 장면 끝내면 한번 더하고 싶고요.”(지환) “중독성이 있어요. 안될 때는 답답해서 자꾸 해보고 싶고, 되면 좋아서 또 하고 싶고요.”(에릭) “그게 희열이죠. 제 눈에는 모든 장면 시작에 아이들의 풍선처럼 부푼 가슴이 보여요. ‘이제 내 차례야, 지금부터 보여줄거야’ 하는 거죠.”(지지샘)  
 
1년 반 동안 키워낸 아이들이 이제 하산할 때가 됐지만, 선생님들은 놓아주기 싫은 눈치다. “아직 멀었어요. 끝까지 트레이닝은 계속되니까요. 그때는 울겠죠. 빌리 단톡방이 있는데, 5년, 10년 뒤에도 사진 올리기로 했어요.”(지지샘) “1대 단톡방이 아직 있어요. 이제 스무살쯤 됐는데, 가끔 만나 술 사주면 걔네가 더 잘 먹어요. 요즘도 옛날 생각하면서 지금 뭐 배우냐 묻기도 하구요.”(정권샘)  
 
빌리와의 만남은 이들의 인생도 변화시켰다. ‘무’에서 기적을 일궈낸 숨은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꼬맹이들 기초는 처음이라 앞이 캄캄했어요. 호주에서 이 작품을 연출했던 친구도 ‘네가 했던 작품 중 제일 힘들 것’이라 했죠. 근데 틀렸어요. 할수록 힘들지 않고 즐거워요. 애들을 싫어했던 제가 아이를 갖고 싶어져서 곧 인공수정을 할 계획입니다.”(지지샘)
 
“저희한테도 성취감이 있죠. 근데 애들 볼 때마다 늘 미안해요. 초연 때 노하우로 좀 더 빨리 빌리로 만들긴 했는데, ‘앵그리’ 장면처럼 못할 말도 해야 하니까요. 많이 혼낸 만큼 많이 사랑했습니다.(웃음)”(정권샘)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신시컴퍼니, 일러스트 서커스보이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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